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1년 4월 24일에 쓰기 시작했다. 비교적 평온한 주말 오후였다. 뭔가를 정리하기 좋은.
2021년 상반기 브런치 공모전(매번 내용이 조금씩 다르던데 편의상 공모전이라고 하겠다)이었던 밀리의 서재X브런치,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마감일은 4월 11일이었고 발표는 5월 31일이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선 고작 마감일로부터 2주밖에 안 지났지만 체감상으로는 한 2달은 흐른 것 같은 기분이다. 이거 나만 그런가? 공모전에 참가한 작가들이면 대부분 비슷한 기분일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당선되고 난 뒤 후기를 쓰고 싶다. 흔한 '김칫국 드링킹'이다. 하지만 세상에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공모전에 작품을 내는 작가도 있을까? "난 경험 삼아 한 번 내본 거야~"하는 말은 혹시나 있을 탈락의 충격에 대비한 자기 방어일 것이다. 경험 삼아 썼다고 하기엔 공이 적지 않게 들었다. 일종의 매몰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모든 작가님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남들에겐 보석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나에겐 소중한 유리구슬 같은 예쁜 내 글들.
그러나 문제는 카카오 브런치에는 (심지어 '작가'로 선발되어야 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통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그런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구슬들이 너무 많아서 내 글의 존재감은 그저 자갈 해변의 돌 하나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브런치에서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준다 하여도 여기 또한 웹툰계처럼 작가 지망생들로 인산인해였고 열정 페이로 진하게 우려진 바다의 빛깔은 당연 붉었다.
당연히 단순 확률로 보면 공모전에 당선될 확률보다 안 될 확률이 높겠지만 다들 혹시나 되면 어쩌지 하는 기대를 품기 마련이다. 무작위 추첨도 아니고 공모전이니깐. 나도 나의 글을 너무 아끼는 나머지 결과 발표까지 도저히 차분하게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 글의 제목도 '공모전 "당선" 후기'라고 미리 써 놓고 싶었다. 주술적인 목적(과학은 어디로?)으로. 그러나 낚시는 함부로 해선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후기'를 가장한 '당선 기원'글이다. 마치 당선이 될 것처럼 가정하고 쓰고 있는 것도 반대의 뜻을 가진 '그 단어'를 잠깐이라도 쓰면 부정 탈까 봐 그랬다. 이 글의 작성은 미리 했지만 올리는 시점도 고민이 되었다. 결과 발표 후에 올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마치 부적처럼 손에 쥐고 있고 싶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번 공모전 분석
도저히 그냥 기다리기엔 좀이 쑤셨던 나는 직접 이번 공모전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이전에 제8회 공모전을 분석해주신 바호작가님의 글이 있어 참고하였다.
나도 바호작가님처럼 멋있게 분석하고 싶었으나...
나는 프로그래밍은 몰라서 작가님처럼 스마트하게 자료를 뽑을 순 없었다. 어쩔 수 없군. 그냥 뽑을 수밖에(?). 단순작업이었지만 다행히 논문 작성 데이터 정리하는 것보단 나았다.
분석 결과 이번 브런치 공모전에는 총 3920개의 브런치북이 응모되었다. 작가는 총 2537명. 이들이 현재 브런치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휴면 중이 아닌) 작가라고 대략적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었다.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면 브런치북을 만드셨을 것이고, 브런치북을 만드셨다면? 공모전에 참가하셨을 테니까.
'많아!!'
브런치에서 심사를 제대로 할 수는 있는 걸까 하는 의문마저 드는 수였다. 그래서 한 달 넘게 걸리는 거겠지. 하긴 밀리의 서재도 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읽힐만한' 작품을 나보다 더 눈에 불을 켜고 찾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심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은 접어두기로 했다. 만약 내가 안 된다면 뭔가 팔기 애매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운이 없거나. 그밖에는 운이 없거나...
요강에 따르면 한 작가가 여러 개의 브런치북을 올릴 순 있어도 중복 선발은 되지 않는다고 하니 실 경쟁률은 2537명에서 20명이 뽑히는 것이다. 126.85 대 1. 확률 0.78 % 이다. 나도 당연히 돈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확률로만 따지면 100만 원 상금의 기댓값은 7883 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공들인 내 유리구슬의 값어치는 약간 이 정도일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긴 하였으나 고개를 저었다. 역시 돈 밖에 모르는~ 의사 놈인가 나는. 그러나 나의 인생 경험으로 볼 땐 돈을 따지는 걸 속물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나를 어떻게든 공짜로 부리고 싶어 하는 것일 뿐이었다. 모름지기 돈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람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법.
