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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시언 Feb 22. 2019

내가 도서관에서 깨달은 단 하나

그때부터 모든게 시작됐다

내 책을 읽어본 독자분들은 익히 알고있는 내용이겠지만, 나는 대학생 때 거의 매일 도서관을 갔다. 도서관 휴관일과 명절, 그리고 피치못할 사정으로 못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1년 365일 중에 약 250일을 꼬박 다녔다. 그렇게 2년을 다니고 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집보다는 도서관이 좋았다. 책을 좋아해서라거나 공부가 재미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그곳이 마음이 편했고 돈을 쓰지 않아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누구도 나를 신경쓰지 않았었던 까닭에, 마지막으로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공부나 책을 보는 일이 전부이므로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는 나름대로의 자기계발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학교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도서관으로 가서 문 닫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매일 밤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면서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린 날에는 온 몸이 다 젖도록 비를 맞으며 집에 가기도 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했을 때만해도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그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처음에는 학과 공부를 하기 위해서 열람실을 다녔다. 그런데 학과 공부는 무척이나 재미가 없었고 같이 도서관에 다니는 친구들도 없었기 때문에 심심했다. 그래서 자료실에 방대하게 비치된 책들에 눈길이 갔는데 그때부터 모든게 시작됐다. 당시엔 자기계발 서적이 재미가 있어서 많이 읽었다. 뿐만 아니라 유명한 고전 소설과 신작들, 심리학 책과 두뇌 과학 관련 책들도 꽤 재미있었다. 당시엔 주로 실용서 위주로 읽은 것 같다. 


나는 용돈을 받지 않는게 자존심이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학교 다닐 때 사용했고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때웠다. 매일 저녁은 도서관에서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점심은 도시락을 싸다녔는데 2009년도에 대학교에서 도시락을 싸다니는 사람은 그 학교 전체에서 나 혼자였다. 많이 부끄러웠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평일에는 학교 전산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이나 방학 때 도서관이 휴관인 날에는 소위 노가다라 부르는 일용직 일을 했다. 졸업할 때 까지 계속 1등을 유지했고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래도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운도 따라줘서 친구들과 소소하게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시고(술은 도서관이 끝난 후 마셨다), 마음씨 고운 분을 만나 오래도록 연애도 했다. 


학과 공부는 주로 시험기간을 앞두고서 벼락치기로 공부했었고 평소엔 도서관에서 그냥 일반 책을 읽거나 개인적으로 자격증 시험 공부를 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공무원 시험이 인기였었기 때문에 도서관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시는분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분들이 공부하는 열정과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에 계속 동기부여를 받았다. 그렇게 몇 개월만에 학과와 관련된 자격증 3개를 독학으로 취득했는데 필기/실기 모두 단 한번도 떨어진적 없이 무사통과했다. 당시 내 나이에서 학과 관련 자격증으로 딸 수 있는 국가공인자격증 중 가장 높은 등급을 모두 취득했었으므로 그때 이후로는 자격증을 따지 않았다.


시간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보통 하루에 책을 1/3권 정도 읽었다. 그러니까 3일~4일 정도면 한 권을 모두 정독으로 읽을 수 있었다. 1년에 250일 정도를 다녔으니까 계산을 해보면, 넉넉하게 잡아서 1년에 60권 정도를 읽은셈이다. 정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건 그때 읽었었던 수십~수백권의 책들이 이후 정말 큰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책의 어떤 문장, 어떤 내용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중요한건 인생에서의 선택이고 아는게 많아지면서 보이는 것도 달라지고, 보이는게 달라지면 생각하는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들어 당신 주변에 공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 당신도 공부를 안 할 확률이 높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때, 주변 환경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건 정말 어렵고 고된 일이다. 모두가 공부를 하지 않을 때 혼자 도서관을 다니는 일은, 마치 나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인간실격>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이야기한 자격없는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이제 나는 주변인들과 어울릴 수 없고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알 수 없다. 떼어낸 피자조각처럼 나는 툭!하고 떨어져 나와 홀로 남은 것이다. 그래서 성장이라고 하는것은 외롭고, 고독하다.


내가 도서관을 짧은 기간이지만 집중적으로 다니면서 깨달은 것들 중 가장 중요한게 하나 있다. 어떤 것을 집중적으로 미친듯이 파고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무엇이든 관계없다. 그게 공부든 자격증이든 심지어 인생의 방향이든 어디에도 통용된다. 나는 똑같은 방식으로 취직에도 성공했었고(과거형이다), 파워블로거가 됐고 책 3권을 쓴 작가도 됐다. 종류는 다르지만 그 중심을 관통하는 방식은 단 하나다. 원하는게 있으면 제대로된 방법으로 미친듯이 해서 결국에는 쟁취하는 것. 그리고 남들이 안한다고해서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 공부의 가치, 공부의 중요성. 그리고 노력의 가치. 무엇보다 원하는걸 얻으려면 그만한걸 포기해야한다는점을 배웠다. 나는 달콤한 잠과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 대신 딱딱한 의자와 지루한 책을 선택했다.


나는 대학생 때만해도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런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서른이 한참 넘은 내 친구는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나는 프리랜서로 나름 자리잡았다. 내가 대단한 천재여서가 아니다. 나는 내가 도서관에서 깨달은점을 삶에 계속 적용해서 거기에 맞는 노력을 기울였고 내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신문지를 50번 접으면 달까지 닿는다고 한다. 아주 사소한 차이라도 그게 쌓이고 쌓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미 벌어진 차이를 좁히는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보통은 그전에 포기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도서관에 다닐 때 너무 심심해서 그 친구에게 같이 도서관에 다니자고 제안한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재미없다며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고 나는 재미없어도 계속 다녔다. 차이는 여기에서부터다.


이기는건 습관이다. 패배도 그렇지만 승리하는 방식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도 능률을 낼 수 있다. 깊이있게 공부하는 노력, 그리고 시간 투자, 미친듯이 파고드는 집중력만 있다면 세상에 못 할 일도 없다. 이건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이런 자신감은 더 많은 능률을 내며, 그 능률은 또 더 높은 자신감을 낳는다. 


대학생때 버스타고 도서관을 다니던 나와 지금의 나는 외모도 그렇지만 생각하는 방식과 시야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오늘 우연하게 그 도서관에 다시 가게됐다. 도서관은 변함없이 그대로였고 거울 속의 나는 좋은 의미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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