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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Nov 11. 2019

2. 도쿠시마 달맞이언덕 캠핑장

#2  다카마쓰 토요코인호텔~도쿠시마 달맞이언덕 캠핑장

자전거 여행 첫날.



뒤척이다 자정 넘어 잠들었지만  새벽 4시도 되기 전에 잠이 깼다. 뒤척이다가 아침을 주는 7시에 1층 로비에 내려가 밥을 먹었다. 주먹밥과 미소된장국, 연어구이, 김, 감자 샐러드. 식욕이 없었지만 종일 흘릴 땀을 미리 넣어둔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먹었다. 

자전거 앞뒤에 매다는 패니어 4개,  랙 팩, 핸들바 백 등 가방 여섯 개에 나눠 담을 짐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보며 균형을 맞춰보고 9시가 다 돼 호텔을 나섰다. 볕이 따가운 이국의 도로. 갑자기 계절이 바뀌어 한 여름 속으로 뛰어든 기분이었다. 


첫날 숙박은 출발지점인 다카마스(高松)에서 시코쿠섬 북단의 반대쪽 도쿠시마(德島) 공항 옆 바닷가 '달맞이언덕 캠핑장'에서 할 작정이었다. 대략 80km 이상 달려야 한다.  시코쿠 88개 사찰 중 1번 사찰 료젠지(靈山寺)에서 10km쯤 떨어진 곳이다. 달맞이언덕. 낭만적인 이름의 바닷가 캠핑장? 살짝 기대도 됐다


지도에서 보던 명쾌한 방향성과 달리 호텔 문을 나서면서부터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해안을 따라 뻗어있는 11번 도로는 조금 돌아가는 것 같아 남쪽으로 가서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한 뒤 12번, 10번 도로 등을 조합해가며 도쿠시마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패니어를 부착하다 보니 앞바퀴 오른쪽 랙의 나사가 헐거웠다. 렌치로 조이려고 해도 계속 겉돌았다. 다행히 출발지점 인근에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자전거 수리점을 만났다. 나사 몇 개를 조이더니 1천 엔이라고 했다. 차분하게 대처했다면 휴대용 공구로 스스로 처리할 만한 일이었는데 싶었다.  


시내에서 이면도로를 헤매다 결국 해안가 10번 도로를 따라 도쿠시마 방향으로 일관되게 달릴 수 있게 된 건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가 꾸준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스스로가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비단 자전거 경로만이 그럴까.   


정오가 조금 넘어,  '365일 싸다'는 슬로건을 내 건 코스모스 마트에 들러 사이다, 우유, 빵과 딸기잼을 사서 그늘에 앉아 요기를 하고 나머지는 랙 팩에 넣은 뒤 다시 달렸다. 다카마쓰를 통과해 우동으로 유명한 사누키 시도 거의 다 벗어난 지점에서 오후 3시경 우동을 사 먹었다. 맑은 국물에 국수가닥뿐인데 맛은 좋았다. 새우 튀김과 주먹밥까지 합쳐서 600엔.

물통에 얼음물을 가득 채우고 다시 뙤약볕으로 나섰다. 완만한 오르막을 몇 개 넘고 해안가에서는 시속 30Km로 부지런히 패달을 밟았다. 시와 시를 연결하는 국도 변 자전거 도로는 잘 정비돼 있었다. 일본의 '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마을 기초단위를 일컫는 것 같았다. 

해안길이 끝나고 도쿠시마에 들어선 뒤 시가지를 달려야 했다. 시내를 가로지르고, 공단을 지나 마을과는 동떨어진 공항 인근 동네. 공항 안내판에 도쿠시마 아와오도리 공향( 徳島阿波おどり空港)이라고 쓰여있다. 아와오도리. 도쿠시마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댄스 페스티벌이라고 한다.


저녁 6시경 목표로 삼았던 달맞이 언덕 캠프촌에 도착했다. 그러나 상상하던 바닷가 낭만적인 캠핑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게 잠긴 철문에 무단 캠프를 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안내문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입니다. 캠핑 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가능하지만, 내가 캠프장까지 가려면 30분 정도 걸린다. 괜찮냐? 텐트는 가지고 있냐?  일박에 600엔이다. " 물론 괜찮고말고 어차피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처지 아닌가.

시코쿠 첫 야영장. 달맞이언덕 캠핑장.  쓸쓸한 적막감만 감도는 곳이었다.

시코쿠에서의 첫 캠핑이 가능할 것 같아 마음이 느긋해졌다. 기다리고 있으니 노년의 내외가 작은 트럭을 타고 왔다. 600엔을 내고 아무 데나 텐트를 치라고 했다. 샤워장,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쳤다. 그런데 사워를 하려면 100엔 더 내야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서둘러 샤워를 하라고 했다. 샤워를 하고 옷도 갈아입으니 주인 내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바글대던 시절이 있었을까. 늙고 낡은 캠핑장에는 쓸쓸한 적막감만 가득했다.


주인장 내외가 떠나고 나자 호젓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밥을 차려 먹으려고 보니, 라이터가 없어 버너를 켤 수 없었다. 다시 자전거로 공단을 가로질러 편의점 로손을 찾아가 일회용 가스라이터를 사 왔다. 왕복 8km. 이미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옥외에서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를 겨우 찾아  핸드폰과 보조 배터리를  충전시켜 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충전 콘센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전기 인심이 후하다고 해야 할지.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빛이 초롱했다. 가족들도 저 별을 보고 있겠지.


 다카마쓰 토요코인 호텔~ 도쿠시마 달맞이언덕 텐트촌 (츠키미가 오카 月見ヶ丘海岸)

주행거리 8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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