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크 아일랜드 #2

남킹 판타지 스릴러

by 남킹

직장

내 책상은 사무실 중앙 복도 바로 옆이었다. 오고 가는 직원이 손쉽게 내 모니터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젠장, 딴짓하기는 글렀네.’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대충 스무 명쯤 되는 개발자가 파티션으로 나뉜 각자의 영역에 머물고 있었다. 다들 모니터에 코를 박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분주하게 놀리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산다!’

아침이었지만 무척 피곤했다. 계속해서 하품이 나왔다. 지겹게 뒹굴었던 방구석이 그리웠다.

‘아, 한숨 자고 라면 하나 때리고 시작했으면 딱 좋겠는데.’

나는 빈 책상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노트북을 펼쳤다. 윈도 설치 초기 화면이 떴다.

“조필호씨 맞으시죠?”

고개를 들어 보니 머리숱이 그다지 많지 않은 중년의 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반갑습니다. 총괄이사 남상호입니다. 잠시 회의실에서 뵐 수 있을까요? 저를 따라오시죠.”

그는 무척 예의 바르게 나를 대했다. 첫인상이 죽은 할머니처럼 편안했다.

회의실에는 젊고 날카롭게 보이는 직원이 이미 앉아있었다. 그는 이사를 보자 잠시 엉덩이를 들어 격식을 차리곤 내게 앉을 자리를 소개했다.

“이쪽은 우리 김민호 개발 팀장입니다.”

김 팀장은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신기한 듯 그것을 바라봤다. 칠흑같이 까만 바탕에 회사 로고가 반짝였다.

“명함에 신경을 좀 썼어요. 조필호씨도 곧 받을 겁니다.”

그는 나의 호기심을 단박에 알아챘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저렇게 멋진 명함이라면 남들 속이기에 딱이지.’

*************

윈도 및 개발 도구 설치가 끝나자 우리 회사 주력 상품인 웹 기반 ERP 소스 분석 요구가 내게 떨어졌다. 동시에 여직원이 내게 백과사전보다 더 두꺼운 사용자 매뉴얼을 던져 주고 갔다. 회계, 인사, 물류, 생산 별로 각각의 사용 방법이 캡처한 이미지와 함께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그걸 들여다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젠장, 이걸 어느 세월에 읽고 어느 세월에 분석한담?“

가뜩이나 회계는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프로그램을 띄우고 매뉴얼에 따라 하나하나 꾹꾹 눌러보지만, 눈동자는 끊임없이 모니터 오른쪽 아래 끝에 있는 시계로 향했다. 하지만 세상이 멈춘 듯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았다.

’더럽게 시간 안 가네.‘

오전을 혼몽한 상태로 보냈다. 중간에 뛰쳐나갈까도 여러번 생각했다. 하지만 그랬다간 굶어 죽기 딱 알맞다. 할머니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늘 가득했던, 지겹기 짝이 없는, 팔다 남은 떡볶이, 순대, 간, 염통, 허파, 콩팥, 오소리감투, 새끼보가 새삼 먹고 싶어졌다.

’살다 살다 돼지 내장이 그리워질 때도 있네.‘

”어떻게 할만합니까?“

김 팀장이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와 칸막이에 팔을 걸친 채 내게 물었다.

’야이 시팔! 그게 지금 내게 할 소리야! 세상에서 가장 지겨운 거 던져 주고는 할만하냐고? 이 더러운 돼지 새끼야! 확! 그냥 내장이나 만들어 먹을까 보다.‘

”네. 생각보다 꽤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게 피부로 와 닿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김 팀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점심이나 같이할까요? 오늘 첫날이니까 제가 쏘겠습니다.“

”아, 그래도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사에서 내는 겁니다. 뭐 좋아하십니까?“

”저는 뭐든지 다 좋습니다.“

”음…. 그러면….“

팀장이 고민하는 사이 나는 슬쩍 끼어들었다.

”오늘 오다 보니 여기 사무실 모퉁이에 일식집 보이던데….“

”아, 히로시마 말씀하시는군요?“

”네.“

”좋습니다. 그리로 가시죠. 거기 회덮밥 잘합니다.“

나는 회 정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반주도 한잔 곁들였다. 팀장은 나의 당돌한 주문에 꽤 흥미로운 눈치로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정갈한 접시에 연분홍 회가 수줍은 듯 포개어져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사정없이 젓가락으로 그 살덩어리를 집어 와사비를 듬뿍 넣은 초고추장에 풍덩 목욕시킨 후 내 입에 쑤셔 넣었다. 꿈틀거리는 살맛이 너무 향긋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지나치게 푸르고 넓은 대양에서 한가로이 노닐던 녀석의 몸뚱이라 생각하니 더욱 고소했다.

’역시 남의 살이 맛있기는 맛있어!‘

팀장은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보며 회덮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하지만 팀장은 여유로워 보였다. 디저트로 나오는 과일과 커피까지 싹 다 비우고 박하사탕까지 입에 쏙 넣었다.

”우리 맥주 한잔하고 갈까요?“

”그래도 괜찮은가요? 팀장님. 아직 업무시간이….“

”네. 괜찮습니다. 우리 회사 전통입니다. 첫날 오후는 좀 늦게 들어가도 됩니다. 사실 그냥 퇴근해도 됩니다. 근데 제가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

”네. 저야 좋습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맥줏집이라고 하기에는 좀 요사스러웠다. 좁은 지하를 꽤 내려왔다. 팀장이 벨을 누르자 무척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목에 문신을 한 녀석이 고개를 내밀고 팀장에게 아는 척을 했다.

”김 이사 왔어요?“

팀장의 질문에 녀석은 굽신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럼 미자는?“

”왔는데 자고 있어요.“

”그럼, 다 자고 나면 오라고 하세요. 그리고 기본 주세요.“

복도 끝 방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누가 봐도 딱 룸살롱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이래 봬도 유흥업소 삐끼 생활 3개월 경력자올시다.‘

”여긴 비싼 곳 아닌가요? 팀장님. 여자 나오는….“

나는 괜히 순진한 척 사방을 둘러보며 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사장이 저하고 친해요.“

”오!“

나는 격한 감탄의 표정을 일부러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자가 어떻게 생긴 여자인지 궁금했다.

잠시 후, 작은 병의 위스키, 맥주, 얼음통과 함께 요란한 모양의 과일 안주가 나왔다. 김 팀장은 숙달된 솜씨로 폭탄주를 만들어 내게 건넸다.

”자, 우리의 멋진 만남을 위해서.“

”네. 반갑습니다. 팀장님.“

나는 팀장을 따라 한 번에 꿀꺽 잔을 비웠다. 목구멍이 따끈따끈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아졌다.

’출근 첫날부터 이게 웬 횡재야!‘

나는 김 팀장이 마치 형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말했다.

”김 팀장님 이제 말 놓으시죠. 꼭 형처럼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아, 그래. 그럼 지금부터 말 놓는다. 나도 필호 너 오늘 처음 볼 때부터 왠지 모르게 끌리는 게 있었거든.“

’어이 자슥이, 말 놓으라고 했다고 대번에 말 놓네.‘

”네, 저도 그걸 느꼈습니다. 뭐랄까?“

”동병상련이지. 프로그래밍에 일찍 눈을 떤 사람들만이 갖는.“

”네. 맞습니다. 형. 동병상련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 필호야, 잘 새겨들어라.“

”네. 형.“

”우선, 우리 회사와 내가 엮인 히스토리부터 읊어 줄게.“

그가 말한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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