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시니스트 또는 메카닉 트레버를 위한 발라드

<머시니스트>, 2005년 영화를 모티브로

by 사장님의 세계문학

너는 멀리 왔다 걸어서 허기를 달래며

무작정 달렸다 자신을 쫓아 너에게 쫓겨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누릴 파이 한 조각의 꿈같은 휴식은

없다 시곗바늘이 한 시 반을 가리키면

왜곡된 거울에 죽은 이의 얼굴이 비친다

냉장고 문에 붙은 포스트잇 낙서가 하나씩 늘어간다

시작되는 불면증 또는

망자를 위한 원치 않는 발라드


짧은 깜박임의 순간마저 네게서 잠을 빼앗아 간다

이대로 밝으면 절대 잠들 수 없는 너와 너의 담배연기는 떨어뜨린 책과 함께

흩어진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짧았던 기시감의 달콤함에 눈을 뜨지만 철컥

시가 라이터가 빠져나오는 차 안에서 너와 너의 담배 연기는 일터로 향한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찾으면 무슨 말부터 시작할까

그녀를 위해서

그녀의 꿈과 죽은 아이와 아이를 위한 작은 자장가를 위해서


시작되었다 방금 전 깨진 유리조각들과 함께

숟가락은 구부러지고 접힌 종이들이 말끔히 펴지며

낙서가 살아 움직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들이 살아 있어 더는 외롭지 않으리

이제 엔진을 켜라 폰타악 파이어버드

브레이크 아래를 발등으로 괴고 속력을 내라

내 동맥 속에 피 대신 휘발유를

내 눈꺼풀 안에 윤활유 대신 샌드맨의 모래를 뿌려다오


너는 고요한 찬장 속에 담긴

회전목마와 마네킹, 케첩으로 완성된 스크램블 접시와 함께

고양이처럼 잠이 들었다 편안하고 고요한 잠을

고속도로는 질투하며 질주한다 오직 너 만이

유일하게 잠들지 못하는 세입자가 되어

적막한 건물의 복도를 질투할 권리가 있으니

너를 깨우는 형광등 불빛과 정전과 새어 나오는 한 숨소리를 질투해라

너의 밤은 절대 젖지 않으리

머큐리크롬, 거즈와 일회용 반창고, 그리고 부목을 가져다오


용접 부위가 끊어진 기계더미 앞으로 수리 명령이 내려왔다

너의 입은 지퍼로 잠기고

혼자만의 유희가 시작되려 하니

이제 눈을 감아라 나트륨등이 켜지고 사자들이 잠든 사이

너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


아, 우산을

내려다오

불면증을 받쳐 놓을 젖지 않을 충분히 튼튼한 우산살을 가진

쏟아지는 빛의 바늘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우산을 내려다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너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