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공모전 결과에 영향이 갈까 봐(?) 참고 있었던 나름의 분석글을 오늘 결과가 발표되었으니 풀어보고자 합니다.
《제13회 공유저작물 창작공모전 1차 - 삽화 부문》 (이하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모전)은 2021년 5월 14일(금)부터 6월 6일(일)까지 진행된 공모전입니다. 아무래도 글쟁이들 위주의 브런치에서 모처럼 진행한 그림쟁이들을 위한 공모전이라는 것이 특징이에요. 물론 결과적으론 공모전 내용이 일부 그림 작가분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긴 했지만요. 내용은 안데르센 동화 5편 중 하나를 선택하여 관련 '삽화'를 그려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네... 응모 전부터 또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습니다만 기대도 안 하면 지원을 왜 하나요. 게다가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저에게는 최선의 시나리오란 최대한 프로 그림 작가분들이 참여를 안(못) 하시는 겁니다. 저는 프로 작가분들을 존경하는 만큼 그들과 가급적이면 같은 무대에서 경쟁하고 싶지는 않았지요. 그건 양민학살이나 마찬가지이니깐요. 프로 작가분이 빠진다고 제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여러분도 제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공모전은 그게 가능하겠다 싶었어요.
첫째는 이 공모전이 브런치에서 진행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매우 큰 요소였어요. 물론 기존에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분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아무래도 브런치는 글쓰기용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그래서 그림 작가분들은 브런치에 무관심이었던 겁니다. 즉 공모전에 참가하려면 회원 가입부터 해야 하는데... 참! 브런치가 회원 가입만 하면 글을 쓸 수 있던가요? 여기서 일차로 방어(?)가 되는 겁니다. 반대로 브런치의 기존 작가분들이 글쓰기에선 날아다니시겠지만, 이분들이 그림까지 날아다니는 건 또 아니겠지요. 이렇게 양쪽으로 방어가 되는 '닫힌 공모전'입니다. 아마 이런 공모전은 또 없을 겁니다.
둘째는 저작권위원회의 어그로였습니다. 저작권위원회는 이 공모전의 우승작들의 저작권을 CCL (자유이용허락표시)로 하겠다고 했어요. 이게 프로 그림작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작가님들은 소중한 자신의 작품들을 저작권위원회가 동의도 없이 너무 쉽게 이용하려고 하는 느낌을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공모전이라는 것도 열정 페이가 심한데 말이죠. 이에 일부 작가님은 항의의 뜻으로 '그림은 그렸으나 응모는 하지 않겠다'는 글을 남기신 분도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이 공모전의 대상은 '양민'들이었던 것입니다. 저작권위원회가 자기 그림을 CCL로 어떻게 사용하든 크게 관심 없거나 잘 모르시는...
그런데 결국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들이 당연하다는 듯 당선되었군요. 이전 브런치 공모전에 당선되었던 작가님도 포함해서요. 아 물론 퀄리티가 차이가 크겠지요. 그러나 당선되었던 사람이 또 당선되고 아무리봐도 프로가 양민학살하는게 뻔히 보이면 어떤 사람들은 '공모전을 지원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긴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공모전의 당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니 근데 이건 좀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이 공모전은 '키워드'를 선택해서 응모하는 방식이었는데요. 그런데 모든 글들에 이 키워드를 다신 작가분들은 도대체 무슨 의도였을까요? 삽화는커녕 안데르센의 ㅇ조차 관련 없는 글에 키워드가 등록된 글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조회수 증가에 도움이 많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브런치는 조회수 많아도 광고 수익은 없는 거 아니었나요? 저는 유행 같았던 이런 현상도 참 분석해보고 싶었습니다.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모전 키워드가 등록된 글은 총 1384개였습니다. 그중 삽화가 포함된 글은 203개였습니다. 이 중에서 2개는 6월 7일 이후 등록되어 심사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고, 1개는 작가가 자진해서 응모하지 않아서 (굳이 이렇게 하는 건 브런치와 저작권위원회에 항의하는 의미로 추정) 결국 총 응모작품 수는 200개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작가는 1개 이상의 작품을 응모하였고, 이에 총 응모 작가수를 보면 172명이 되겠습니다. 이들 중에서 15명의 작가들을 뽑는 셈이므로 경쟁률은 1대 11.4명, 8.72%의 당선 확률입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밀리의서재X브런치공모전의 당선 확률이 0.5% 정도였으니 무려 17배도 높은 확률인 겁니다. 뭐 저는 속물이니깐 솔직하게 좀 더 계산해봅시다. 대상부터 장려상까지의 상금과 당선 확률을 따져보면 172명의 작가들이 그린 그림 하나의 값어치 (=기댓값)는 7만 8488원이 되겠어요 (소수점 이하 생략). 물론 이건 확률적인 것이고 이마저도 당선이 안된 157명 작가님들은 그냥 0원짜리 그림을 그리신 것이긴 하지만요.
그림 작가님에겐 커미션이라고 하던가요? 프로 작가님께 그림 하나 그려달라고 부탁하는데 8만 원도 안 주면 과연 그려주실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이 공모전은 마치 게임 이론 중 하나와도 같은 양상을 띄게 됩니다. 무슨 게임과 같은 건진 잘 모르겠습니다. 죄수의 딜레마? 치킨 게임? 말하자면 내가 만약 8만 원의 값어치를 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다 싶으면 노력하지 않을수록 이득인 겁니다. 한편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으면 모든 노력을 쏟아야 하게 되어 있지요. 음 그런데 쓰고 보니 이건 글도 마찬가지네요... 그런데 그림은 아무래도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매체이니까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전 이 공모전으로 가장 이득을 본 건 '브런치'라고 생각합니다. '도박판에서 유일하게 돈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더 고상한 비유를 찾고 싶은데 못 찾겠으니 일단 이대로 두겠습니다.
이번에 삽화를 응모하신 작가분들 중 오로지 공모전 응모를 위해 브런치에 가입 (작가 승인까지 된) 하신 분은 한 25%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는 그만큼 그림 작가분들을 확보를 한 것이죠. 이분들이 공모전 이후에도 브런치에서 활동을 하실지는 과연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새로운 영역에서 광고는 되었을 겁니다. 이번의 8.72%의 당선율도 다음 삽화 공모전이 있다면 더 떨어질 것이고, 아마 프로가 더 양민학살을 하는 장이 되겠지요.
그러나 뭐 재미는 있었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전략상으론 프로에 비빌 정도가 안 되면 시도조차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이득인 게 공모전이라는 것인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자꾸만 도전하는 것이 이득인 것만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 에휴... 사람은 이해타산적으로만 살 순 없는 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