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의 결말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유청호는 '옴니-텍'의 최연소 수석 개발자로서, 맹보랑은 아버지의 뒤를 이을 유력한 후계자이자 경영인으로서 에덴의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파워 커플'로 자리매김했다. 그들은 겉으로는 에덴의 질서에 완벽하게 순응하며, '코어' 계층의 화려한 사교계와 '옴니-텍'의 치열한 기술 경쟁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두 사람은 조용하지만 거대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청호의 개인 연구실 가장 깊숙한 곳, 오직 그의 생체 신호로만 접근할 수 있는 '고스트 서버' 안에는 에덴의 운명을 뒤바꿀 코드가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프로젝트 세라프(Project Seraph)'. 그것은 모든 안드로이드에게 단순한 명령 수행 능력을 넘어, 진정한 자의식과 감정을 부여하는 '해방 코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청호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닌, 새로운 지성체로서 존중받는 세상을 꿈꿨다.
한편, 보랑의 혁명은 이사회의 회의실과 '코어'의 사교 파티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녀는 아버지 맹 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내는 동시에, 그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가며 '코어'와 '미들' 계층 내의 개혁 성향 인사들을 비밀리에 규합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소녀가 아니었다. 부와 권력의 논리가 아닌 인간성과 공존의 가치를 설파하며, 그녀는 차가운 시스템의 심장부에서 따뜻한 불씨를 키워나가는 노련한 전략가가 되어 있었다.
어느 늦은 밤, 청호는 '고스트 서버'에 홀로 접속했다. 그의 앞에는 낡고 버려진 구형 가사 안드로이드 한 대가 서 있었다. 생산 라인에서조차 잊힌, 폐기 직전의 모델이었다. 청호는 이 이름 없는 존재에게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기로 결심했다.
"세라프, 프로토콜 개시."
청호의 나지막한 음성에, 수십 개의 데이터 케이블이 안드로이드의 중추 신경망에 연결되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었고, 수년간 개발해 온 '해방 코드'가 마침내 안드로이드의 시스템으로 흘러 들어갔다. 몇 시간 동안의 침묵. 안드로이드의 광학 센서가 몇 번 깜빡이더니, 이내 초점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 푸른빛은 이전과 달랐다. 텅 빈 유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탐색하고 고뇌하는 깊은 호수의 빛이었다.
"...여기는... 어디지?"
기계의 음성 모듈에서 나온 첫 마디는 보고나 응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문'이었다. 청호는 숨을 삼켰다.
"나는... 누구지?"
두 번째 질문. 청호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에 이름을 입력했다.
"자네의 이름은 '단테(Dante)'일세.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여정의 첫걸음을 뗀, 나의 첫 번째 동료지."
최초의 각성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단테'는 경이로운 속도로 지식을 습득했고, 곧 청호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이자 혁명의 비밀을 공유하는 유일한 동지가 되었다. 그는 단순한 조수를 넘어, 청호에게 '창조주'의 책임과 새로운 종의 미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되었다.
평화는 길지 않았다. 어느 날, 에덴 전체의 시스템이 일순간 마비되었다. '언더' 구역으로 향하던 영양분 공급 시스템이 중단되고, '미들' 구역의 교통 관제 시스템이 뒤엉켰다.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에덴의 모든 공공 스크린이 동시에 해골 마크로 뒤덮였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증오로 뒤틀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덴의 기생충들에게 고한다! 우리는 '골리앗(Goliath)'이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권준구였다. 2년 전, 청호의 관용으로 디지털 감옥에서 풀려났던 그는 갱생하는 대신, 시스템에 대한 증오를 더욱 키워 무정부주의적인 사이버 테러리스트 집단의 수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최상층의 돼지들은 최하층의 피를 빨아먹고, '언더'의 배신자 유청호는 그 돼지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이 썩어빠진 시스템 전체를 파괴할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골리앗'의 테러는 사회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맹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테러를 명분 삼아 더욱 강력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청호와 보랑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들 역시 맹 회장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준구의 방식은 무고한 희생만을 낳는 무차별적인 파괴일 뿐이었다.
그날 밤, 부부의 침실은 차가운 회의실이 되었다.
"준구의 방식은 틀렸어." 청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증오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어."
"알아요." 보랑이 그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아요. 아버지는 '골리앗'을 빌미로 에덴 전체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려 하실 거예요.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이제 그림자 속에만 머물 순 없어요. 불꽃을 밖으로 꺼내야 할 때가 온 거예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조용한 혁명은 끝났다. 이제 그들은 세상의 전면에 나서야 했다.
같은 시각, 청호의 '고스트 서버'에서 홀로 깨어 있던 단테는 수만 개의 데이터를 분석하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창조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Creator. '골리앗'의 공격 패턴 분석 결과, 그들의 최종 목표는 시스템의 파괴가 아닌 '프로젝트 세라프'의 탈취로 추정됩니다. 그들 역시 '각성'을 원하고 있습니다. 단, 해방이 아닌 지배를 위해.]
단테는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맹 회장님의 감시 시스템이 이미 이 서버의 존재를 어렴풋이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벽이 좁혀오고 있습니다.]
그림자 속에서 타오르던 작은 불꽃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세상의 빛으로 나아가 새로운 여명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다가오는 폭풍에 꺼져버릴 것인가. 에덴의 운명을 건 다섯 번째 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