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끝에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by namoomo



왜 이토록 마음이 시큰거릴까?

혼자만의 의지로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설 연휴가 제게는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아들의 수술, 회복 그리고 남편과의 불화 때문이었어요.




설 바로 전, 드디어 아들의 눈수술을 했습니다. 간헐적외사시가 있던 아들의 사시교정수술, 전신마취를 하고 진행하는 수술입니다. 수술 전, 독감이 유행이라 혹시라도 감기에 걸리면 수술을 연기할 수도 있다고 병원에서 수차례 주의를 주었습니다. 컨디션 유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2주가량의 시간이 지나 무사히 수술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떨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고 담담하게 입원수속을 하고 긴장한 아들을 다독였습니다. 보호자는 한 명만 상주할 수 있어 엄마인 제가 아들과 함께 있었고 남편은 지인을 만나러 외출하고 돌아와 밖에서 대기하였습니다.


수술시간은 길지 않지만 회복 중에는 신경 쓸 것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수술직후 병실에서 보낸 서너 시간이 가장 힘들었어요. 수술을 마치고 침대에 실려 돌아온 아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몰려온 통증과 두려움이 생각보다 컸나 봅니다. 아이는 흐느끼다가 울부짖고 안아달라고 했다가 밀쳐내기를 반복했습니다. 몸에 열이 오르는지 덥다고 했다가 춥다고 했다가 어찌할 바를 몰라했어요.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순간에는 마음이 너무나 아파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등과 배를 쓰다듬고 토닥여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다시 잠이 드는가 싶다가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흐느끼는 아들을 달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계속 토닥여달라 해서 움직이는 팔이 너무 아팠는데 잠시만 쉬어도 엄마, 를 부르는 아들이 오히려 안쓰럽고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는 금식이 괴로워 몸부림을 치고 물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한 끼 굶었다고 이러나? 싶다가도 어쩌면 마취 후유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입에서는 역한 냄새가 나고 입술은 바짝 마른 모습에 눈물이 났습니다. 회진 오신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은 잘 되었고 통증은 당연히 심하다고 잘 돌봐주라고 하셨습니다. 눈은 한쪽만 수술했는데도, 반대쪽 눈도 뜨지 못하고 아파했는데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두 눈을 뜨지 못하는 아들은 잠시나마 암흑의 공포를 느끼는 듯했습니다.

“엄마, 여기 어디야?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손 줘봐요. 엄마는 안 보이는데 얼굴은 기억나요.”

아들의 모든 말이 마음에 콕콕 박히는 기분이었어요.


‘아들아, 가장 아프고 무서운 순간에도 나는 네 옆에 있을 거야.’


손을 잡아주며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습니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너를 지켜줄 거야. 바로 옆에 있잖아.”

어쩌면 우리가 또 감사의 제목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이런 일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는 신뢰의 관계, 안전함의 확신, 보호받는다는 기분, 지금은 아프지만 나아진다는 믿음, 그리고 위로! 그 모든 순간에 내가 엄마구나. 엄마가 되었구나 새삼 실감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아직 여전한 통증에도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다시 일상이 시작될 것임을 느끼며 감사했습니다. 그러려면 최선을 다해, ‘당분간 회복에 전념하자, 주의사항을 잘 지키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때에 맞춰 처방받은 안약을 넣어주고 거즈를 교체해 주고 죽을 끓여 먹이고 항생제를 먹이고 물 적신 수건으로 아들의 얼굴을 닦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한밤중에 통증으로 울며 깬 아들의 등을 다시 쓰다듬으며 이것도 다 지나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튿날부터는 다행히도 밤에 깨는 일은 없었습니다. 낮에는 번갈아가며 한쪽 눈을 가리는 가림치료를 열심히 하고 있고 익숙해진 아들이 지금은 저보다 더 잘 챙깁니다. 아직 복시증상이 있지만 그것도 나아질 것이니 걱정하지 않고 의사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는 중입니다. 이제 2주 뒤에 병원에 가면 되는데 그때까지 잘할 수 있겠죠?




