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의 결투

by 남킹

존재의 본질이 타자의 시선이라는 지옥 속에서 규정된다는 사실을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미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체감하고 있었다. 그가 유영하던 살롱은 서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해석하며 판결을 내리는 거대한 파놉티콘이었다. 그 안에서 ‘명예’란 타인들의 변덕스러운 시선 위에 위태롭게 세워진 유리 성채에 불과했다. 그 성채 너머에는 그가 필사적으로 숨겨온 비밀의 정원 즉 레이날도 안과의 금지된 사랑과 그의 동성애적 감수성이 자리했다. 그는 이 유리 성채가 타인의 악의라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 산산조각 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살았다.

그 불안이 현실이 된 것은 1897년 2월의 어느 잿빛 아침이었다. 그는 신문 ‘르 주르날’에서 자신의 이름이 교수형 집행 영장의 낙인처럼 인쇄된 것을 발견했다. 기사를 쓴 자는 장 로랭이었다. 그는 문학계의 가장 추악하고 매혹적인 독사였다. 스스로 공공연한 동성애자이면서도 타인의 비밀을 폭로하는 데서 가학적인 쾌락을 느끼는 뒤틀린 심성의 소유자였다. 로랭의 기사는 교묘한 암시와 악의로 직조된 독거미줄 같았다. 그는 프루스트의 첫 작품집 『즐거움과 나날들』의 서문을 알퐁스 도데가 써준 사실을 언급하며 그 배경에 프루스트와 도데의 아들 뤼시앵 도데 사이의 ‘특수한 우정’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독화살을 날렸다. ‘특수한 우정’은 당시 동성애 관계를 지칭하는 누구나 아는 은어였다.

마르셀의 눈에 신문 활자들은 꿈틀거리는 혐오스러운 생물체로 변모했다. ‘변태’ ‘타락’ ‘비정상’이라는 단어들이 그의 고막을 찢을 듯이 파고들었다. 그의 육체는 이 정신적 공격에 즉각적인 반란으로 응답했다. 목구멍이 수축하고 기관지가 경련하며 심장이 광적인 리듬으로 고동쳤다. 이번의 질식감은 산소 결핍이 아닌 ‘수치심’이라는 더 근원적이고 파괴적인 독소에 의한 존재론적 질식이었다. 그의 사회적 자아가 순식간에 불타 소멸하는 듯한 공포. 그것은 육체적 죽음보다 끔찍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완전한 말살을 의미했다.

그의 의식 속으로 아버지의 실망 어린 얼굴과 어머니의 비탄에 잠긴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에게 안겨줄 고통을 상상하자 심장이 뭉그러져 내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로랭의 공격은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악마적인 시도였다. 그 순간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차갑고 단단한 무엇인가가 깨어났다. 생존 본능이자 ‘명예’라는 관념에 대한 동물적인 집착이었다. 그가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그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 척 가장 남성적이고 공적인 방식으로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결투’였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의지를 공표함으로써 사회적 인정을 회복하는 야만적이고 숭고한 연극이었다.

그는 즉시 장 로랭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무기는 권총 거리는 25보로 결정되었다. 날짜는 2월 13일 새벽 장소는 뫼동 숲이었다. 결투 전날 밤 마르셀은 잠들지 못한 채 다가올 새벽을 기다렸다. 그는 촛불 아래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창백하고 깡마른 몸을 보았다. 이 연약한 육체가 과연 내일 새벽 차가운 총구를 마주하고 납탄의 충격을 견딜 수 있을까. 그는 죽음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죽음의 과정에서 겪게 될 통제 불가능한 육체의 굴욕이었다.

새벽 안개가 뫼동 숲을 유령의 숨결처럼 감돌고 있었다. 결투 상대인 장 로랭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두 사람은 고대 로마의 검투사처럼 서로의 눈을 피한 채 정해진 위치에 섰다. 중재인이 마호가니 상자를 열자 잘 닦인 한 쌍의 권총이 붉은 벨벳 위에 놓여 있었다. 마르셀은 총을 건네받았다. 상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것은 가능태로서의 죽음의 무게였다.

“쏘시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시간은 다시 늘어났다. 마르셀은 기계적으로 팔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총성이 숲의 정적을 산산조각 냈다. 거의 동시에 로랭의 총구에서도 불꽃이 터져 나왔다. 마르셀은 눈을 감고 고통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도 로랭도 멀쩡히 서 있었다. 그들의 총알은 모두 허공을 갈랐다.

결투는 끝났다. 명예는 ‘회복’되었다. 증인들은 두 사람의 용기를 칭송하며 악수를 권했다. 마르셀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승리의 기쁨 대신 깊고 허탈한 공허감만이 남았다. 그는 이 결투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사회적 명예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원시적인 폭력의 의식에 참여했지만 그 결과로 얻은 것은 인간 사회의 위선과 잔혹함에 대한 뼈저린 환멸뿐이었다. 파리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그는 이 경험을 언젠가 글로 써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 수치심의 맛과 공포의 질감 허무의 무게를 가장 정직한 언어로 기록해야만 했다. 그것만이 이 무의미한 폭력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처 입은 영혼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었다. 그날 이후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쓰기는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둡고 추한 심연을 외과의사처럼 냉정하고 정밀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결투의 총성은 그의 문학 세계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화약 냄새와 피의 비린내를 남겼다. 살롱의 이방인은 수치심의 결투를 통해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어둠을 탐사하는 고독한 해부학자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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