4시 13분
내가 끌려간 건 오전 4시 13분이었다.
늘 형사는 새벽에 왔다.
나는 밤에 잘 자지 않으므로 가볍게 잠바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찬 공기가 칼날처럼 얇게 배어들었다. 나는 잇새로 더러운 침을 뱉었다. 어둠은 무거웠다. 수갑을 찬 채 자동차 뒷좌석에 고꾸라진 나는 여전히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머리가 혼란하였으므로 얼마나 그렇게 갔는지 무엇을 구체적으로 봤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다만 내내 아름답다고 느꼈다. 전구가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고 안심을 하기도 했다. 번잡하고 무엇이든 깨고 다시 세우는, 그래서 늘 내 기억의 업데이트를 자극하는, 그런 세상에 파묻혀있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지극히 낭만적이라고 느꼈다.
복도를 따라간 뒤 막다른 곳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었다. 방은 생각만큼 작았다. 하지만 형사는 여남은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잠시 뭐라 속삭이더니 한 사람만 남기고 모두 나갔다. 형사가 의자를 끌자 사방이 울리기 시작했다.
늘 취조실은 지하 골방에 있었다.
습하고 서늘했다. 하얀 벽면과 지나치게 큰 창문이 있었다. 나는 쥐색으로 변한 창에 반사된 나를 보았다. 맥없이 침울하고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의자는 딱딱했고 책상은 모난 곳 하나 없이 둥글둥글했다. 나와 마주 앉은 형사는 얼굴이 평평했다. 그리고 뚱뚱했다. 그는 지긋이 웃으며 형식상 혹은 법적으로 행하여야만 하는 절차를 밟아 나갔다.
그리고 심문이 시작되었다.
“전과가 있군요.” 형사는 기록철을 한 장 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막 인쇄한 듯 빳빳하고 차가운 소리가 났다.
검은 에나멜 구두가 반짝였다. 얼굴도 반지르르하였다. 바지는 뻣뻣하게 풀을 먹였는지 움직일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그는 약간 내려앉은 의자에 꺼지듯 몸을 기댔다. 용의주도한 습관이 그의 깔끔한 의상에서 드러난다. 집요하게 그의 탐닉이 나를 훑고 지나간다.
“단순 폭행, 위조, 사기.” 그가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네.”
“집행유예 기간이군요.” 다시 나를 본다.
“네.”
“조심하셔야지.” 미소 띤 얼굴로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이제 기록철의 마지막 장을 본다.
“…”
“왜 죽였나요?” 그는 보던 문서를 책상에 사뿐히 놓았다. 그리고 두툼한 공책을 다시 집었다.
“누구를…?”
“아시잖아요. 413호.” 그는 이제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잘 모르는 여자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을 했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이런 말을 해본댔자 무의미하단 것을 금방 알아챘기 때문이다.
“마치 피고인이 된 듯한 말투입니다.” 남자는 비웃는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죽었나요?” 나는 천천히 되물었다.
“단골이던데…. 왜? 싸웠어요?” 그는 비대한 몸에 낀 의자가 불편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그 순간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칠 때까지.
“특히 최근에 자주 갔던데…. 월요일, 금요일, 또 월요일, 목요일…” 그는 공책을 한 장 한 장 넘겨짚으며 말을 이어갔다.
“창녀치곤 글재주도 좋아. 그는, 마치 깨알같이 적힌 책을 보듯, 코를 박을 듯이 수그리고는 읽기 시작했다.”
“... 마치 남편 같다. 한 번도 없었지만 늘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사람. 오늘도 나는 그를 기다린다. 그가 나의 젖가슴을 정성스레 빨 때면 나는 그 순간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뭐 이 정도면 연인이구먼.” 그가 빙그레 웃으며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글을 쓴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근데 왜 죽였어요? 죽여달라고 하던가요?” 그는 빈정대는 듯한 표정으로 머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나를 뚫어지라 지켜봤다.
“…”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를 조급하게 만들고 싶었다. 사실 그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고 마른 표정으로 나를 닦달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는 계속 나를 보고 있고 나는 천천히 눈동자를 하얀 벽으로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벽. 아무것도 아닌 것. 결국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이미 깨닫지 않았던가. 결국 바람 속의 먼지인 것을. 아귀처럼 닦달하는 인간 군상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형사는 이제 다른 차트를 만지작거렸다. 이윽고 하나를 꺼내 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는 길게 한숨을 쉰 뒤 천천히 말을 걸었다.
“당신 아내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거죠?”
오직 기억만이 나를 수식한다.
아내의 마지막 모습은 창백했다. 오래전 그날, 내 기억에 담아두었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신혼 첫날밤. 나는 비로소 그녀의 민얼굴을 마주했다. 조명은 어두웠으나 다른 느낌의 아내였다. 지나친 흥분. 서먹하고 어색한 순간. 혼란스러움이 더해졌다. 실망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는 예상하지 못함에 대한 당혹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소박한 미소를 지었고 편안한 포용을 안겨 주었다. 내가 늘 찾고자 했던 그런 끌림이었다. 단지 아내에 대한 첫 이질감이 내 기억의 어느 곳에 자리매김하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것이 들추어졌다. 죽은 아내를 보며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예상했지만 어이없게도 이질감을 먼저 느낀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잊었던 혼란이 나타났다. 그것뿐이었다.
모든 것은 결국 불행하게도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