아쉬운 이야기이나 카카오 브런치도 '일단은' 우아한 열정 페이인 것으로 보인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 검색을 해보니 많은 작가들이 브런치가 '수익'모델이 없어서 네이버 블로그로 갈아탄다는 이야기를 볼 수가 있었다. 유튜브가 흥하는 게 사람들이 순수하게 창작 열정이 넘쳐서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모든 걸 또 돈으로만 따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식이면 브런치 공모전 응모한다고 글 쓰고 있을 시간에 도지코인이나 샀어야 했다. 브런치에는 돈이 아닌 다른 가치도 있는 것이다 (혹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 인생의 한정된 생명과 시간 일부와 교환할 만한 무언가가. 지금은 그걸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으니... 일단 로망이라 해야겠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기분도 들었다. 초기 공모전에 응모를 했다면 경쟁률이 훨씬 널널했을 텐데 하고. 분석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니 대신 브런치의 공식 발표를 참고해보았다. 제8회 공모전은 3700여 편의 작품들이 응모가 되었다 하고, 제7회는 2500여 편이라고 한다. 그 이전은 몇 편이 응모를 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제6회에선 역대 가장 많은 글들이 응모되었다고 하니 응모 작품 수 자체는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추세라면 아마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성장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겠지만 공모전의 문턱은 더 올라갈 것 같다.
뭐 그렇다고 제1회 공모전이 아주 널널했다는 것도 아니며, 내가 그 공모전에 응시했다고 되었을 거란 보장도 없을 것이다. 당시 당선작들을 보면 감히 그런 생각은 할 수가 없는 퀄리티가 있었다.
'정말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도 너무 많구나...'
의기소침해진 나는 분석을 약간 바꿔보았다. 나의 글은 '의학 분야'이니깐 혹시 틈새시장을 노려볼 수 있진 않을까 하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브런치 초보자의 인상이라 틀릴 수도 있는데 브런치의 주 독자는 30대 여성으로 보였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감상적이고 우아하게 남편과 시댁을 돌려 까는 글들이 많았다. 이는 물론 상대적으로 쓰기 쉽고 주 독자층의 인기와 공감도 많이 받을 수 있는 장르(?)이긴 하나 정말 너무! 많아서 특출 난 글쟁이가 아니면 발을 담그자마자 가라앉게 생겨 보였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의학'은 아직은 브런치에서 마이너 중에 마이너라고 판단되었다. 이미 많은 의료인들이 책도 많이 내고 브런치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번 브런치 공모작품들을 전부 다 읽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내용까진 다 확인할 순 없었고 '제목만' 검색해서 대략적으로 얼마나 되는지만 간략히 추려보았다. 예를 들면 노골적(?)으로 '의사'가 제목이나 작가명으로 들어간 것으로. 그게 그 작가님의 나름의 홍보 요소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비슷한 장르가 될만한 '간호사, 병원, 약사, 약, 치과, 한의사' 등도 검색해보았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간호사 1
병원 2
약 (약사) 4
의사 9
치과 의사 1
한의사 0
로 총 17편. 그중에 9편이 의사가 쓴 것으로 보인다. 뭐지? 다들 바쁜 줄 알았는데... 물론 빠진 것이 의외로 많을 것이다. 당장 간호사와 치과 의사, 한의사 작가님만 해도 브런치에 얼마나 많은데 작품 수가 저 정도밖에 검색이 안 되는 것은 뭔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 작가명과 브런치북만 봐도 '남산'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의사'로는 검색이 안 된다. 홍보에 있어선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결과만 놓고 볼 때 (어디까지나 나의 망상인데) 브런치와 밀리의 서재가 장르의 다양화를 위해 굳이 이곳 변방의 '의학 분야'에서 뭐 없나 하고 찾아왔다면 저기 17편의 작품들이 실질적인 나의 경쟁작(?)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당선 확률이 급상승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작가님들의 작품을 찾아서 읽어보면 역시나 다들 잘 쓰셨고 당선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하긴 애당초 이 중에서 하나를 뽑는다고 가정하는 것부터가 이미 훌륭한 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