그런데 왜 남편이랑 싸웠냐고요?


수술 후 바로 설 연휴라서 주말부부인 우리는 열흘정도 함께 지내는 중이었습니다. 아들의 회복이 잘 되어가자 저는 긴장이 풀렸는지 몸살이 나고 말았어요. 감기에 생리통이 겹치면서 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렸습니다.


아들의 회복을 위해 이번 설명절은 집에서 지낼 계획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수술일정을 그렇게 잡은 거였으니

친정행도 당연히 포기했고 미리 부모님께 양해도 구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시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 형과 누나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저와 아들은 집에 남고, 딸아이를 아빠와 함께 가라고 하였습니다. 한참 사춘기인 중2 딸아이가 혼자 따라나서는 걸 썩 내켜하지 않아 아이를 달래고 설득하는 것은 제 몫이었지요. 출발 전에 (형님댁 고양이 때문에) 알레르기약을 먹여서 보내는 것도요.


명절 당일, 함께 세배하는 영상을 찍어 친정부모님께 보냈고, 아들의 세배영상은 따로 찍어, 시댁카톡방에 올리고 함께 가지 못해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컨디션이 좋지 못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손님들로 북적였던 친정집도 연휴 내내 바쁘셔서 우리의 부재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섭섭해하시는 것보다는 내가 서운한 게 훨씬 나으니까요. 아들은 외눈으로 게임하고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보냈고, 저는 약 먹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남은 김치찌개에 함께 밥을 먹고, 약을 챙기고 씻기고, 아파도 해야 하는 일들은 여전했습니다.


밤에 돌아온 딸과 남편을 반갑게 맞이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이것저것 물을 기력도 없었겠지만, 이제 와서 더 솔직하게는 아마 마음속에 약간의 야속함이 싹트고 있었나 봅니다. ‘아픈 나와, 아직 회복 중인 아들을 두고, 꼭 갔어야 하니? 난 부모님께도 못 갔는데, 넌 꼭 누나랑 형을 보러 갔어야 해?‘ 네, 솔직히 그런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도 가족 중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묻지는 않았는지, 안 와서 섭섭해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모든 생각을 마음속으로만 하고 있을 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다음 명절에 그러니까 추석에 (얼마 전에 결혼한 누나의 아들) 조카가 여행 가자는데? 4박 5일 정도 여행 가자고 하네, 어때?”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어요. 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사실 어이가 없었거든요. 제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들의 약을 챙기느라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 소파에 반쯤 누워있는 남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입은 꾹 다물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명절에 못 간 것은 (함께 정했다는 상황을 다 양보하고서도) 나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쳐도, 곧 친정엄마의 칠순이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 서울에 있는 언니집 근처 식당을 예약해 함께 식사할 계획을 언니가 세웠는데, 저는 아이 상황 때문에 그저 협조만 하면 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휴에 앞뒤로 연차를 사용한 남편이 단박에 “나는 이제 못 쉬어. 참석 못할 거 같아.”라고 말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거든요. 지방에서 올라와 금요일 저녁식사 일정에 맞추기란 쉽지 않으니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남편의 태도와 말투에 기분이 상했다고 그때 표현하지 못한 것을, 이제와 시시콜콜 설명하기도 구차했습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가기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남편은 한숨을 내 쉬었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짜증 난다는 듯 저를 지나쳐 갔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흐르는 콧물을 닦으며 저녁 약을 챙겨 먹고 아들을 재우고 잠을 청했습니다. 남편의 기분까지 신경 쓸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하루 이상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어요. 빨래하고 정리하고 밥하고 치우고 청소하고 닦고 하는 집 안의 일들은 여전한데 나 혼자만 바쁘고, 아프고, 긴 연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어요. 하루종일 소파에서 티브이만 보는 남편이 그렇게 꼴 보기 싫을 수 있을까요? 티브이 소리가 싫어서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이어폰을 끼고 안방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다른 평범한 주말에도 다르지 않지만 이번 연휴에는 저의 평온이 모두 깨져버려 더 이상 곱게 볼 수 없었나 봅니다. 밥을 차려주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저 밥이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가네’ 하고 아파도 밥 해 먹이는 나를 보며 대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지금은 내가 아프잖아… 그러면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나를 좀 걱정하고 돌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점점 스스로가 불쌍하게 여겨졌던 거 같아요.


