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29 01화

이방인의 별

by 남킹


시간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곳. 먼지와 별빛이 함께 쌓이는 돔 형태의 천문대 안, 한 사내가 놋쇠로 만든 거대한 망원경에 눈을 대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역사가 왕과 혁명, 제국과 잿더미를 번갈아 토해내는 동안, 그는 그저 밤하늘의 길을 기록하고 헤아릴 뿐이었다.

그의 임무는 단 하나, 우주의 거대한 법칙 속에서 아주 희귀하게 발생하는 '메아리'를 관측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의 장난인지, 필연의 궤도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공명(共鳴)이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한 두 영혼이 정해진 시간의 간극을 두고 정확히 같은 궤적을 그리며 타오르다 스러지는 현상. 그는 수천 년간 수많은 메아리를 보았지만, 지금 관측하고 있는 것만큼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것은 없었다.

"129년..."

사내는 닳아빠진 양피지에 날카로운 펜촉으로 숫자를 적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첫 번째 별이 제 궤도에 오르는 날. 그리고 정확히 129년 후, 두 번째 별이 그 뒤를 따르리라."

망원경 렌즈 너머,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 위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운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사내는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으로 앞으로 펼쳐질 129년간의 대서사시가 핏빛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미천한 섬 소년이 황제가 되고, 오스트리아의 시골뜨기가 총통이 되어 대륙을 불태운다. 권력의 정점에서 그들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얼어붙은 동토에서 똑같은 좌절을 맛보며, 결국 똑같은 비참한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모든 것은 이미 기록되었다."

사내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보았다. 세상은 아직 고요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129년의 시차를 두고 두 번의 비명을 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든 비극의 씨앗이, 바로 오늘 뿌려졌다는 것을.

1769년, 코르시카 아작시오

지중해의 쨍한 햇살이 회반죽을 바른 낡은 건물들 위로 쏟아져 내렸다. 프랑스에 갓 편입된 이 섬, 코르시카는 아직 정복자의 언어와 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와 같았다. 거리에는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코르시카어와 점령군의 프랑스어가 불편하게 뒤섞여 맴돌았다.

카를로 부오나파르테의 집 안은 한 생명의 탄생을 앞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카를로는 비록 몰락했지만 '귀족'이라는 족보에 집착하는 야심가였다. 그는 코르시카의 독립 영웅 파올리를 따르다 프랑스에 투항하여 간신히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새로 태어날 아이가 이 가문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계산으로 복잡했다.

"나폴레오네! 위대한 이름이지. 우리 가문을 로마의 영광으로 이끌 이름이야."

그는 창밖을 서성이며 아내 레티치아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1769년 8월 15일. 훗날 유럽을 뒤흔들 폭풍이 미천한 섬의 작은 집에서 첫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나폴레오네 디 부오나파르테(Napoleone di Buonaparte)라 지어졌다.

어린 나폴레오네는 고집 세고, 말이 없었으며, 동년배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의 놀이터는 아작시오의 거친 골목과 항구였다. 그는 프랑스 군인들의 행진을 경멸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았고, 코르시카의 늙은 어부들이 들려주는 독립 투쟁의 신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가슴속에는 정복당한 자의 분노와 이방인이라는 설움이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

"더러운 프랑스 놈들."

그는 프랑스 귀족 자제들이 자신을 '촌뜨기'라 놀릴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그의 프랑스어는 코르시카 억양이 심하게 섞여 있었고, 체구도 왜소했다. 그가 기댈 곳은 오직 책과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으며 알렉산더와 카이사르를 동경했다. 그들처럼 세상을 발아래 두고,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새기고 싶었다.

아버지 카를로는 그런 아들의 야망을 다른 방식으로 키워주려 했다. 그는 프랑스 총독에게 온갖 아첨을 떨어 나폴레오네를 프랑스 본토의 브리엔 군사학교에 입학시킬 기회를 얻어냈다. 아들이 프랑스 군대의 장교가 되어 가문을 빛내주길 바랐던 것이다.

1779년, 열 살의 나폴레오네는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프랑스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그는 멀어지는 코르시카의 해안선을 눈물 없이, 그러나 타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언젠가 저 섬을 프랑스로부터 해방시키고 말겠다는 어린애다운 복수심,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프랑스를 정복해야 한다는 냉철한 야망이었다.

