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이윤실 역, 문학동네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은 14편의 단편이 실린, 라오스계 캐나다 시인, 소설가 수반캄 탐마봉사의 첫 번째 단편집이다. 2020년에 발간되어 캐나다권에서 여러 수상을 한 경력이 있다. 그녀는 1978년 태국의 라오스 난민촌에서 태어나 1살에 가족과 이주를 하게 되는데, 캐나다에 후원자가 있었던 것 같다. 이후 토론토에서 자라며 영문학을 공부했고, 따로 문창과 수업은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뭐랄까? 나는 이 단편집을 90년대에 읽었다면, 이 내용들을 재미교포 같은 우리나라 이민자를 가정한 감정이입으로 읽었을 것 같은데, 지금 책을 다 읽고 난 생각은, 이제 우리나라로 이민을 온 몽골이나 조선족, 베트남, 필리핀 등의 이민자 2세, 3세들이 소설을 쓴다면 바로 이 내용과 같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210페이지 분량에 14편의 단편이니 하나의 단편당 14-5페이지 분량으로 굉장히 짧다. 그래서 이야기가 간결하고 인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녀의 단편들은 80년대 우리네 리얼리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할 만큼, 1세대 라오스 이민자들의 각박한 궁핍한 삶을 묘사하는 부분도 있고,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지닌 사람들을 문학적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를테면 캐나다 여성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라오스 이민자의 자의식과 자신의 뿌리라고 할만한 동류 사람들에 대한 성정을 현대 영어 단편 소설의 기법으로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뭐랄까 현재 영문학의 대세인 페미니즘이나 성정체성같이 다소 의도적이거나 편리한 소재를 쓰기보다는, 자신이 읽었던 영문학 단편의 대가들을 떠올리면서 문학적 형상화에 더 적극적인 그런 느낌. 그래서 큰 저항감 없이 술술 읽히며 바로 독자의 감정을 공략하는 식의 고전적인 단편 작법을 보여준다.
카슨 매컬러스나 레이먼드 카버의 쓸쓸함을 연상케 하는 <슬링샷>의 담백하고도 놀라운 문체와 캐릭터성, <매니 패디>의 경우 초반부 서술은 헤밍웨이를 떠올리게 만들며, <랜디 트래비스>는 높은 완성도로 뛰어난 캐릭터 형상화에 성공한 느낌이다. <우주가 이토록 잔인할 줄이야>에서는 O. 헨리식 유머가 돋보인다.
<치-카-치>,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파리>, <으으으어어얼끄>, <저 멀리 있는 것>, 그리고 <지렁이 잡기>까지는 1세대 라오스계 이민자들이 겪는 소외와 궁핍한 감정 그리고, 저소득 노동 위주의 삶과 고용인에 대한 역설적인 감정 및 누추한 생활 속에서도 특유의 쾌활한 민족성을 보여주며 익살과 해악을 버무리고 있어서, 그래서 뭔가 특별한 성정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웃음을 짓게 한다면,
<스쿨버스 기사>, <주유소>에서는 모던한 기법을 사용해, 독자로 하여금 강렬한 감정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을 보여주며 그 상황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들이 겪는 인간 조건이야 지금의 우리가 겪는 바와 거의 동일하지만 라오어를 사용하는 라오스인이 등장한다는 특이점은 그 상황을 한층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이국적인 느낌과는 다르다. 그저 맞아 이런 사람들도 여기에 살고 있구나! 같은 소소한 발견들.
짧다는 이유로 단편집을 읽어 내려갔는데, 뭐랄까 의외로 맘을 두드리는 장면들과 인물들이 등장해서 잠시 관조적인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인 듯하다. 전반적으로 안정감 있으며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어서 그녀의 다른 책들이 번역된다면 읽어보고 싶을 것 같다.
또 하나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다소 긴 이름 Souvankham Thammavongsa를 그 이름 그대로, 영어식으로 바꾸지 않은 채, 사용한다는 점에서 라오스 출신 작가라는 점을 떳떳하게 보여준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라도 남다른 기백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