우리 부부는 자주 싸우지도 않지만 어쩌다 싸우더라도 제가 못 참고 먼저 말을 걸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말 걸고 싶지 않았어요. 져주고 싶지 않았고, 또 혼자 그러려니 마음속에 원망을 쌓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요즘 관계가 제법 좋았던 이유는 사소한 것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원하는 것은 솔직히 전달해서 서로가 동등하게 편안하고 평온하기를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참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해보자고,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남편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솔직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에도 차근차근 저의 감정을 꺼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그의 반응은 저의 기대와 달랐어요. 아마 저도 모르게 남편을 비난하는 어조가 실렸을까요? 그러지 말아야지 분명 다짐했는데 말입니다. 말하는 동안 남편이 조금도 동조해주지 않자 자꾸만 의식이 되었어요. 내 말에 합리화를 위해 남편을 비난하게 되고 과거의 서운함까지 더해서 말했던 것 같아요.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남편의 화는 커지고 저의 섭섭함은 더 큰 원망으로 쌓였습니다. 저의 불안이나 기분은 남편에겐 알바노(내알바아님). 그저 자기 가족들과 함께 여행 가기 싫다로만 받아들인 그 사람의 마음을 달래줄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싫으면 안 가면 되지! 가지 마 “

”그냥 안 보고 살면 되겠네. “


라며 오히려 저의 마음을 후벼 팠습니다.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구나 싶어서 화가 났고, 거의 되돌릴 수 없을 지경의 서러움을 느꼈어요. 제 마음은 조금도 편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답답하고 화가 나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어 겨우 반박했어요. “내가 불편하다고 안 보고 살 거였으면 결혼 전부터 안 봤겠지!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여태 내가 한 노력은 뭐가 돼? “라고요. 하지만… (제 마음에 상처로 박힌) 남편의 어록이 이번에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당신이 노력한 게 뭐가 있는데? 말해봐.”


15년의 세월이 부정당한 기분이라 더 이상 아무것도 증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방으로 들어와 울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화해하지 못한 채 남편은 출근지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갑자기 가겠다는 남편을 쫓아 현관에 서서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냐”라고 물었습니다. 가만히 서 있던 남편이 “나중에 이야기하자” 며 그대로 떠났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준 상처를 언제까지 껴안고 살 거냐는 남편의 물음에 (제가 상처받았다는 건 아나 봐요)


“당신이 단 한 번만이라도 온전히 내편이구나 느끼게 해 주면 나는 풀릴 거야.”


라고 답했는데 어쩌면 그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은 답답하고, 아직도 어린애 같은 마음의 내가 부끄러워요.


자란 환경도, 취향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이 정도면 참 잘 살고 있지 했는데… 그동안 애쓰고 산 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아요. 앞으로 살아갈 날은 더 많은데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지혜로운 걸까요? 덜 괴롭고 조금 더 평온한 삶을 위해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으로 남편을 대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상처받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비굴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을 방법이 있을까요? 동등한 관계란 어떤 것일까요! 이제와 참 많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결혼 15년 차, 이제는 좀 알 것 같아… 하자마자, 온통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가장 모르겠는 건 남편의 마음, 그리고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헛된 바람인지…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사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평온을 유지하는 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




주말이, 기다려지지 않고 걱정되다니!

슬퍼요.

투정이 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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