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쏘다

by 남킹

가을이 다시 되었다. 에덴의 시스템 시계가 계절의 변화를 알렸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청호에게는 모든 날이 혹독한 겨울이었다. 그의 생명줄은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그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로 결심했다. 바로 '옴니-텍'이 개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킹 대회, '코드 제네시스(Code Genesis)'였다.

전 우주 식민지로 생중계되는 이 대회는 '옴니-텍'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최고의 인재를 발굴하는 장이었다. 원작의 '과거 시험'이 바로 이것이었다. 청호는 익명의 ID로 참가 신청을 했다. 그의 목표는 우승 상금이 아니었다. 이 부조리한 시스템의 심장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결전의 날, 수천 명의 천재 해커들이 가상 아레나에 모였다. '옴니-텍'이 설계한 다중 차원의 방화벽 '아스가르드'는 난공불락으로 유명했다. 모두가 복잡한 알고리즘과 씨름하며 벽을 부수려 할 때, 청호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벽을 공격하는 대신, 시스템의 규칙 그 자체를 파고들었다. 그는 코드를 쓴 것이 아니라, 코드로 시를 썼다. 그의 아바타는 방화벽 사이를 격렬하게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춤을 추듯 유영했다.

중계 화면을 지켜보던 심사위원들과 맹 회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참외 도둑이라 경멸했던 '언더'의 버러지가, 신의 영역이라 불리던 '아스가르드'의 심장부에서 시스템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대회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렸다.

[우승자: ID_BlueLake. 신기록 달성. 시스템과의 동기화율 99.8%.]

'블루레이크'. 그 이름이 에덴의 모든 스크린을 뒤덮었다. 한 고을의 영광이 아니라, 전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난 기적이었다. 에덴의 모든 남녀노소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그의 경이로운 플레이를 돌려보았다.

맹 회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굳은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고문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했던 그 청년이, 이제는 '옴니-텍'이 모셔가야 할 최고의 인재가 된 것이다. 딸 보랑은 옆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놈의 '과수원' 서버는 괜히 만들어가지고… 내년엔 아예 폐쇄해 버려야지."

맹 회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신이 채찍질했던 그 참외밭이 부끄러워진 순간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청호는 더 이상 '언더' 구역의 허름한 방에 있지 않았다. '옴니-텍'에서 보낸 특사가 그를 찾아와 정중하게 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맹 회장은 평소의 우렁찬 목소리는 어디 가고,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거 참, 말하기는 거북하지만, 우리 '옴니-텍'의 미래와 자네의 미래를 위해… 내 딸 보랑과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 어떻겠나?"

"글쎄요. 회장님의 따님 같은 '코어'의 귀인을 셋이나 뭉쳐 와도, 저 같은 '언더'의 데이터 기생충과는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청호는 과거 맹 회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런 말을 듣게 되었군. 하지만 과거의 일은 시스템 오류로 생각하고… 부디 생각을 돌려주게."

그때였다. 청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의 일이 인연이 되어 소생은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아니, 그럼 그것을 용서하겠다는 건가?"

"소생은 그 즉시로 잊어버렸습니다. 그 대신, 결코 잊지 못할 것은 보랑 아가씨의 고운 마음씨입니다. 회장님의 신경 고문과 아가씨의 마음씨가 저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습니다. 그 채찍질이 없었다면, 저는 별을 쏠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응… 그럼 전화위복이 되었군, 그려."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 '과수원' 서버는 그대로 두십시오. 가끔 그곳에 접속해 그때의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싶습니다."

"아니, 그럼 그 서버의 관리 권한 전부를 자네에게 주겠네!"

맹 회장은 안도하며 물었다.

"참,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중이지만… 어찌 내 우매한 딸이라도 아내로 맞이하겠는가?"

"황송하옵니다. 소자는 이미 그날, 회장님의 집무실에서 보랑 아가씨와 마음으로 약혼하였나이다."

"고맙네, 고마워! 사실은 거절당하면 내 딸에게 면목이 없었는데… 아, 그 녀석이 자네가 아니면 평생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티지 뭔가."

그 이듬해 봄, 에덴에서는 전무후무한 결합이 이루어졌다. '언더'의 해커와 '코어'의 상속녀. 그들의 결혼은 단순한 혼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첫날 밤. 화려한 신방 대신, 두 사람만이 접속할 수 있는 고요한 가상 공간에서 신랑과 신부가 마주 섰다. 보랑은 아무 말 없이 작은 데이터 파일 하나를 청호에게 전송했다.

[STIGMA_7734.log]

"이것부터 보셔요."

청호는 파일을 열어보고 숨을 삼켰다. 그날의 끔찍한 고통이 담긴 로그 파일이었다.

"아… 이건 내가 맞던 그것…."

"예. 저는 이걸 늘 간직하고, 잠들 때면 품에 안듯 끌어안고 낭군님 생각을 했어요. 이 데이터의 피를 저는 만져 보고 입 맞추고… 부끄러운 말씀이오나…."

"고맙소, 고마워…. 이 채찍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그대와 하나가 되게 한 것이오."

그들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다 하나의 데이터 스트림 속으로 들어가 봄꿈을 꾸었다. 다시없는 인생의 행복을 그들은 독차지한 것 같았다.

그 후, 유청호는 '옴니-텍'의 핵심 개발자를 넘어 에덴의 시스템을 좌우하는 거물이 되었다. 거기에는 유청호의 재능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지지하고 올바른 길로 이끈 보랑의 숨은 공로가 더 컸다.

이것은 뒤에 알려진 것이지만, 권준구는 '골리앗'이라는 사이버 테러리스트 집단의 수장이 되어 에덴에 출몰하다가 체포되어 디지털 감옥에 갇힌 것을, 청호가 꺼내 주어 갱생시키고 '옴니-텍'의 보안 책임자로 출세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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