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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Jul 28. 2023

0주 0일. 아니 벌써 임신이라고?


20대 여자가 자가 임신 테스트기가 두 줄이 나와 산부인과에 내원했다. 환자도 그렇지만, 같이 온 남자친구도 초조한 모습이 역력하여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예상치 못한 임신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초음파를 본 뒤 결과를 정리하여 설명하려고 했는데, 남자가 먼저 물었다.


"그래서 지금 몇 주 정도 된 건가요?"


"초음파를 보니 자궁 안에 아기집이 있고 난황까지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과 아기집 크기를 고려하면 대략 6주 정도입니다. 보통 아기가 보이면 더 정확하게 주수를 추정할 수 있으나, 오늘은 보이지 않네요."


"네? 6주라고요?"


"네. 마지막 생리일 기준으로 계산해도 초음파 추정 주수와 다르지 않아 6주로 생각하시는 게 맞겠습니다."


설명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오묘하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그렇지만 6주면 지금으로부터 한 달 반 전 아닙니까? 그땐 관계를 하지 않았는데..."


남자는 연신 달력을 보며 말했다. 여자는 남자를 힐끗 째려보곤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맞아요. 아무리 길어야 한 달 전일 텐데요. 벌써 6주일 리가 없어요."


싸해진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난 더욱 덤덤하게 말했다.


"일단 임신 주수는 저희가 산전 진찰과 출산 일정을 짜기 위해 편의상 계산하는 거예요. 사람마다 다 똑같을 순 없으니 그걸로 언제 관계했는지 거꾸로 추정하는 건 하진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지금 알고 계신 게 '관계한 지 4주'인 거잖아요? 거기서 대략 2주를 더해야 해요. 그럼, 오늘이 6주가 맞겠군요."


모든 정황이 다 '임신 6주'로 일치하자 둘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에서 이런 상황이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그건 임신 주수를 계산하는 방식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임신 0주 0일. 한 생명이 탄생하는 기념비적인 첫날이다. 과연 이날 무슨 경이로운 일이 있었을까? 밤의 커튼 아래 맺어지는 두 남녀의 사랑 같은 거? 아니다. 그건 바로... '월경'이다.


아니 자궁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상황을 어떻게 임신이라고 할 수 있냐고? 그건 산부인과의 '약속' 같은 거로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실제 '수정'이 언제 되었는지는 알기가 매우 어렵지만, '생리'가 언제 터졌는지는 잘 기억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임상에선 마지막 월경일을 기준으로 임신 주수를 센다.


즉, 생리가 터진 날이 일단 임신 0주 0일이다. 모든 새 출발은 우선 기존 걸 뒤엎고 시작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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