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7년 가을, 유틀란트 반도
루터의 비명은 독일 북부 평원을 넘어 발트해의 파도 소리에 섞여 들었다. 크리스티안 4세의 자랑스러운 군대는 소금기 머금은 바람 속 먼지처럼 흩어졌다. 왕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자신의 마지막 보루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으로 퇴각했지만, 그의 등 뒤로는 두 마리의 굶주린 포식자가 맹렬하게 뒤쫓고 있었다. 늙은 여우 틸리는 서쪽에서, 그리고 이제 아무런 경쟁자 없이 동쪽에서 나타난 발렌슈타인의 독수리가 북쪽을 향해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독일 북부는 이제 온전히 황제의 발아래 놓였다. 메클렌부르크, 포메라니아, 브란덴부르크의 개신교 제후들은 감히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들은 성문을 열고 승리자에게 항복하거나, 더 많은 ‘콘트리부치온’을 바쳐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 발렌슈타인의 군대는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그의 군영은 이제 10만에 육박하는 거대한 이동 도시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보급을 걱정하지 않았다. 독일 북부라는 거대한 창고가 통째로 그들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발렌슈타인의 야망은 이제 독일 북부를 넘어,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로스토크와 비스마르 같은 한자동맹의 항구 도시들을 점령하고, 그곳에 조선소를 세웠다. 그의 목표는 단지 육지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를 위한,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한 무적함대를 건설하여 발트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북방의 두 사자, 덴마크와 스웨덴의 숨통을 끊어버릴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발트해의 제독이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관들에게 공공연하게 말했다. “지중해가 스페인의 것이라면, 발트해는 황제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의 군대는 마침내 덴마크의 심장부, 유틀란트 반도를 침공했다. 크리스티안 4세는 더 이상 싸울 군대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강력한 해군을 믿고 섬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덴마크 본토가 사상 처음으로 적의 군홧발 아래 짓밟혔다. 농가는 불탔고, 도시는 약탈당했으며, 덴마크인들의 자존심은 산산조각 났다.
야쿠프는 그 지옥의 한복판에 있었다.
루터 전투 이후, 그는 피난민의 물결에 휩쓸려 북쪽으로, 계속 북쪽으로 밀려왔다. 그는 함부르크에 도달하는 것을 포기했다. 모든 길이 막혔고, 모든 마을이 위험했다. 그의 품에 안긴 아기 루카스는 그의 유일한 희망이자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 아기의 칭얼거림은 굶주림을, 그의 맑은 눈은 이 세상의 부조리를 야쿠프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한때 발렌슈타인의 군대에 복무했다는 늙은 용병, 한스와 동행하게 되었다. 한스는 한쪽 다리를 절었고, 세상에 대한 냉소로 가득 찬 남자였지만, 험한 세상을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었다.
“저들을 보게.” 어느 날 저녁, 멀리 보이는 발렌슈타인 군대의 야영지 불빛을 보며 한스가 말했다. “저들은 군대가 아니야. 거대한 메뚜기 떼지.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 하지만 메뚜기 떼도 머리는 하나뿐이야. 발렌슈타인. 그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어떻게 그럴 수 있소?” 야쿠프가 물었다. “급료도 없는 군대가 어떻게 저런 규율을 유지하는 거요?”
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규율? 아니, 그건 공포와 탐욕의 균형일세. 발렌슈타인은 병사들에게 약탈을 허락하지만, 오직 자신의 허락 하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만 가능하게 하지. 개인적인 약탈은 즉결처분이야. 그는 병사들의 탐욕을 연료로 사용하면서, 그 탐욕이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공포라는 고삐를 쥐고 있는 걸세. 그리고 그는 약속을 지켜. 병사들을 굶기지 않아. 그는 최고의 ‘징수관’들을 고용해서, 이 땅의 마지막 한 톨의 곡물까지 짜내 병사들의 입에 넣어주지. 그러니 병사들은 황제가 아니라 발렌슈타인에게 충성하는 거야. 그는 단순한 장군이 아냐. 그는 새로운 종류의 왕이야. 군대라는 이름의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지.”
야쿠프는 한스의 말을 들으며 발렌슈타인이라는 인물의 거대함을 실감했다. 그는 전장을 넘어, 사회와 경제 전체를 전쟁 기계로 재편하고 있었다. 그의 ‘콘트리부치온’ 시스템은 봉건 시대의 낡은 조세 제도를 파괴하고, 오직 군대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효율적이었고, 동시에 악마적이었다.
그들은 유틀란트의 한 작은 어촌 마을에 숨어 지냈다. 마을 사람들은 발렌슈타인의 군대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야쿠프는 낡은 그물을 수선해주거나, 촌장의 간단한 서신을 대필해주며 빵과 생선을 얻었다. 그의 손은 펜 대신 거친 그물과 바늘에 익숙해져 갔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점점 잊어가고 있었다. 품에 안은 양피지 뭉치만이 그의 과거를 증명하는 유일한 유물이었다.
