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와 그레고리 1

by 남킹

블라디미르가 도착한 뉴욕은 한겨울이었다. 그는 긴 여행의 피로가 축적되어 무척 핼쑥했다. 하지만 그는 눈앞에 펼쳐진 고층 빌딩 숲과 무수한 차량과 인파 속에 들뜬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늘 그리던 자유의 도시에 그는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는 러시아 시골 출신의 뜨내기였다. 9 남매의 딱 중간이었으며 고등학교를 2년쯤 다니다 자퇴하고는, 동네 건달이 된 둘째 형을 따라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곤 하였다.


그들은 주로 중소도시 외곽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겁박하여 그다지 좋지도 않은 물건들을 팔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블라디미르는 어느 젊은이를 사소한 시비 끝에 흠씬 두들겨 팼는데, 하필이면 그 녀석의 아버지가 전직 KGB 출신이었다.


결국,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이내 잡히고 말았다. 그는 2m나 되는 큰 키에 몸무게 140kg의 거구였다. 어느 누가 그를 처음 봐도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느 한적하고 썰렁한 건물로 끌려간 그의 앞에는 2가지 선택 사항이 놓였다. 감옥 혹은 군 복무.


그는 사거리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빌딩 숲 사이로 스치며 매서운 속도가 붙은 돌풍이 거리를 휩쓸며 불쌍한 행인을 덮치기 시작했다. 살을 여미는 칼 추위였다.


그때, 그의 앞에 무척 고급스러운 캐딜락 한 대가 멈추었다. 길을 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일시적으로 차에 멈추었다. 그 또한, 눈이 시리도록 따가운 태양의 햇살을 반사하는 그곳을 직시했다. 이윽고 조수석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 차림의 젊은이가 황급히 내리더니 뒷좌석 차 문을 공손히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이는 놀랍게도 구부정하게 허리가 굽은 채 초라한 모습의 흑인이 내렸다. 그 순간 블라디미르 입에서 '쿡'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기게 생긴 흑인 녀석이구먼…” 그는 러시아어로 말하였다. 그리고는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끌끌 차면서 옆을 지나갔다.


“어이!” 블라디미르가 한 열 발자국쯤 갔을까? 마치 자신을 호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는 돌아보았다. 흑인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애써 아닌 척하며 다시 뒤돌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야! 러시아 촌뜨기!” 목덜미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시아 말이었다. 순간 블라디미르는 촌뜨기라는 말에 불쑥 솟아나는 화를 내며 다시 돌아섰다.


“날 부른 거야? 이 검은 놈아!”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캐딜락 주변에 있던 젊은이 3명이 그에게 거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머니에서 검은 장갑을 끼더니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뉴욕의 변두리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삽시간에 그들이 싸움 현장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싸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다.


세 명의 청년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길에서 뒹굴고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특전사 출신이었다. 그리고 유아 전쟁(유럽과 아시아의 패권전쟁)에서 3년 동안, 특수 공작원으로 근무하였다.


그는 상대방의 중요 부위와 눈을 차례대로 치고 찔러버렸다. 그러자 청년 한 명이 총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그만!” 흑인이 큰소리로 외쳤다.

“자네 이름이 뭔가?”

“블라디미르다. 너는 이름이 뭐냐?”

“아놀드라고 한다. 영어 할 줄 아나?”

“조금 할 줄 안다. 왜?”

“자, 이건 내 명함이다.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지금 돈이 필요하다. 무슨 일자리냐?”

“수금원.”

“수금원?”

“그래, 돈 받아내는 거.”

“봉급은?”

“네가 얼마나 받아내는 냐에 따라서…”

“좋다.”

“그럼 지금부터 나를 보스라고 불러라.”

“그래, 보스. 고맙다.”


다음 날 블라디미르가 찾아간 곳은 작고 음침한 레스토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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