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존재론적 무게에 짓눌려 기억의 지층으로 함몰된 아홉 살 소년의 봄날 오후. 그날은 장 앙투안 와토의 붓끝에서 막 태어난 캔버스처럼 더없이 목가적인 빛의 향연으로 충만했다. 불로뉴 숲의 대기는 갓 틔운 마로니에 잎의 미세한 떨림과 갓 구운 브리오슈의 온기가 뒤섞인 감미로운 향취를 머금었다. 갓 피어난 라일락의 보랏빛 숨결은 햇살의 금빛 가루와 어우러져 보는 이의 영혼 깊숙이 스며드는 현상학적 계시를 연출했다. 파리의 푸른 허파와도 같은 이 숲에서 발랑탱 루이 조르주 외젠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이름의 소년은 순수한 감각의 집합체로 존재했다. 그는 아직 삶의 비극적 본질이라는 심연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의 존재는 아버지 아드리앵 프루스트 박사의 이성적 세계와 어머니 잔느 베유의 섬세한 예술적 감수성 사이에 놓인 위태롭고도 축복받은 반도였다.
당대 최고의 위생학 권위자였던 아드리앵 박사는 보이지 않는 콜레라균의 경로를 추적하여 유럽 공중보건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었다. 그의 세계는 현미경 아래 명징하게 드러나는 인과율의 세계였고 모든 현상은 분석되어야 할 데이터의 총합이었다. 그에게 아들은 사랑이라는 비이성적 감정의 발현이자 유전학적 계보를 잇는 생물학적 연속체였다. 반면 유서 깊은 유대계 가문 출신의 교양 있는 여인 잔느에게 마르셀은 자신의 내면에 잠든 모든 시와 음악이 육화된 현현이었다. 그녀는 아들의 눈동자에서 하인리히 하이네의 비애를 읽었고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서 쇼팽의 녹턴을 들었다.
그날 오후 마르셀은 부모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숲길을 걸었다. 그의 감각은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활짝 열린 무방비한 수용체였다. 그는 바람의 감촉에서 대기의 질량을 느꼈고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감지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색채는 그의 내면에서 분해되고 재조합되어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풍경을 이루었다. 그의 영혼은 외부의 모든 감각적 인상을 여과 없이 빨아들여 기쁨을 황홀경으로 작은 슬픔을 존재론적 비탄으로 변환시키는 특이한 연금술의 도가니였다.
사건은 사소한 데서 시작되었다. 소년은 갓 꺾은 산사나무 가지 향기에 매료되었다. 덜 익은 아몬드와 바닐라를 섞은 듯 달콤 쌉쌀한 향기였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그 향기로 채우려는 듯 탐욕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 순수한 감각적 쾌락을 향한 유아기적 탐닉이자 세계와의 합일을 꿈꾸는 낭만적 충동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의 육체는 그를 배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목구멍 깊숙한 곳의 미세한 간지러움으로 시작되었다. 이물감을 떨쳐내려 헛기침을 했지만 불쾌한 감각은 헤라클레스의 목을 조르던 히드라처럼 더욱 끈질기게 그를 옭아맸다. 간지러움은 날카로운 통증으로 변했고 그의 기관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굳게 닫혔다. 공기가 드나들던 통로는 실낱같은 틈새만을 남긴 채 협착되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낡은 풍금처럼 날카롭고 불길한 소리가 났다. 쌕쌕거리는 소리는 이내 그의 흉곽 전체를 울리는 죽음의 전주곡 같은 교향악으로 발전했다. 그의 몸 안에서 이름 모를 야수가 깨어나 포효하며 그의 호흡을 관장하기 시작했다.
아드리앵 박사는 아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창백한 그림자를 즉각 인지했다. 의사로서 그는 입술 주변의 청색증과 흉골 상부의 함몰 그리고 공포로 확장된 동공을 포착했다. 그의 머릿속은 ‘기관지 경련으로 인한 급성 천식 발작’이라는 진단을 내렸지만 아버지로서 그의 심장은 얼음장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과학적 지식이라는 갑옷은 아들의 고통이라는 창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꿰뚫렸다. 그는 수많은 환자를 통해 이 질식감을 관찰해왔으나 자신의 혈육이 겪는 고통 앞에서 모든 지식은 무력했다.
반면 잔느는 아들의 고통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자신의 전 존재로 공명했다. 아들의 쌕쌕거리는 숨소리에 그녀 자신의 숨이 멎었고 파랗게 변하는 아들의 입술 위에서 그녀의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그녀의 사랑은 아들의 고통을 자신의 신경계로 직접 전송받는 신비주의적 감응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아들을 제물처럼 품에 안았다. 그녀의 몸은 아들을 위한 마지막 성전이자 최후의 방패였다.