어느 날, 발렌슈타인의 군대가 마침내 그 마을에 닥쳤다. 그러나 그들은 약탈을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을의 모든 배와 어부들을 징발하기 위해 왔다. 발렌슈타인의 함대 건설 계획의 일부였다.
한스는 저항하려는 마을 사람들을 말렸다.
“어리석은 짓 마시오! 저들은 협상하러 온 게 아니오. 저항하면 모두 죽고 마을은 불탈 뿐이오.”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배를 내주었다. 야쿠프는 아기를 품에 안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 장교가 야쿠프의 행색을 보고 다가왔다.
“너는 어부가 아니로군. 글을 읽을 줄 아는가?”
야쿠프는 심장이 멎는 듯했지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예.”
“잘됐군. 징발 목록을 작성할 서기가 필요했다. 따라오너라.”
야쿠프는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아기를 한스에게 맡기고, 제국의 독수리 아가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다시 서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란군이 아닌, 제국군의, 발렌슈타인의 서기였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잔인했다.
1628년 봄, 슈트랄준트 성벽 아래
야쿠프가 배치된 곳은 발렌슈타인의 새로운 야망이 집중된 곳, 발트해 연안의 항구 도시 슈트랄준트였다. 이 작은 도시는 한자동맹의 일원으로서 강력한 자치권과 부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의 함대 계획에 필요한 완벽한 항구와 조선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발렌슈타인은 슈트랄준트에 제국군 주둔을 요구했다. 그러나 슈트랄준트의 시민들은 그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들은 발렌슈타인의 군대가 들어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경제적 종속이자, 자유의 종말이었다. 그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발렌슈타인은 격노했다. 감히 일개 도시가 자신의, 아니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단 말인가.
“저 오만한 상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 슈트랄준트가 아무리 높은 성벽을 가졌더라도, 하늘에 닿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저 도시를 반드시 손에 넣겠다!”
1628년 5월, 발렌슈타인의 부관인 한스 게오르크 폰 아르님이 이끄는 군대가 슈트랄준트를 포위했다. 야쿠프는 포위군 진영의 행정 장교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의 임무는 징발된 물품과 포로의 수를 기록하고, 공성 무기의 소모 현황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밤, 피로 얼룩진 장부를 정리하며, 이 거대한 전쟁 기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속속들이 보게 되었다.
슈트랄준트의 저항은 예상보다 훨씬 완강했다.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성벽에 올라가 돌을 던지고 뜨거운 타르를 쏟아부었다. 그들의 자유를 향한 의지는 발렌슈타인의 군대가 가진 그 어떤 공성 무기보다도 강력했다.
포위가 길어지자, 발렌슈타인의 진영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의 ‘콘트리부치온’ 시스템은 움직이는 군대에는 효과적이었지만, 한 곳에 머무는 포위전에는 취약했다. 주변 지역은 이미 착취할 대로 착취하여 황무지가 되어 있었고, 보급이 한계에 부딪혔다. 병사들 사이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탈영병이 속출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다로부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어느 맑은 6월 아침, 슈트랄준트 앞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수십 척의 배가 나타났다. 처음 포위군은 그것이 덴마크 해군의 잔존 함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돛대에 휘날리는 깃발은 달랐다. 푸른 바탕에 노란 십자가. 스웨덴의 깃발이었다.
배에서는 수천 명의 병사들이 내려, 슈트랄준트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항구로 들어왔다. 그들은 푸른 제복을 입고 있었고, 그들의 규율은 발렌슈타인의 군대와는 또 다른 종류의 강철 같은 단단함을 보여주었다.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련한 용병, 알렉산더 레슬리였다.
스웨덴 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움직인 것이다.
그는 아직 전면전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는 폴란드와의 전쟁에 발이 묶여 있었다. 그러나 발렌슈타인이 발트해에 함대를 건설하고 제국의 힘을 북쪽으로 투사하려는 것을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발트해는 스웨덴의 생명줄이었다. 슈트랄준트는 그 생명줄을 지키기 위한 교두보였다. 그는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슈트랄준트에 병력을 파견하여 발렌슈타인의 야망에 쐐기를 박기로 결심했다.
스웨덴 군의 합류로, 슈트랄준트의 방어는 철옹성이 되었다. 아르님의 군대는 몇 번의 총공세를 감행했지만, 성벽 아래에 시체만 쌓을 뿐이었다. 포위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야쿠프는 행정 장교의 천막에서, 스웨덴 군에 대한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무기와 조직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머스킷은 제국군의 것보다 가벼워 받침대 없이 사격할 수 있었고, 포병대는 포탄을 규격화된 상자에 담아 장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발렌슈타인의 군대처럼 약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 본국으로부터 체계적인 보급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발렌슈타인의 군대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진정한 의미의 ‘근대적’ 군대였다. 야쿠프는 직감했다. 이것은 단순한 지원군이 아니었다. 발트해 저편에서, 발렌슈타인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맞설, 또 다른 거대한 폭풍이 자라나고 있었다.
