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nn - I hold you

음악, 상념

by 남킹

https://youtu.be/9qzqyoIK7H8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 되자, 변한 것 중 하나는, 흥미로운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게다. 흥미가 사라진 자리는 그저 따분하지만, 안온하기도 한 일상의 조용한 반복만 계속될 뿐이다. 자고 깨어나, 내 방 네모난 창에 그려진 라일락과 오동꽃 그리고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고, 그사이를 오고 가는 바람을 느낀다.


늦은 아침과 간단한 청소. 그리고 머그잔에 커피를 쏟고 볕이 드는 베란다, 길게 뻗은 안락의자에, 늘 입어 왔던 오트밀 색 스웨터를 입고 비스듬히 누워, 희고 성긴 탁자에는 노트북을 담아두고, 지난밤 얕은 잠결에 꾸었던 괴상망측한 기억 자락을 습관처럼 더듬는다.


꿈은 참 늙지도 않는다. 마치 샤갈의 그림처럼, 회색 도시 위를 몽환답게 날아다니기도 하고, 살인자의 칼을 피해 어둠 속을 기어 다니기도 한다. 러시안 티룸 같은, 고풍스러운 안락함 속에, 엔디브 샐러드와 붉은 마고 와인을 앞에 두고, 푹신한 쿠션에 몸을 누인, 순딩이 같은 여인의 따스한 손을 느끼는가 하면, 척박한 땅에서 난 허브가 가득한, 큰 포푸리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집에서, 아이리스 꽃향기를 맡으며, 유유한 식사를 하다, 별안간 적들과 죽음의 결투를 신청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십 대 때 가졌던 유치함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좀 더 좋게 말하자면, 여전히 꿈은 젊고 활기차고 무모하고 사랑스럽다. 이제 꿈도 몸을 떠날 때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어젯밤 꿈은, 환상이 아니라, 기억처럼 또렷하고 사실처럼 진지하다. 눈부시게 젊은 날, 모든 시간이 본능과 꿈을 좇아 엮어지던 시절, 삼수 끝에 겨우 들어간 대학 교정을 신바람 나게 휘젓고 다니던 그 날들. 낭랑한 웃음소리가 번지던 교실과 후문으로 가는 길옆을 가득 채운 개나리. 끊어지지 않고 늘 휘감겨 불어오는 소나무 숲길의 산들바람.


나무는 춤을 추고 구름은 한가롭다. 100년도 더 된 캠퍼스가 마치 어제처럼 눈앞에 그려진다. 숲이 끝나는 곳에 엉뚱하게 솟아오른 세 동의 기숙사 건물. 내가 속한 A동 11층에서 나는 늘 그녀가 사는 C동 9층을 바라다보곤 하였다. 9층의 어느 창인지는 모른다.


그냥 그중 하나에 노란 불이 들어오면 무심코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창문이 열리기라도 하면, 나는 창 문턱에 턱을 괴고, 도저히 누가 누군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바람에 코끝이 시릴 만큼 쳐다보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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