브리엔 군사학교의 생활은 지옥이었다. 부유한 프랑스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가난한 코르시카 출신의 이방인은 완벽한 먹잇감이었다. 그들은 나폴레오네의 서툰 프랑스어 발음을 흉내 내며 '라 파이요네(La Paille-au-nez, 코 짚단)'라고 놀려댔다. 그의 이름 '나폴레오네'가 낯설다는 이유였다.

그는 조롱과 멸시 속에서 더욱더 자기 안의 동굴로 파고들었다.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대신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포술과 수학, 역사책을 파고들었다. 특히 수학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포탄이 그리는 포물선과 요새를 무너뜨릴 정확한 각도를 계산하며, 그는 종이 위에서 수백 번의 전투를 치렀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눈 덮인 겨울, 생도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벌이는 눈싸움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장난처럼 눈을 던질 때, 나폴레오네는 진지하게 전략을 짜고 진지를 구축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되었다. 그의 편은 언제나 승리했다. 아이들은 그의 지휘력에 감탄하면서도, 그 장난에조차 서려 있는 섬뜩한 진지함에 거리를 두었다.

어느 날, 그를 유독 괴롭히던 상급생이 그의 노트에 그려진 코르시카 지도를 찢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따위 작은 섬 출신 주제에! 너희 나라는 이제 프랑스의 것이다!"

그 순간, 나폴레오네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는 말없이 달려들어 그 상급생의 배에 머리를 박았다. 체격 차이는 엄청났지만, 그의 움직임은 분노로 가득 찬 살쾡이처럼 날렵하고 사나웠다. 싸움은 일방적인 구타로 끝났다. 나폴레오네는 독방에 갇히는 징계를 받았지만, 누구도 더 이상 그를 대놓고 무시하지 못했다.

그는 독방의 차가운 돌바닥에 앉아 생각했다. '힘이 없으면 무시당한다. 국력이 없으면 나라를 빼앗긴다. 결국 모든 것은 힘이다. 압도적인 힘만이 나를 증명하고, 내 조국을 되찾게 할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서 코르시카의 독립이라는 소박한 꿈은 점차 다른 형태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프랑스를 이겨야 한다. 프랑스를 이기려면 프랑스의 힘을 가져야 한다. 프랑스의 힘을 가지려면, 내가 프랑스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모순된 야망이 그의 영혼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코르시카의 나폴레오네가 아니었다. 프랑스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할 준비가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1785년, 그는 16세의 나이로 파리 육군사관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졸업생 58명 중 42등. 평범한 성적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 숫자 뒤에 유럽의 지도를 바꿀 거대한 야망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변방 발랑스의 연대에 배치받아 파리를 떠났다. 화려한 수도의 불빛을 뒤로하며 그는 맹세했다.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패배자가 아니라, 정복자로서.'

그의 젊은 어깨 위로, 129년 후 또 다른 이방인이 짊어지게 될 운명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129년 후

1898년, 오스트리아 린츠

도나우강이 유유히 흐르는 도시 린츠의 한 아파트. 세관 공무원 알로이스 히틀러의 고함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는 술에 취하면 폭군으로 변했다.

"계집애처럼 그림이나 끄적거릴 셈이냐! 사내자식이라면 기술을 배우거나, 나처럼 안정된 공무원이 되어야지! 예술가? 그깟 뜬구름 잡는 소리로 밥이 나와, 빵이 나와?"

매질과 폭언이 쏟아졌다. 열 살 남짓한 소년 아돌프 히틀러는 방구석에 웅크린 채 아버지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버지가 반으로 찢어버린 스케치북 조각이 들려 있었다. 그가 정성껏 그린 린츠 대성당의 모습이었다.

소년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함께 지독한 증오가 자라나고 있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 자신의 꿈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증오. 그는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집과 아버지를 벗어나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에게 예술은 도피처이자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독일 국경과 가까운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사생아 출신으로, 자신의 뿌리에 대한 열등감과 성공에 대한 강박을 아들에게 폭력으로 대물림했다. 아돌프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자 했다. 아버지가 현실적인 안정을 강요할수록, 그는 더욱더 몽상적인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은 어머니 클라라뿐이었다. 그녀는 연약하고 마음씨 좋은 여자로, 아들의 그림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돌프는 어머니에게 광적으로 집착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은 아버지의 폭력과 세상의 몰이해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유일한 성역이었다.

