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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산 Dec 22. 2021

제9회 브런치북 공모전 관련 잡담

분석이라기보단 그저 개인적인 생각일 뿐

#1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당선 발표일.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탈락 소감문을 올린 것이 아니라 브런치북 어떤 글의 오타 수정이었다. 솔직히 부끄럽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읽은 건 누구의 글도 아닌 바로 나의 글들일 것이다. 당선작과 비교하면서 한 번, 다른 작가님과 비교하면서 또 한 번, 이런 식으로 다른 글을 읽을 때마다 내 글로 회귀하면서 누적되는 조회 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마치 미동도 하지 않는 반려동물을 어루만지듯이 스마트폰을 엄지로 쓰다듬곤 했다. 그 정도로 많이 읽었는데 '또' 오타라니!


물론 업로드 전에 퇴고하면서 오탈자 교정은 했다. 그건 기본적인 예의임을 나도 아니까. 그런데 이 지독한 오타는 몇 번을 봤는데도 발견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또 발견되곤 했다. 이번엔 '의사'를 '의자'로 입력했다. 고작 한 줄 (-) 차이였기 때문에 눈에 안 띄었나 보다. 키보드에서 'ㅅ'과 'ㅈ' 사이에 무려 2개의 키가 있는 거리인데 손가락이 어떻게 꼬이면 그런 오타가 다 나나 싶었다. 하긴 요즘 의사가 醫師인가... 다들 의사 놈(醫者)이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의자'라고 썼나 보다.


남자 의자는 무엇이고 산부인과에서 왜 필요한가...


오타를 발견한 건 당선 발표일 전이었다. 그래서 오타를 발견 즉시 수정하고 싶었는데,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괜히 건들었다가 이상한 전산 오류 같은 게 나서 내 브런치북이 심사 목록에서 쏙 빠져버리기라도 할까 봐서였다. 지금 와서 보면 김칫국을 마시다 못해 아주 샤워를 하는 수준의 부질없는 생각이었는데, 그땐 그랬다. 공모전 공지글에 달렸던 댓글에도 뭘 어떻게 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브런치북이 안 보인다는 부류의 댓글도 있고 해서 불안해서 뭘 건들 수가 없었다. 다만 그냥 기억해두자니 나중에 까먹고 못 찾을까 봐 따로 캡처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글을 보는 사람이 많진 않아도 발표일까지 기간 동안 누적으로 보면 적은 수는 아니었을 텐데, 다들 그 오타를 발견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심사위원들이 내 글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였다.


브린이 작가가 상상하는 심사위원 이미지? (출처: 영화 ≪내부자들≫)


"이 사람은 뭐 기본이 안 되어 있는데 공모전을 지원하네? 우리 땐 그냥 원고지가 파쇄기에 들어갔는데 말이에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준다면 좋은 것이죠. 타일작도 많이 깔려줘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선생님."


... 괜히 상상했다. 별 도움도 안 되는 자해와도 같은 상상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남는 게 허탈감밖에 없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아마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설마. 또한 오타 때문에 탈락했을 것 같지도 않다. 그건 '그저 운이 나빴을 뿐'과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2021년 12월 15일. 결과는 역시 탈락이었고 나는 후다닥 오타부터 수정했다. 그렇지만 내가 모르는 오타가 어딘가에 또 있을 것 같다.


#2


밀리의서재X브런치공모전 땐 심사위원별로 작품을 분류해서 읽고 공통점(=심사위원의 취향)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정말 당선에 '취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내가 맞춰 보는 것도 한 전략일 테니. 작가와 편집자가 만나는 과정이 '연애'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하는데, 그럼 가만히 서서 '왜 난 이성에게 인기가 없을까?'라고만 하지 말고 약간의 '노력'이라도 좀 해보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더라도.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당선작도 하나하나 읽어볼 예정이다. 물론 훑어보는 건 이미 했지만 어떤 점이 '운' 이상이었을까 하고 읽어보는 것 말이다. 관련 전공도 아닌 내가 감히 뭘 평가하겠냐마는 독자로서 접근하고 싶다. 이런 점이 좋았고, 저런 점은 별로였고, 해당 출판사의 대표작들을 보니 그래서 이 브런치북을 영입하고 싶었겠다고 하는 인상 같은 것들 말이다.


그전에 아쉽게도 선입견을 먼저 언급해야겠다. 우선 당선 작가님은 총 13명이다. 와디즈 특별상(=펀딩 지원)은 최대 5명을 뽑는다고 하더니 3명을 뽑았다. 역시 '최대'라는 단어는 두 글자만으로도 꽤 쓰임새가 좋다. 이 13분의 작가님 중 여성은 11명으로 보인다. 10명은 대상(=출간 예정)이다. 11대 2의 성비. 대상 한정으로 보면 남성 작가는 전멸... '그리고... 카카오'라고까지 생각하면 망상에 가까운 음모론일 것이다.


당선 작가와 제목, 목차(어떤 이야기를 하시겠구나 하는)를 봤을 때 들었던 전반적인 인상이 그랬다. 예외는 있겠지만 대체로 여성이 여성의 시각으로 자신(여성)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여자만 뽑는다느니, 그래서 역차별이라느니 하는 시기 질투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호기심이 생기면서 이게 어떤 '현상' 아닐까 하고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다.


