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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Oct 21. 2019

생명력의 회복.
창조성이 깨어나다.

유럽 살이 극한 고독의 여정 41화


 내 안의 목소리는 사실 오래전부터 나에게 '진정한 내면으로 하강' 할 것을 여러 형태의 '신호'로서 보내왔었다. 다만 나는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었고 이행하지 않았으며, 그 대가로 혹독한 경험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한 나를 깨우기 위해 '자연'은 내게 '가장 강력한 전기충격'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임을.


이렇듯 우리가 무의식이라 부르는 '원형'은 언제나 우리를 '깨우고' 있다. 다만 우리의 흐리멍덩한 의식이 그 '사인'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칠 뿐. 남편과 어머님, 프랑스라는 대극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것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충격파'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것을 감지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나에게 '가장 불편한 모습으로' 현현하여 '가장 강력한 신호'를 보내준 메신저였음을 알게 되었다그것이야말로 '부처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부처의 모습이란, 온화하고 자비롭고 따뜻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내 문제의 해답에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상황 '가장 필요한 상황'으로 나를 몰아가 주는 존재, 이보다 차가울 수 없는 모습으로 나를 '깨움으로써' 결국 나를 '내가 넘어야만 하는 절벽으로 밀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좋고 나쁨'이란 이렇듯 하나의 모습일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그러니 우리 인식 속의 모든 '분별'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일까. 

 내가 지워놓은 '선'을 없애고 내가 규정해놓은 '틀'을 부수는 것. 모든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 그 분별심이 없던 자리야 말로 '대극이 사라진 자리'이며 붓다가 말한 '중도'의 자리임을 본다.
불교의 가르침과 마음을 되찾는 여정은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결국 

인간 존재로서의 '자기 회복' 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나는 극단적인 물질세계로 던져졌어야 했다
.  


나는 '한쪽에 치우쳐있는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기에, 너무 멀리 공중에 떠있었기에, 땅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극의 지옥'을 통과했었어야만 했음을. 그래야만 '온전한 나'로 돌아올 수 있었음을. 


나는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 안에 목구멍까지 꽉 차있던 '창조성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증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릴 때의 상처와 성장기의 사건들이 나를 그 세계로 인도하였고, 그로 인해 나는 '세상의 모두와' 내면의 접속을 끊은 채로 살아왔었다는 것을. 외부와의 단절은 곧 '나 자신과의 단절'을 말하였고, 나와의 단절은 내 안의 중심인 '생명력'과의 단절, '창조성'의 상실을 의미하였기에. 
 
 내 손가락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에도 이번에도 류머티즘 인자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자가면역체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 말은, 내 손가락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선명히 말해주었다. 
 

'자가면역체계의 오류' 자신을 공격하던 그 힘은 바로, 내가 남을 미워하고 증오했던 마음이 결국 나 자신을 미워하고 증오하던 마음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내 마음을 검게 칠하고 있던 것이었음을, 나의 원망과 분노가 '나 자신을 죽이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음을... 
 

내 신체에 나타난 증상은, 내 그 두려움, 그 내 마음의 힘이 물질적 결과로 나타난 것일 뿐이었다. 
 
내 몸에 나타난 이상 증상을 통해, 우리 몸속에 '생명력'을 주관하는 '심포 삼초'라는 보이지 않는 장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이 손상되었을 때 손가락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생명의 이치는 이토록 명확하였다. 생명력의 고갈. 나는 생명력이 바닥난 상태로 생을 지나왔었기에...
 
 내가 땅으로 돌아오고 현재를 살아갈 때에, 그렇게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나 자신을 회복할 때에, 그렇게 '내 안의 생명력'과 다시 만나게 될 때에 비로소 나의 '잃어버린 창조성'이 찾아지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한 마음을 낸 후 나의 손은 모든 증상과 통증이 사라졌으며 관절의 형태 또한 올바르게 다시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기에. 

이 명확한 진실은 나를 더 이상 두려움 안에 가둘 수 없게 했다. 

 

꽃나무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여러 계절을 지나야 한다 


 나는, 내 몸의 형태를 바꿀 만큼의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 나의 그 힘을 이제는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주저할 수 없는 확고한 마음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선택했다. 이제는 내 힘의 방향을 돌리기로. 이제는 그 힘을 모두를 살리는 곳에 쓰기로. 
 
 
그렇게 생명력을 회복하자 내 안에 창조성이 용광로처럼 분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전 꿈꾸었다가 하지 않았던 일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 무작정 그리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나만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먼지 자욱하게 앉은 피아노와 기타를 다시 만지작 거렸다. 이 모든 것은 나를 고무적으로 만들었고 내가 비로소 진정한 나를 회복하고있음을 똑똑히 말해주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조금은 어리둥절해 보인다. 얼마 전까지 힘들어하던 아내가 이렇게 변한 모습에.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남편은 나의 인식에 똑같이 도달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내가 데려가면 되기에. 내가 그 마음을 알았으니, 내가 손잡고 데려가면 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고향에 있는 동생 생각이 많이 났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 없이 부모님 곁에서 언제나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동생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안한 동생 앞에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기에. 진짜 용기 있는 것은 바로 그 모습이었기에... 


떠나는 것은 쉽다. 무책임하면 되기에.
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 모든 것을 다 껴안아야 하기에.
 


나는 말해주고 싶다. 지금 여기,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당신이, 도망가지 않고 오늘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당신이... 진짜 용기 있는 거라고.


당신의 몸은 떠난 적이 없으나 당신의 마음은 무수히 떠났다가 돌아왔을 것이기에. 그렇게 다시 모두를 껴안으며 오늘을 또 살아내고 있을 것이기에...

이제는 나도 그 용기를 닮아 본다.
나와 그 모두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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