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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Apr 29. 2020

프랑스는 '침략자 수탈자 학살자'였다. 그들에게

2편. 아프리카 현실이 말해주는 프랑스의 과거 


 그들의 발언은 정당했을까? 프랑스 의사들이 ‘코로나 임상의 아프리카 실험’ 에 대한 발언을 했다. 다분히 식민주의 관점으로서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식민지배라는 아픈 역사를 가진 한국인으로서, 아프리카인의 마음이 되어 이것을 바라보고자 한다. 
 
 “Faut-il rappeler que le dénuement africain (pas de masques, pas de traitement…) n’est pas un fait de nature, mais résulte notamment d’un pillage continu? Faut-il décrire les sentiments de familles réduites à la condition de rats de laboratoire? “ - 아프리카의 빈곤(마스크, 치료법, 소생술 없음)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약탈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는) 상기해야만 합니까? (우리는가족들의 감정을 실험용 쥐의 상태로 격하시켜 얘기해야만 합니까?
 

 프랑스 의사들 발언에 대한 아프리카발 기사 중에 있는 문장이다.(기사 : http://bitly.kr/hfr5ka8d) ( )안은 프랑스 의사가 '마스크도 치료법도 소생술도 없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아프리카’라고 말한 것을 따온 것이다. 이것이 현재 아프리카인들의 심정이다. 저 말을 한 사람의 아픔을 한번 떠올려보자. 감히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무시와 핍박과 박해가 오랜 세월 쌓여 있지 않으면 생겨날 수 없는 슬픔이다. 이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자기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단지 힘이 없었기에 그들 목소리를 어디서도 듣지 못했을 뿐이다. 문제의 그 발언들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당연하다. 

그들에게 프랑스는 
‘자유와 인권의 나라’가 아닌 ‘침략자 수탈자 학살자’였기 때문이다. 무려 100년 넘게


"제국의 수호를 위해, 참전하라" (세계대전 당시 식민지 청년들을 대량으로 참전시킨 프랑스) / "프랑스 지배 100년" - 빈곤과 부


 멀리 갈 것도 없이 일본과 비교하면 이해가 선명해진다. 일본이 우리를 100년간 지배하였고,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기본 인프라조차 없는 가장 뒤떨어져 있는 사회이고, 우리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부자들은 진작에 일본 본토로 이주하여 ‘행복한 일본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일본인 의사와 일본 보건장관이 TV에 나와 "한국의 성매매 여성들에게 에이즈 임상을 한 사례가 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한국인들에게 코로나 백신 임상을 하는 건 어떤가"라고 말했다. 이 문장이 끝나고 올라오는 감정은 분노일 것이다. 이것이 지금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이다. 저들의 분노는 100년간 그들 가슴에 쌓인 한인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36년간 한 것을 프랑스는 아프리카인들에게 100년을 했다. 그 세월 동안 프랑스는 ‘내 식민영토’에 부와 선진문명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했는가? 그것은 아프리카의 현재를 떠올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남의 영토에서 그만큼 주인 행세를 했으면 부와 번영을 약속했으면, 적어도 최소한의 기반 시설과 사회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 되는 거 아닐까? 그러나 지금 아프리카에 무엇이 남아있는가? 


오늘날 아프리카의 처참한 현실이 말해주는 것이야말로, 프랑스의 아프리카 진출은 처음부터 ‘약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것이 목적의 전부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은 여전히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프랑스 손아귀에 있었던 아프리카 대륙은 자신들 고유 언어까지 박탈당한 상태에 있다. 일본이 우리말과 글을 말살했던 것처럼 프랑스도 그러했고 좀 더 긴 세월을 통치했기에 그것이 성공했을 뿐이다. 

마치 비둘기 날개처럼 '우아하게 휘날리는 프랑스 국기' 아래 말끔한 프랑스 군인들과 귀족들이 북아프리카 식민지에 도착하여 연회를 벌이는 듯한 모습


 프랑스에 나치 깃발과 욱일기가 없었을 뿐, 그들이 식민지에서 저지른 만행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극악한 범죄’였다. 그러나 우리는 프랑스의 식민지 만행과 학살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 일본의 잔악함에 대해 서양인들에게 아무런 정보가 없듯 프랑스와 유럽 제국들의 만행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를 은폐하는 주체가 누구일까? 당연히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이다. 그들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모든 걸 빼앗긴 자들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분명 자신들이 132년간 지배했던 알제리에서 200만 명에 가까운 알제리인들을 학살하였고, 140년간 지배했던 아이티에서는 독가스까지 사용하여 대량 학살을 자행했으며, 불과 26년 전인 르완다 내전 100만 학살의 배후에 있었다. 하물며 수많은 여타 식민지에서 같은 일이 없었을까?
   

 사람 사는 세상에서 ‘공감’ 능력은 핵심이자 거의 모든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을 이해할 때뿐 아니라 사람에 관련된 모든 사건들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본질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느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의사들 발언은 심각한 도발이었다. 설사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취지였다 해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었다. 그들이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의 부재. 합리와 논리라는 이성주의에 치우쳐 살아왔기에 가슴이 굳어 있는 것. 그러한 차가운 이성에 기반한 ‘유산’ 제국주의 사고에 기반한 ‘관성’이 현재 코로나 사태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프랑스를 지켜보며 ‘머리로만 살아온 사람들’이라 했던 말이 이 뜻이었다.


"여행하세요" 식민지 군대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 히틀러가 존경했던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현재 프랑스에는 몇 백 년에 걸쳐 유입된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정착해 있고 프랑스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2대 3대에 걸쳐 가족 모두가 이민을 오기 때문에 그들의 장년층과 청년층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고 교육받은 ‘완전한 프랑스인’이다. 그들은 프랑스를 사랑하고 프랑스인들을 사랑한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 할 때마다 그들 마음까지도 아무렇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프랑스 엘리트들의 불온한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그것이 미치는 정서적 상처는 아프리카 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현재 프랑스에 정착해 살고 있는 수많은 아프리카 혈통의 자국민들에게까지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프랑스인들의 이러한 자충수는 결국, 프랑스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갈등의 문제는 언제나 그 본질을 보아야 한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그 ‘증상’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인격 전체’를 다루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던 체게융의 관점과 같다. 갈등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것이 촉발된 근본적 원인이 있다. 우리는 표면에 드러난 것이 아닌 그것이 온 뿌리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갈등의 뿌리와 책임은 전적으로 프랑스에게 있다. 프랑스인들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그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은 앞으로도 그런 발언과 발상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글의 서두, 1편





16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존속되었던 프랑스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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