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에 의미의 둑을 쌓고 기억의 물길을 내어 ‘삶’이라 불리는 흐름을 만드는 것은 사랑과 질서라는 두 개의 중력장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초기 우주에서 이 두 힘은 그의 부모라는 인격으로 현현했다. 아버지 아드리앵 박사는 모든 것이 이성과 인과율 아래 운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질서의 화신이었다. 그의 존재는 아들의 변덕스러운 감수성 위에 드리워진 거대하고 안정적인 그림자였다. 어머니 잔느는 아들의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사랑 그 자체였다. 그녀의 세계는 법칙이 아닌 은총이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이 두 세계가 유지해온 균형은 1903년 11월 26일 영원히 붕괴되었다. 아드리앵 박사는 뇌출혈이라는 지극히 의학적인 사건으로 사망했다. 마르셀에게 그것은 부친의 상실을 넘어 그의 세계를 지탱하던 형이상학적 기둥 하나가 증발해버린 우주론적 사건이었다. 아버지의 서재는 주인을 잃은 왕좌처럼 공허하고 위압적인 침묵에 잠겼다. 마르셀은 그 서재에서 시간의 파괴적인 힘 앞에 인간의 모든 이성적 기획이 얼마나 허무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아버지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그가 남긴 그림자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마르셀은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이성적 세계관이 실은 자신의 몽상적 기질이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던 보이지 않는 중력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현실 세계와의 연결을 강요하는 성가시지만 필수적인 끈이었다. 이제 그 끈이 끊어지자 마르셀과 어머니 잔느는 닻을 잃은 배처럼 둘만의 내밀한 감정의 바다 위를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두 사람의 관계는 병적일 정도로 강렬한 공생의 형태로 발전했다. 남편을 잃은 잔느는 남은 모든 생명력을 아들에게 쏟아부었다. 아버지를 잃은 마르셀은 어머니의 전적인 사랑 속에서 위안과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죄의식을 느꼈다. 그는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를 짊어졌다. 그들의 집은 외부 세계로부터 격리된 둘만의 신성한 수도원이 되었다.
이 밀월 같은 비탄의 시기는 그러나 훨씬 더 거대한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다. 아드리앵 박사라는 질서의 축이 사라진 잔느의 육체 안에서 보이지 않는 혼돈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신장이 서서히 기능을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요독증. 육체 스스로가 만들어낸 독소에 의해 서서히 중독되어가는 교활하고 잔인한 질병이었다. 처음의 징후는 미미했다. 안색에 드리워진 탁한 빛이나 식사 때 느끼는 쇠 맛 그리고 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 마르셀은 이 불길한 징후들을 감지했지만 의식은 끔찍한 진실을 인정하기를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그러나 질병의 진행은 가차 없었다. 그녀의 발목과 손목이 붓기 시작했고 아름다웠던 얼굴은 낯선 부종으로 부풀어 올랐다. 정신은 점차 혼탁해져 갔다. 마르셀의 삶은 어머니의 육체라는 전장을 감시하는 절망적인 파수꾼의 그것이 되었다. 그는 어머니의 소변 양을 측정하고 음식의 염분 함량을 계산했으며 혈압과 맥박의 미세한 변화를 강박적으로 기록했다. 그의 모든 지성과 감수성은 어머니의 죽음을 단 하루라도 더 지연시키는 데 총동원되었다.
어머니의 병실은 그의 우주의 중심이자 세상의 끝이 되었다. 병세가 악화되면서 그녀의 몸에서는 죽음의 전령 같은 끔찍한 냄새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암모니아와 썩은 과일이 뒤섞인 듯한 요독성 구취였다. 마르셀은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내장이 녹아내리는 듯한 물리적인 고통을 느꼈다. 그는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랑을 속삭였지만 후각은 그의 뇌리에 죽음의 진실을 잔인하게 각인시켰다. 사랑과 혐오 연민과 공포가 그의 내면에서 처절하게 뒤엉켰다.
그녀의 마지막 날들은 의식의 명료함과 혼수 상태의 섬망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어떤 순간 그녀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또 어떤 순간에는 기적처럼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그의 손을 잡고 미래를 걱정했다. “마르셀, 내 아가… 내가 없어도… 너는 글을 써야 한다… 그것만이… 너를 구원할 게다…” 그녀의 희미한 목소리 속에는 예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마르셀은 죽어가는 어머니의 입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듣고 있었다. 그의 글쓰기는 이제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받드는 신성한 의무가 되었다.
1905년 9월 26일 새벽. 임종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그가 알던 어머니의 얼굴이 아니었다. 고통과 질병에 의해 모든 개성과 역사가 지워진 ‘죽어가는 인간’의 원형적인 얼굴이었다. 마르셀은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자신의 체온과 생명력을 전달하려 했지만 헛되고 처절한 시도일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 기적처럼 그녀의 눈이 잠시 온전히 떠졌다. 시선은 현실의 장막을 뚫고 미지의 심연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추었다. 완전하고 형이상학적인 침묵. 그의 우주를 지탱하던 사랑이라는 마지막 중력장이 소멸하며 발생한 절대적인 진공이었다. 그의 시간은 그 순간 영원히 멈췄다.
그는 울지 않았다. 그의 슬픔은 눈물로 배출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추상적이었다. 그는 며칠이고 먹지도 자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유품들을 성유물처럼 만져보았다. 그러나 그 사물들은 그녀의 부재를 침묵 속에서 증거하는 차가운 고발자들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를 되살리려 애썼지만 의지적인 기억은 그를 배반했다. 이미지는 흐릿해지고 왜곡되었다. 그는 과거란 원할 때 꺼내볼 수 있는 앨범이 아니며 오직 예기치 않은 감각의 충격을 통해서만 그 총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그는 질서의 세계를 잃었다. 이제 어머니를 잃음으로써 그는 사랑의 세계 즉 의미의 세계 전체를 잃어버렸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은 어머니의 존재를 통해 모든 것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았던 그 총체적인 세계 자체였다. 이제 그 세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을 되찾는 것. 시간의 폐허 속에서 기억의 파편들을 주워 모아 언어와 예술이라는 새로운 접착제로 사라진 세계를 더 견고하고 영원한 형태로 재건축하는 것.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 남긴 유일한 삶의 이유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는 이제 글을 써야만 했다. 자신의 심장을 잉크 삼아 자신의 고통을 종이 삼아 그의 가장 위대한 사랑이었던 어머니를 문학이라는 영원 속에서 부활시켜야만 했다. 그 고독하고 장엄한 과업을 위해 그는 텅 빈 우주의 중심에서 조용히 펜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