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아침 낭만
어제저녁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떠오른 질문. “오늘 나는 왜 살았는가”.. 영생한다면 모를까 정해진 날만큼 살아가는 삶의 피할 수 없는 질문.
갑자기 잘할 수는 없고 이런 고민 속에 가급적 시간을 잘 쓰려고 노력합니다.
기차 타고 멀리 떠날 때는 잠을 줄여 이른 기차를 탑니다. 도착한 곳에서 시장을 찾아 아침도 먹고 계절이 느껴지는 장소에서 커피 한잔하는 여유를 거를 수가 없습니다.
역에서 내려 시장 가는 길 아침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고 시장 안 좁은 골목이 익숙한 듯 새롭게 다가옵니다.
오래된 시장 한켠에 있는 작은 단골집에 들리니 할머님이 활짝 웃으며 반겨줍니다. 몸이 아파 입원해 있는 언니 할머님께 주말마다 가시는 모양인데 누군가 가르쳐준 대로 폰으로 기차표 예매를 끙끙거리며 하고 계셨습니다. 이곳에 오면 자리를 일어날 때까지 할머님은 쉬지 않고 그간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하십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시도 합니다. 어쩌면 그리고 기억력이 좋으신지 (이 부분에서는 대부분의 할머님들이 그러신 듯합니다만...ㅎㅎ) 집중해서 들으면 마치 제 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듯합니다.
가끔 고개도 끄덕이고 추임새를 넣으려면 그래도 들어야 하기에 가끔 피곤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른 집에 갈 수도 없습니다. 이 골목에서는 제가 그 집 단골임을 다 압니다. 길목에서 다른 할머님들이 아예 붙잡을 생각도 안하십니다. 내심 다른 집 할머님 아주머님 칼국수와 찰밥 맛도 궁금하기는 한데... 워낙 제가 가면 반겨주시니 다른 집을 갈 수가 있어야지요. ^^
금방 지은 찰밥에 부신 김을 묻혀먹고 있노라면 곁반찬과 맛있는 김치를 종류별로 챙겨 내주시고 칼국수를 푸짐하게 삶아내십니다. 먹는 것을 보고 있다가 배가 고픈 듯하면 어느새 물을 끓여 수제비도 만들어 주시고... 그래서 5500원입니다 내미는 돈이 부끄러울 정도의 반김과 대접입니다.
이제 가까운 다른 골목을 찾아갑니다. 오래된 호떡집이 있습니다. 무려 1972년부터 호떡을 구어오신 곳입니다. 특이하게 화덕 호떡이란 것이 있는데 그 맛이 가래떡처럼 담백하니 중독성이 꽤 강합니다. 이곳에 들리면 꼭 2개를 삽니다. 하나는 할아버님과 안부인사 나누며 서서 먹고 나머지 하나는 가방 안에 챙겨둡니다. 하루 중 생각나면 꺼내먹으려 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천 원짜리 한 개 사 먹기는 서운해서 하나 더 사는 것입니다. 3개에 3천 원 해서 붕어빵처럼 파실 만도 한데 꼭 한 개씩 파십니다. 꽤나 맛있습니다. 시장 안에서 찾기는 힘든데 아마 물어물어 찾아가실 수는 있을 듯합니다. (사진 참조)
그리고 서서히 뜨거워져가는 아침 햇살을 느끼며 광장을 지나다 보니 초등학교에서 체험학습 나온듯한 꼬마들이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모두 담으려 뒷걸음질 치며 카메라를 보던 여선생님... 갑자기 박수와 함께 크게 까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바닥분수에서 마침 물이 솓아나 오고 있었고 여선생님은 어느새 그 가운데 들어가 계셨습니다. ㅎㅎ 어찌할 바 모르는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이 어찌나 웃어 제끼 던 지.. 선생님도 웃고 계셨고 아이들도 웃고 주변에서 보고 있던 저와 행인들도 웃고.. ^^
시간이 좀 남아 저만의 장소를 찾아갑니다. 창가 풍경이 계절마다 다르고 이곳에만 가면 피곤이 사라지고 정신도 맑아집니다. 뭔가 조화로운 느낌이 나는 곳입니다. 특별한 곳이 아니라 보통 커피전문점의 2층 자리 한켠입니다. 오랜 친구가 소개해준 곳이기도 한데 친구가 떠난 뒤에도 이렇게 늘 찾아오곤 합니다. 중요한 발표나 생각이 있을 때 머무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담당 바리스타가 환하게 반겨줍니다. 오신 적 있으시죠? 하면서 인사를 건네 오는 환한 표정의 젊은 처자.. 나를 알아보는 곳에 들여놓는 발걸음만큼 가볍고 편안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사진 몇 장 둡니다. 이야기는 오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이어가려고 합니다. 행복은 좋은 기억에서 온다는 헬렌켈러의 말을 되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