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해서는 몇글자라도 쓰고 싶었다.
그게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지 만 4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잔상이 남는 것에 대한 대답이 될 테니까.
시작은 아이유에서부터였다. 아이유가 인생책으로 추천했다길래 관심이 갔고
문학동네 대학소설상까지 수상했다고 하니..
그런데 신형철 평론가의 심사평이 심상치 않아 갑자기 두려워졌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비행시간이 한시간 반밖에 되지않는 비행기에서 첫 장을 펼쳤다.
책의 절반을 읽으니 북경에 도착했고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조금 읽다가
집에 도착해 가방도 풀지않은 채 소파에 앉아서 끝까지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실체가 없는 두려움은 곧 실체를 가진 감정이 되어 돌아왔다.
소설을 읽는내내 나는 강이가 되었다가 소영이 되었다가 이들을 한명씩 연민하다가 슬픔과 안타까움과 물리적인 감각인지 정신적인 감정인지 모를
매우 격양되기도 하는 상태로 읽어내려갔다.
그러다가 무심하게 툭 끊기듯 마무리하는 짧은 문장들이나 단락이 끝나는 곳이나 같은 패턴으로 조금 다르게 두번씩 반복해서 말하는
작가의 극단적으로 건조한 글들에서 도리어 마음이 꽤 여러번 아팠다.
이 문장은 직접 느껴보지않은 감정이라면 도저히 이렇게 쓸 수 없을
이 감정을 통과했기때문에 이렇게 아무렇지않게 툭 내뱉을 수 있게된 거구나 싶어서 급기야 작가의 안위가 궁금해졌다.
더 나아지기 위해 기꺼이 더 나빠지는 것을 선택한 이들.
그러나 실제로는 한번도 삶을 포기해본적이 없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의 감각이 소설에 있었다.
열여섯에 처음 집을 나와서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친구들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 하나가 아물기도전에 또 뜯겨버리는 아물지 못한 아픔들이
글 구석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다만 동시에 인간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인간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러한 중에서도 자신의 약함을 직면하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를 소설은 말해주고 있었다.
이 책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이 소설은 너무 위험하고 무서워서 별로 권하고싶지 않다.
다만 누구에게나 열대병과같은 날들이 있었고
나의 성장기에 지나온 열대병을 한번은 마주하고싶다면
읽어봐도 좋다.
원래는 구스반산트의 파라노이드파크가 생각났었는데,
월요일부터는 중국영화 <소년적니>(소년시절의 너)가 생각이 난다.
월요일에 북경에서 본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고있는 소년적니는 솔직히 말하면 이 소설보다 10배 좋았다.
“임솔아씨의 <최선의 삶>은 ‘체급’ 자체가 다른 소설이었다. 이것이 소설에 할 만한 칭찬으로 적당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이 서술하고 있는 이 모든 슬프고 아픈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 작가를 만나고싶지 않다. - 신형철
#최선의삶 #임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