1628년 8월, 4개월간의 처절한 포위 공격 끝에, 아르님은 결국 포위를 풀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발렌슈타인의 첫 번째 패배였다. 그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지만, 저 작은 항구 도시 하나를 정복하지 못했다. 그의 발트해 함대 계획은 좌초되었고, 그의 무적 신화에 작은 흠집이 생겼다.
슈트랄준트의 승리 소식은 독일 북부의 개신교도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독수리의 그림자 아래에서, 그들은 북쪽을, 스웨덴의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1629년, 뤼베크
덴마크의 사자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본토는 유린당했고, 국고는 바닥났으며, 더 이상 싸울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크리스티안 4세는 결국 페르디난트 2세에게 평화 협상을 구걸했다.
협상은 뤼베크에서 열렸다. 모두가 덴마크가 막대한 영토를 할양하고 굴욕적인 배상금을 물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협상을 주도한 발렌슈타인은 놀라울 정도로 관대한 조건을 제시했다.
“덴마크는 전쟁 이전의 영토를 모두 돌려받는다. 배상금은 없다. 단, 다시는 신성 로마 제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맹세해야 한다.”
그것은 패자에 대한 자비가 아니었다. 냉혹한 계산이었다. 발렌슈타인은 덴마크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보다, 힘을 잃은 채 중립을 지키는 완충지대로 남겨두는 것이 더 이롭다고 판단했다. 그의 진짜 적은 덴마크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스웨덴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자금이 바닥나고 있는 황제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쯤에서 전쟁을 끝내고, 자신이 획득한 막대한 부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싶어 했다.
뤼베크 조약으로, 30년 전쟁의 두 번째 막, 즉 덴마크 전쟁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다시 한번,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평화의 순간, 승리에 도취된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그의 치세 최악의 실수를 저지른다. 그는 자신의 권력이 절대적이라고 착각했다. 그는 이제 군사력뿐만 아니라, 법과 신앙의 이름으로 제국을 완전히 재편할 수 있다고 믿었다.
1629년 3월 6일, 그는 ‘복권 칙령(Edict of Restitution)’을 반포했다.
그것은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이후, 개신교 제후들이 차지했던 모든 가톨릭 교회의 재산(주교령, 수도원 등)을 원상 복구하라는 명령이었다. 그것은 지난 70여 년간의 역사를 뒤엎는, 독일 북부와 중부의 거의 모든 영방 국가들의 경계와 소유권을 바꾸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의미했다. 또한, 이 칙령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칼뱅파의 존재를 완전히 불법화했다.
이 칙령은 법적으로는 근거가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살 행위였다. 그것은 그동안 황제에게 마지못해 협력했던 온건한 루터파 제후들마저 적으로 돌리는 행위였다. 작센과 브란덴부르크는 자신들의 영지 대부분을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그들은 이 칙령을, 황제가 발렌슈타인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제국 내 개신교 세력 전체를 말살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독립성을 완전히 빼앗으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가톨릭 제후들조차 이 칙령에 불안감을 느꼈다.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은 황제의 권력이 너무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황제의 손에 들린 칼, 즉 발렌슈타인의 존재를 두려워했다. 일개 보헤미아의 졸부가,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처럼 행세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제국의 모든 제후들, 개신교와 가톨릭을 막론하고, 그들의 불만과 공포는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었다. 바로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 그는 황제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지만, 동시에 황제의 가장 큰 정치적 부담이 되어가고 있었다. 독수리는 너무 높이, 너무 멀리 날아올랐고, 그 거대한 그림자는 이제 그의 주인인 황제마저 뒤덮으려 하고 있었다.
슈트랄준트 포위군 진영에서 풀려나,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온 야쿠프는 이 모든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연대기에 새로운 장을 추가했다.
‘1629년, 황제는 평화를 선포했으나, 전쟁의 씨앗을 뿌렸다. 그는 율법의 칼로 제국을 나누려 했으나, 그 칼은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독수리의 그림자가 너무 길어졌고, 제후들은 그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리고 발트해 저편에서는, 북방의 진정한 사자가 마침내 폴란드와의 싸움을 끝내고, 남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세상은 잠시 숨을 죽이고, 더 거대한 폭풍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예언은 정확했다. 30년 전쟁의 가장 참혹하고, 가장 영웅적인 세 번째 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스웨덴의 사자가, 마침내 포효하며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