자 이 성비가 통계적으로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면 '왜 이럴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흔히 생각하는 편견들을 제시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여성이 남성보다 섬세한 감정 묘사를 잘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어쩌고저쩌고 하는 심리학적 이론 같은 거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남성이 여성보다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서 수학을 잘한다' 같은 소리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 그러나 확실히 '차이'는 있는 것 같다. 감수성이 특출나게 섬세한 남자, 수학을 특출나게 잘하는 여자가 있겠지만 집단적 성향 차이는 존재한다.


그래서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브런치 메인에 오르는 글을 보면) 아무래도 브런치는 여성들이 많이 있는 공간인 것 같다. 작가님도 여성이 많고 독자분도 여성이 많아 보인다. 따라서 원래 input 된 남녀 성비부터가 11:2면 당연히 output이 11:2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당선이 단순한 '제비뽑기'여도 언뜻 보기에 '차별'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면면들을 보면 '여성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가 매력적이라서 당선되었다면 '여성이라서' 당선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 점도 생각해볼 만한 주제이다.


예를 들면 나는 정유리 작가님의 ≪날 것 그대로의 섭식장애≫를 인상 깊게 보았다. 작품 자체도 너무 좋았다. 병원에서 의사-환자 관계로 보게 되는 섭식 장애 환자가 '환자' 딱지를 떼고 집에 가면 어떻게 생활하는지 잘 보여준 작품으로 의사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주었다. 당선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떠오른 생각은 섭식장애가 여성에게 호발하는 질환이라는 것이다. 논문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여성의 0.9%, 남성의 0.3%에서 발생한다고 하며 3배 많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실제 임상에서는 10~20배 정도 차이 날 정도로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이 질환이 왜 생기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뇌 기능의 차이가 있다는 논문이 있기도 하고 사회문화적 원인(=날씬함을 강요하는 분위기)을 언급하는 논문도 있다. 아마 복합적일 것이다. 사회 탓만 하는 것도 부적절한 방식이긴 하나 확실히 여성은 공감하는 바가 클 것이고 따라서 어떤 시사점을 던지기에도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의 특성, 이를 가공하는 작가, 주 독자층 모두가 여성이 남성보다 많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브런치북을 남성도 쓸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이 잘 안 되었다.


다른 브런치북도 예를 들면 이렇다.

- 여성 자영업자의 고충

- 일본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여성

- (적절히 섞여 있지만 주로) 여성의 인권을 말하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는 여성

- 여자 야구 동호회 이야기

- 서울 여자 독립기


등등의 브런치북을 보면 '여성을 남성으로 바꿨을 때도 당선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단순한 성별 논란 같은 것이 아니다. 아마 남성은 이렇게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남성이라면 이런 '고충'이 없었을 테니 글로 녹여내지 못하지 않을까... 이번 공모전의 당선 발표는 한국 사회가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는 목소리로 들린다.


따라서 당선 작가들이 여성이 많다고 난 그걸 '차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그렇다면 남성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가 고민이 될 뿐이다.


#3


"선생님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산모의 궁금증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태아 성감별은 엄밀하게는 불법이나 요즘은 사문화된 지 오래이다. 애당초 성감별이 불법인 된 이유가 과거 '남아선호사상'이 너무 심해서 여아라고 낙태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은 그런 이유로 낙태하는 이는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요즘은 그냥 생기는 대로 낳는다. 좋은 현상이다. 다만 "아이가 뭐였으면 좋겠어요?"라고 먼저 물어보면 대부분 "딸이요"라고 할 뿐이다.


최근 (2016년) 출생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이다. 원래 자연 성비는 남아가 많으므로 매우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이전이 비정상적으로 남아가 많았던 것일 뿐. 이전이라 한다면 지금의 2030 세대일 텐데, 이들 남성은 어쩌면 부모의 잘못된 전망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부모 세대가 살던 환경을 보면 지금 이 정도로 남녀가 평등(?)해질 거라고 아마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나름 생존전략이라고 했던 것일 텐데, 세상이 대 격변해서 '잉여' 남성이 대량 발생해버린 게 요즘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대별로 '남녀 차별'에 대한 인식이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2030 남성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많이 느낄 수 있겠지만, 2030 여성은 운이 없었다면 태어나지도 못 할 뻔한 세대의 끝물이다. 그녀가 자라면서 받아온 (남성이 인지조차 못 하는) 은근한 혹은 대놓고 하는 차별은 그녀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사회에 어느 정도 자리 잡아 여기저기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브런치 작가님의 주 구성도 이분들이 아닐까 싶다. 이제야 '시작'이다. 여권신장이 얼마나 되었는가는 시각 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예비 부모는 태어날 아이의 미래를 위해 '딸'에 베팅을 하고 있다. 이들의 눈에 뭐가 비치고 있는지 난 궁금하다.


그래서 말인데, 세대 위아래로 온도 차가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일단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이제야 시작이다'라는 느낌이라 앞으로 더할 것인데, 나의 뒤 세대인 '차별받은 아들과 잉여 딸'은 언제 세상에 등장할지 그땐 또 어떤 충격을 던질지 궁금해진다. 어차피 나이를 먹으면 보게 되겠지만 단지 내 뇌가 너무 굳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항상 '감정'이 아닌 '현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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