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06. 길치의 변명
"야, 장지훈. 여기 어디야?"
조수석에 앉은 수현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창밖으로는 처음 보는 풍경이 낯설게 펼쳐지고 있었다. 분명 30분 전에 출발한 핫플레이스 카페는 이 방향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운전대를 잡은 지훈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어? 거의 다 왔어. 이쪽 길이 좀 더 빠르다고 해서."
"빠르다고? 아까 네비 언니는 직진하라고 했는데, 너 갑자기 우회전했잖아. 지금 네비 언니랑 기 싸움하는 거야? 아니면 혹시… 네비 언니랑 싸웠냐?"
수현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지훈은 식은땀을 흘리며 핸들을 꽉 잡았다.
"아니, 싸우긴 뭘 싸워. 그냥… 내 감이 이쪽이라고 말해주길래. 가끔은 기계보다 인간의 직감이 더 정확할 때도 있잖아."
"네 감? 네 감 믿고 따라갔다가 미아 될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네 방향 감각은 거의 신의 영역이야. 인간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와, 너무하네. 내가 그렇게까지 길치는 아니거든?"
"아니라고? 지난번에 우리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너 30분 동안 같은 골목만 뱅뱅 돌았던 거 기억 안 나? 그때 네 별명이 '골목길의 유령'이었잖아."
수현의 팩트 폭격에 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슬쩍 백미러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이는 자신이 있었다.
"그건… 그날따라 유난히 골목이 헷갈려서 그랬던 거고. 오늘은 진짜 자신 있다고."
"자신? 네 자신감의 근거는 뭔데? 혹시 네 머릿속에 자체 GPS라도 탑재되어 있냐? 근데 그 GPS 고장 난 지 꽤 된 것 같은데?"
수현은 팔짱을 끼고 창밖을 내다봤다. 점점 더 생경한 풍경이 이어졌다. 논과 밭이 보이기 시작했고, 저 멀리에는 야트막한 산도 보였다.
"…장지훈. 우리 지금 혹시… 귀농 체험하러 가는 거니? 흙냄새가 정겹네, 아주."
"아니, 그럴 리가!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지훈은 결국 차를 길가에 세우고 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그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수현은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왜, 뭐래? 네비 언니가 화 많이 났대? '이 길치 녀석아, 내 말 안 듣더니 꼴좋다!' 뭐 이런 메시지라도 보냈어?"
"…조금… 돌아온 것 같네. 하하."
지훈의 어색한 웃음에 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이게 조금 돌아온 거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지금 우리 혹시 서바이벌 게임이라도 시작한 거냐? 최종 목적지는 '문명사회로의 귀환' 뭐 이런 건가?"
"미안하다… 내가 길을 너무 얕봤네."
"길을 얕본 게 아니라, 네 능력을 과대평가한 거겠지. 너 그냥 앞으로 운전대 잡지 마. 내가 할게. 아니, 그냥 우리 뚜벅이로 다니자. 그게 제일 안전하겠다."
수현이 차 문을 열고 내리려는 시늉을 하자, 지훈이 다급하게 그녀를 말렸다.
"아, 진짜 미안!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아니, 오늘 카페는 내가 다 쏜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기회? 너한테 기회를 줬다가 우리 오늘 안에 카페 구경도 못 할 것 같은데? 이러다 해 질녘에 노을 맛집 찾아다니는 거 아니냐?"
"아니야! 진짜 이번엔 제대로 찾아갈 수 있어! 아까 잠깐 정신이 다른 데 팔려서… 집중하면 나도 길 잘 찾는다고!"
지훈은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시동을 걸었다. 수현은 못 미덥다는 표정이었지만, 일단은 다시 조수석에 앉았다.
"두고 보자. 이번에도 딴 길로 새면, 너 진짜 각오해야 할 거야. 내 인내심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거든."
지훈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네비게이션 안내에만 집중했다. "잠시 후 우회전입니다." "300미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그는 네비 언니의 목소리를 거의 신처럼 받들며 운전했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그들은 목적지인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페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고, 창가 자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냐. 네 덕분에 황금 같은 주말 오후를 길바닥에서 다 보냈네."
수현이 툴툴거리자, 지훈은 멋쩍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대신 내가 여기서 제일 비싼 케이크 사줄게. 그리고 다음부턴… 그냥 얌전히 네비 언니 말 잘 들을게."
"흥. 그 약속 꼭 지켜라. 안 그러면 다음엔 진짜 너 혼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찍게 될 줄 알아."
지훈은 진심으로 반성했다. 자신의 방향 감각은 정말이지… 넷플릭스 미스터리 드라마보다 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수현의 잔소리는, 어쩌면 길 잃은 자신을 위한 가장 정확한 네비게이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네비는 가끔 너무 시끄럽다는 단점이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