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 회장의 집무실은 '코어' 구역의 최상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통유리 너머로는 인공 태양의 눈부신 빛을 받는 에덴의 장관과 그 아래 어둠에 잠긴 '언더' 구역의 실루엣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최고급 의료용 의자처럼 보이는 매끈한 백색의 기계, '신경 동조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용도는 치료가 아닌, 고통의 재현에 있었다. 원작의 '복숭아나무'는 이제 가장 정교한 기술의 폭력이 되었다.
청호는 그 의자에 온몸이 결박된 채 앉아 있었다. 전투 안드로이드에게 제압당하며 주입된 신경안정제 기운이 희미하게 남아있었지만, 정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해커."
맹 회장은 와인잔을 우아하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냉혹함이 서려 있었다.
"네놈 혼자서 '과수원'의 보안을 뚫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범이 누구지? 권준구, 그놈인가?"
청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준구를 지켜줄 의리는 없었다. 하지만 '코어'의 규칙대로 그들의 게임에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혼자 한 짓입니다."
"어리석군."
맹 회장은 손짓 하나로 의자를 가동시켰다. 윙하는 낮은 기계음과 함께 청호의 관자놀이에 부착된 전극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고통은 물리적인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그 대신, 백색의 소음이 되어 그의 신경계를 직접 불태웠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모든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모든 시냅스가 고통 속에서 발화했다. 세상의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감각, 순수한 고통만이 그의 의식을 잠식했다. 원작의 '채찍'은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칼날이 되어 그의 정신을 난도질했다.
하지만 청호는 울지 않았다. 그의 눈에 맺힌 것은 눈물이 아니라, 인간을 부품 이하로 취급하는 저 오만한 자에 대한 분노였다. 그의 꺾이지 않는 눈빛은 사람 같지 않고 우습게 보이기까지 했다.
한편, 자신의 화려한 방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보랑은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발생한 비상 보안 경보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녀는 개인 단말기로 내부 보안 카메라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묶인 채 보이지 않는 폭력에 경련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 보랑이 지금껏 알아온 세상은 모든 것이 통제되고 정제된, 무균실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날것 그대로의, 원초적인 폭력이었다.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잔혹함에 대한 공포보다, 그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청년의 눈빛에 온 마음을 사로잡혔다. 저항, 의지, 인간다움. 그녀가 책과 데이터 속에서만 접했던 단어들이 살아있는 형상으로 눈앞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멈춰요!"
보랑은 방을 뛰쳐나와 아버지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자동문이 열리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신경 동조 의자'의 제어판으로 달려가 비상 정지 버튼을 눌렀다. 지독한 기계음이 멎었다.
"아버지! 그만두세요. 용서하세요!"
맹 회장은 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 얼굴을 굳혔다.
"보랑아, 들어가거라! 어디 나와서 함부로 나서느냐! 남녀가 유별하고, 계급이 엄연한 법이다!"
"그 도련님을 풀어주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겠어요. 고작 데이터 좀 훔쳤다고 저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요? 소녀는 못 보겠습니다. 이건… 이건 아버님의 망상이에요!"
규중 처녀로서는, 그리고 '코어'의 상속녀로서는 대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고통의 여파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청호가 희미한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자신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소녀. 현실감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와 그보다 더 빛나는 당찬 눈빛.
'아… 저 소녀가 준구와 혼담이 오간다는 맹 회장의 딸이로구나.'
청호는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고통과 연민, 경멸과 경이, 창피함과 고마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그 짧은 순간의 교감 속에서 오갔다. 청호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네놈과 같이 시스템에 들어온 놈을 대라. 그렇지 않으면 밤새도록 여기서 뇌를 태워주마."
"…죽어도 말 못 합니다."
"뭣이! 요 앙큼한 놈 같으니!"
맹 회장의 분노가 극에 달해 다시 제어판으로 손을 뻗는 순간, 보랑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버님!" 보랑은 울먹이며 아버지의 팔을 붙잡았다. "이 기계를 멈추고 저 결박을 풀기 전에는 한 발짝도 못 가겠어요. 아버님, 이건 너무 과한 망령이십니다. 죄송하오나…."
보랑은 울었다. 맹 회장은 딸의 완강한 저항에 기가 막혔지만, 결국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다. 그는 딸에게 약했다.
"오늘은 놔준다만, 다시 그따위 짓을 하면 용서 없다."
맹 회장이 전투 안드로이드에게 눈짓하자, 그들이 다가와 청호의 결박을 풀었다. 청호는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안드로이드에게 끌려 나가기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보랑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랑은 아버지가 등을 돌린 찰나, 재빨리 자신의 개인 단말기를 제어판의 포트에 연결했다. 그리고 방금 전 청호에게 가해진 모든 고통의 기록, 신경계에 어떤 자극이 얼마만큼의 강도로 가해졌는지를 담은 로그 파일 하나를 자신의 저장소로 몰래 복사했다.
[파일 복사 완료: STIGMA_7734.log]
그 파일이 바로 2099년의 '피 묻은 채찍'이었다. 보이지 않는 상처의 증거이자, 두 사람을 운명으로 엮을 궤도의 혈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