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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Feb 20. 2022

의사는 어떻게 의사가 되는 걸까

퇴사 일기 ①

아무리 3월부터 봄이라지만, 아직 내겐 너무나 추운 2월 말이다. 새벽 아침에 병원으로 출근하는데 거리는 어둡고 조용하다. 살짝 그늘진 달은 날 응시하는 야수의 눈 같다. 까닭 없이 불안하다. 표정이 굳는 것이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느껴진다. 괜히 볼 근육을 움직여 미소를 지었다 폈다 해보지만 어떤 표정을 지어도 편하지가 않다. 입꼬리가 쳐지는 것이 내겐 그나마 가장 편한 표정이었다. 난 언제쯤 자연스러운 '영업용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이불에서 영영 나오고 싶지 않고 계속 잠만 자고 싶다.


사람은 언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 당연하지만 이것도 누군가 이미 연구를 했다. 흔히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라고 하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곤 하지만, 좋은 일도 고강도의 스트레스이다. 예를 들면 결혼이라든지 (좋은 곳으로) 이사, 이직이라든지 말이다. 내가 보기엔 '변화'가 스트레스인듯하다.


최근 난 직장을 옮겼다. 대학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가는 건 아니고 동네병원으로 간다.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병원을 '로컬'이라고 하고 그곳 원장님 밑에 고용되어서 일하는 의사를 '페이닥터'라고 한다. 난 이제 페닥이다. '명심하자. 난 페닥이다! 교수가 아냐... 페닥이야! 페닥!'하고 《내과 박원장》을 보며 영업용 미소를 연습해본다.



일기를 보니 작년 11월부터 슬슬 다음 직장을 알아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떠난다는 것 자체는 재작년 말 혹은 작년 초쯤?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어렴풋이 정했던 것 같다. 대학병원은 정교수가 될 거 아니면 떠나는 게 맞을 것이다.


의사가 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최근 오랜만에 청첩장 모임을 하게 되어 친했던 대학 동기 몇몇이 모였다. 학생 땐 다들 비슷한 지점에 있던 것 같은 친구들이 졸업하고 나니 저마다 시간이 다르게 흘러있었다. 인제야 청첩장을 주는 친구를 이미 결혼 10년 차가 된 친구가 축하해준다. 다들 조금씩 늙었다는 것만이 공평했다.


오랜만에 모인 김에 저마다 아는 친구들의 근황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병원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빠르면 정교수 발령을 받은 이도 있었다. 아직 못 받은 친구들도 열심히 논문을 쓰며 발령을 기다리는 중이다. 대학병원 정교수는 조건만 충족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고 어쨌든 자리가 나야 받을 수 있다. 또 그 자리를 누가 들어가느냐 하는 약간의 운과 정치가 필요하다. 그냥 '만년 과장'처럼 죽치고 있으면 언젠가는 정교수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또 그렇다는 보장이 없는 게 무섭다. 전공의 때 그런 식으로 계속 희망 고문당하며 오랜 기간 정교수님의 노예처럼 부려 먹히다가 결국 더러워서 제 발로 나간 '교수님'을 보았다. 난 그때 이미 내 삶의 방향을 어느 정도 정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어차피 나갈 사람'치고는 대학병원에 오래 남은 편이다. 피부과, 성형외과 친구들은 진즉 페닥이 되었고 그중엔 이미 개원한 지 오래라는 이도 있었다. 그 친구 얼굴을 보고 싶으면 지금 ○○역에 가면 된다고 한다. 대문짝만 하게 광고판이 붙어 있다고... (우리는 그 친구가 원래부터 집이 부자라서 일찍부터 크게 개원할 수 있었을 거라고 자조적인 합리화를 했다)


결국, 의사의 인생은 두 가지 길로 요약된다고 한다. 학문에 뜻을 두고 열심히 논문을 쓰든가 아니면 기술을 단련하여 강호의 고수가 되든가. 최악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아마 그게 지금의 나인 것 같아서 우울하다.


대학병원에 좀 오래 있었던 건 모교와 모교 병원에 대한 애착, 그리고 안정감 때문이다. 병아리 같은 학생과 후배 의사랑 아웅다웅하는 것도 지나고 보니 다 재미있는 추억이었다. 그러나, '로컬'이라는 강호무림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도 큰 이유였다. 단점도 있지만 어쨌든 내 청춘을 다 보냈던 병원이었다. 떠나려니 솔직히 너무 무섭다. 구체적으로 뭐가 두려운 건지 모르겠는데 무섭다. 무림 고수를 꿈꾸는 것도 아닌데, 문파의 대문을 나서자마자 도적 떼라도 만나 비명횡사라도 할 것만 같다. 결국, 주저주저하면서 나오긴 했지만 요즘 잠을 못 이루고 계속 악몽을 꾸고 있다. 면접 본 날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집에 가서 앓아눕기도 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할 때까진 계속 이 모양으로 불안할 것 같다.


'전' 직장 근무는 끝나진 않았다. 로컬 병원의 이직 시기는 대략 연말정산이 깔끔하게 끝나는 12월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편이지만, 대학 병원의 일정은 학사 일정과 같이 3월이 기준이다. 즉, 2월 28일이 마지막 출근이다. 3월 1일부턴 '현' 직장으로 출근한다. 2일부터가 아니고 1일부터이다. 이것도 사실 적잖이 놀라긴 했다. 난 당연히 1일을 잠깐 쉬고 2일부터 심기일전해서 첫 출근을 할 계획이었는데, 그건 김칫국이었다. 로컬 병원은 쉬는 날이 없다! 공휴일을 따박따박 챙기는 게 대학병원의 장점 중 하나였다는 걸 몰랐다. 물론 대학 병원도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공휴일에도 집에 못 가는 날이 허다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외래가 없다는 건 삶의 질 측면에서 매우 큰 차이이다. 로컬은 남들이 일할 때 당연히 일하고 쉴 때는 더 바빴다 (사람들이 일을 쉬는 날 병원을 이용하므로...). 뭐든 쉬운 게 없다.


2월도 정신없이 소모되고 있다. 대학 병원에서는 떠날 준비와 송별 인사로 정신없는데 (그 와중에 외래와 응급실 당직은 2월 끝까지 잡혀있다), 로컬 병원의 원장님(고용주)은 3월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교육을 받고 만반의 준비를 해주길 요구하고 있다. 병원 시스템이 전혀 달라서 적응하는 게 큰 스트레스일 것 같다.


난 지금도 의사가 되는 중이다.




2월은 8일밖에 남았다. 오늘은 브런치라도 안 하면 이 막막함과 우울함을 어디 풀 곳이 없어서 혼잣말을 좀 남겨 놓는다. 당분간 브런치에 글 쓸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구직, 면접 과정 등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지만 내용이 많아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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