학교에서 그는 문제아였다. 성적은 형편없었고, 특히 그가 '독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과목들에는 노골적으로 반항했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깃발 아래 사는 것을 수치스러워했다. 수많은 민족이 뒤섞인 다민족 국가 오스트리아 대신, 그는 강력하고 순수한 게르만 민족의 국가, 독일을 자신의 조국이라 여겼다. 그는 수업 시간에 몰래 독일 역사책을 읽었고, 범게르만주의를 외치는 역사 교사를 영웅처럼 숭배했다.

"우리는 위대한 게르만 민족이다! 저 열등한 슬라브 놈들과 한 국가에 묶여 있다는 것은 치욕이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 열변을 토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를 과대망상에 빠진 이상한 아이로 취급할 뿐이었다. 나폴레옹이 코르시카라는 정체성 때문에 프랑스에서 이방인이었듯,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안에서 스스로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선택함으로써 이방인이 되었다.

그의 유일한 낙은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는 것이었다. 특히 게르만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장엄하고 영웅적인 서사에 매료되었다. 어느 날 밤, 친구와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를 보고 나온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리엔치>는 중세 로마의 평민 호민관이 귀족들을 몰아내고 민중의 지도자가 되었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이야기였다.

"봤나, 쿠비체크? 민중을 이끄는 한 사람의 의지가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지! 저것이 바로 운명이야!"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친구의 팔을 붙잡은 채 밤거리를 헤맸다. 그의 눈은 광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화가를 꿈꾸는 소년이 아니었다. 오페라 속 주인공 리엔치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민중을 휘어잡고 역사를 창조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환상에 사로잡혔다. 예술가의 꿈과 정치적 야망이 그의 내면에서 기괴한 형태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1903년, 아버지 알로이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히틀러는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 자신을 억압할 사람은 없었다. 그는 학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어머니 클라라의 얼마 남지 않은 유산과 연금을 밑천 삼아, 그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제국의 수도, 빈으로 향했다.

1907년, 18세의 히틀러는 빈 미술 아카데미의 시험에 응시했다. 그는 당연히 합격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재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세상이 그를 알아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결과는 '불합격'. 심사평은 더욱 비참했다. '인물화에 재능이 전혀 없음. 건축 분야에 소질이 보이나, 학력이 부족함.'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그는 불합격 통지서를 손에 쥔 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자신의 위대한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저 무능한 심사위원들은 누구인가? 유대인인가? 외국인인가? 그의 마음속에서 실패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려는 비뚤어진 분노가 싹트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겨울 그를 유일하게 지지해주던 어머니 클라라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마지막 남은 안식처마저 앗아갔다. 이제 그는 기댈 곳 하나 없는 완전한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그는 다시 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전의 희망에 부풀었던 청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피해의식만이 가득했다. 그는 이듬해에도 아카데미에 지원했지만, 이번에는 예비 심사에서부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그는 정처 없이 빈의 거리를 헤맸다. 화려한 오페라하우스와 웅장한 궁전의 불빛 뒤편, 어둡고 축축한 골목에서 노숙자들과 뒤섞여 잠을 잤다. 싸구려 인민 식당에서 멀건 수프로 끼니를 때우고, 그림 엽서를 그려 관광객들에게 팔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이 시기, 빈의 밑바닥 생활은 그의 사상을 완성하는 용광로가 되었다. 그는 다민족 도시 빈에서 유대인 금융가들이 부를 독점하고, 슬라브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실패는 개인의 재능 부족이 아니라, 이 사회를 좀먹는 유대인과 열등 민족들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선술집과 도서관에서 반(反)유대주의 팸플릿과 범게르만주의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그의 머릿속에서 세상은 위대한 아리아인과 그들의 피를 더럽히는 유대인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재편되었다.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분노와 증오를 재료 삼아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유대인과 모든 '오염'을 제거한 순수한 게르만 민족의 제국. 그리고 그 제국의 정점에 서서 열광하는 군중의 환호를 받는 절대적인 지도자, 바로 자기 자신.

129년 전, 프랑스 변방의 포병 소위가 파리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처럼, 오스트리아의 실패한 화가는 뮌헨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으며 새로운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 썩어빠진 합스부르크 제국은 끝났다. 나의 조국은 독일이다. 나는 위대한 독일을 위해 싸울 것이다. 세상이 나의 예술을 거부했으니, 나는 세상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예술가가 되리라.'

두 이방인의 별이 마침내 어둠 속에서 제 길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는 혁명의 혼란 속에서, 다른 하나는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사의 무대는 마련되었고, 129년의 간극을 둔 두 개의 운명은 이제 막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 그 끝이 파멸일지라도, 멈출 수 없는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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