마르셀의 의식 속에서 시간은 주관적 체험에 따라 무한히 늘어나는 고무줄과 같았다. 숨 쉬지 못하는 찰나는 영겁의 시간으로 확장되었다. 불로뉴 숲의 풍경은 윤곽을 잃고 빛과 색의 혼돈스러운 파편으로 해체되었다. 부모의 목소리는 물속에서 듣는 소리처럼 무의미한 소음으로 변질되었다. 그의 작은 흉곽은 공기를 밀어 넣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격렬하게 오르내렸지만 닫힌 기관지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산소 부족으로 뇌는 붉고 검은 환영들을 투사했다. 그는 차가운 물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꿈을 꾸었다. 수면 위로 어머니의 애타는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사지는 납처럼 무거웠다. 아홉 살의 나이에 그는 죽음이 지독하고 능동적인 고통의 형태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아드리앵 박사는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 아들을 안아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잔느는 그 뒤를 따르며 태초의 비탄과 기도가 뒤섞인 원초적인 절규를 토해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르셀의 희미한 의식 속으로 에테르 냄새와 함께 주사기의 차가운 금속 빛이 어른거렸다.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드는 순간 그의 몸 안에서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경련하던 기관지 근육이 약물의 힘으로 강제로 이완되었다. 굳게 닫혔던 수문이 기적처럼 열리고 생명의 정수인 공기가 가뭄 끝 단비처럼 폐부로 밀려들었다.
소년은 길고 긴 기침과 함께 온갖 것을 토해냈다. 마침내 그는 깊고 완전한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첫 호흡의 순간 그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을 넘어선 종교적인 황홀경이었다. 그는 비로소 공기의 절대적인 가치를 깨달았다. 숨 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이 허락한 가장 위대한 기적임을 알았다.
그날 이후 마르셀 프루스트의 세계는 영원히 변했다. 그의 삶은 불안과 공포의 왕국 그리고 어머니 잔느의 절대적인 사랑이 미치는 안전하고 폐쇄적인 왕국으로 나뉘었다. 잔느의 사랑은 아들이 겪은 죽음의 공포에 비례하여 더욱 강박적인 형태를 띠었다. 그녀는 아들을 외부 세계의 모든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격리시키려 했다. 마르셀의 침실은 신성한 성역이자 그의 연약함을 상기시키는 감옥이 되었다. 그의 병약함은 평범한 소년의 삶을 앗아간 대신 어머니의 사랑을 독점할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했다.
이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중요한 의식이 탄생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어머니가 그의 이마에 남기는 굿나잇 키스였다. 이 입맞춤은 단순한 애정 표현을 넘어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상징적 행위가 되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버지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마르셀의 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그는 어머니가 혹시라도 자신의 방에 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 불로뉴 숲에서 겪었던 질식의 공포를 다시 느꼈다. 어머니의 입맞춤이 없다면 다가오는 밤은 그가 홀로 건너야 할 죽음의 강과도 같았다. 그 입맞춤은 밤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한 유일한 부적이었다.
마침내 어머니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면 그의 심장은 안도감으로 격렬하게 뛰었다. 방문이 열리고 어머니의 체취가 방 안을 감싸는 순간 그는 구원받은 순례자가 되었다. 잔느는 침대 곁에 앉아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거나 소설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의식의 정점인 입맞춤의 순간이 다가왔다. 어머니가 몸을 숙여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대는 찰나 마르셀은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그 순간에 집중했다. 그는 어머니 입술의 감촉과 머리카락의 향기 그리고 그녀의 심장 박동을 자신의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하려 했다. 그 입맞춤은 완전한 평화와 충만감을 선사했다. 존재의 근원과 합일하는 열반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신성한 의식에는 치명적인 역설이 있었다. 입맞춤이 주는 황홀경이 클수록 그것이 끝난 뒤의 상실감 또한 깊고 고통스러웠다. 어머니가 이마에서 입술을 떼고 방문을 향해 걸어가는 순간 마르셀의 세계는 다시 붕괴했다. 문 닫히는 소리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아담의 귓가에 들렸을 천국의 문소리 같았다. 어머니의 온기가 사라진 방에는 춥고 낯선 어둠만이 남았다. 그는 그 짧은 입맞춤의 순간을 마약처럼 더욱 필사적으로 갈망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입맞춤은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자 가장 가혹한 저주가 되었다. 그것은 그를 살게 하는 양식이자 영원한 결핍 속에 가두는 독배였다.
훗날 코르크로 둘러싸인 침실에서 그는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위대한 예술이 결국 어머니의 입맞춤을 기다리는 소년의 애처롭고 숭고한 고통을 무한한 변주를 통해 영원으로 끌어올리려는 필사적인 시도였음을. 불로뉴 숲에서 시작된 육체의 고통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영혼의 고통으로 변환되었고 그 고통이야말로 그의 예술을 잉태한 가장 비옥하고 저주받은 자궁이었음을. 그날 밤 아홉 살 소년 마르셀은 입맞춤의 온기가 사라진 차가운 이마를 감싸 쥔 채 자신의 위대한 운명의 서막을 홀로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