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산 Dec 12. 2022

2022년 12월 둘째 주 일기

#1

2022년이 18일 정도 남았다. 주식에 투자하시는 분에겐 아마 13일 정도 남았을 것이다.


갑자기 왜 주식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재벌집 막내아들' 때문일 것이다. 주식 좀 해본 사람이라면 자본주의 포르노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 그때 살걸! (혹은 팔걸!)' 했던 주식들에서 전부 성공만 한다는 대리만족이란! 캬...


하지만, 포르노를 보면 현자 타임이 오듯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꺼진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재벌집 막내 '손자'가 워낙 특출나서 다른 형제들이 못나 보이는 것일 뿐, 집안에서 서자 취급으로 멸시받던 넷째 아들(주인공의 아버지)마저 '약자'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화에서 뜬금없이 ○○의료원 '이사장'이 되어 있는 걸 드라마는 지나가듯 묘사했지만, 의사라면 정말 '현타'가 오는 장면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평생 뼈를 깎으며 일해봤자 너희들 의사는 공노비 혹은 사노비일 뿐이라는 걸 깨우쳐 주는 것이다. "우리는 너네랑 달라~" (드라마 대사)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재미까지 있으니 좀 착잡하다. 오늘도 파랗게 질린 내 주식을 보니 더욱 그렇다.


#2

'재벌집 막내아들'의 원작은 웹소설이다.


드라마까지 나오고 나서야 작품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위키의 평가를 보니 대단한 작품인 것 같다. '한국 재벌+전생물'의 시초격이자 완성형이라고 한다. 이 작품이 나와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아류작이 나왔지만, 다들 '재벌집 막내아들'만 한 수준이 못 된다고. 제목이 '재벌집 막내아들'인 바람에 평가절하된 작품이라고 안타까워하는 리뷰도 보인다.


장르가 무엇이든 ‘잘 쓴 글은 결국 인정받는다’라는 생각이 든다. '뭘 어떻게 썼길래?'하고 읽어보고 싶어졌다.


#3

한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보았다. "다음 주가 발표인데, 미리 주는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이번 브런치북 공모전은 낙방이구나"라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런 내용의 글을 썼던지라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공감하며 읽었다.


브런치 공모전 이후 잠시 쉬는 동안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좋은 일 하나, 나쁜 일 하나 정도로 기억된다.


#4

좋은 일은 다른 공모전에 합격한 것이다. 브런치북 공모전처럼 여러 개의 글 묶음을 응모하지 않고 단편 하나 응모하는 공모전이었다. 응모한 이상 기대를 안 할 수 없지만, 생각보다 큰 상을 받게 되어 얼떨떨한 기분이다. 무엇보다 가장 기뻤던 건 내 글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거였다. 그동안 공모전에서 탈락해도 '운이 없었나 보다'라고 짐작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네 글은 이게 좋은데, 이건 좀 별로야'라는 걸 누군가 공들여 평가해주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과생 머리로 공모전을 준비할 때 가장 힘든 점은 역시 '주관적이고 모호한 심사기준'이었다. 매회 당선 확률을 계산하곤 하지만, 공모전은 복권이 아님은 안다. 즉 뭔가 100% 운 탓만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긴 할 거라는 것. 그런데 이과생은 문과생의 그 '느낌적인 느낌'이 매우 어렵다. 아무리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고 해도 이유는 알고 싶었다. '넌 이래서 안 돼'라는 걸 알아야 '아~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주제넘게 이런 글로 감히 당선을 기대했습니다~'하고 절치부심하든지 절필하든지 할 텐데, 가르쳐주지 않고 '운이 없어서 그렇다'라고 희망 고문하는 건 잔인하다. 그런데 심사평은 뭐라도 되어야 받을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


아무튼, 짧은 심사평에서 모든 걸 배울 순 없다. 뭔가 대차게 깨닫고 더 좋은 글을 쓰게 되겠구나 싶은 느낌을 받은 것도 아니다. 대신 내가 배운 건 문학적인 글조차 형식이 다를 뿐 뭔가 이과적인 수식이 있다는 거였다. 그걸 아마도 전문가들은 '방법론'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난 그것도 모르고 썼는데, 심사평을 보고 나서야 아 그랬구나 하고 알았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느낌? '역시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1등인 글은 없겠지만, '잘 쓴 글'과 그렇지 못한 글 정도는 심사위원이 대략 구분한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노력했던 만큼 적어도 중간 이상은 했으면 좋겠다.


#5

나쁜 일은 올해 지인과 열심히 작업했던 원고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는 거다. 내 단독 작업물은 아니지만, 나의 노력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것이 슬펐다. 그렇지만 다 된 프로젝트가 엎어졌다는 건 그만큼 지인에게도 큰 손해일 것이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까운 원고는 나중에 다른 형태로든 빛을 볼 날이 오면 좋겠다.


#6

다시 공모전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마도 이번 브런치 공모전도 낙방인 모양이다. 손이 근질근질한 걸 참고 있을 당선자분들께 미리 축하드린다.


남겨진 나는 나름대로 안 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내년의 방향을 정리해봐야겠다. 역대급 기회를 준 공모전이라는 건 그만큼 희망도 주지만, 반면에 실망도 크게 만든다는 걸 깨달은 것도 요즘이다.


그만큼이나 기회를 줬는데 안 된다는 건 내가 그만큼도 안 된다는 것.


축제인 줄 알았는데, 주제를 알아야 했다는 것.


브런치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다음엔 공모전을 찬 바람이 불기 전에 했으면 좋겠다. 글 쓰는 손이라도 덜 시리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10월 마지막 주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