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로드, <작업실의 자코메티>
1962년, 제임스 로드라는 작가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모델이 되어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제임스 로드는 자코메티에 관한 많은 저술을 했고 일부는 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다
이전부터 존경했던 작가 자코메티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기회를 가진 그는 그날그날 작업 중인 그림을 사진 찍을 수 있게끔 허락을 받고 중간중간 자코메티와의 대화도 틈틈이 메모해 놓았다
이런 기록은 나중에 지인에게 쓸 편지에 사용할 글감이었지만 후에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다
이 생생한 기록 속에서 만나게 된 자코메티는 유일무이 한 형상의 진실의 재현을 의도하지만, 결국은 실패로 끝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실패하였는지 그려봄으로 밖에는 확인할 수 없는, 현대적 시시포스의 과업에 운명을 맡기는, 전형적으로 보이나 확고한 가치관의 예술가로 떠오른다
일단 형태를 찾아가기까지만 시도하고 모델의 내면까지 묘사하는 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 하면서 얼굴 전체를 형상화하는 것, 하지만 작업에 돌입하면 예술가가 품었던 이상과 그림이라는 실제가 얼마나 거리가 먼지, 이 고단한 실제적인 과업 역시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 마치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지만 시작한 이상 그 과정을 밀고 나가야 하는 실존적인 자세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의 진실을 추구하는 반복되는 과정과
시도한 후 무너뜨리고 다시 그리고 또 뭉개는 작업의 연속들
그 끝을 알 수 있는 사람도 예술가 자신은 절대 아니다
나는 자코메티의 가느다란 조각이나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이 책은 순전히 제목이 그럴듯해서 집은 책이고 작업실의 하루하루는 어제나 그제와 비슷하고 그가 살아 있었던 기간의 대부분이제임스 로드의 책에 보인 바와 대동소이할 것이다
때문에 자코매티의 대화들은 다분히 베케트 적이며 실제 베케트 희곡의 주인공이 되어 독백을 한다면 자코메티처럼 할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고 20세기를 관통하는 사조는 역시 실존주의라는 생각이 든다
자코메티가 하는 피카소나 기타 대가들에 대한 촌평을 듣고 있으면 짜릿한 쾌감이 있다
전반적으로 청교도적 엄격함과 교양을 지닌 인터뷰이의 세심한 노력이 엿보이는 흥미로운 책이다
과연 회화 또는 초상 그림이 이런 정도의 강도의 엄격함을 화가에게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프로이트와 베이컨 이전에 자코메티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 혹시나 자코메티 작품을 보면 그가 작업하는도중에 붙을 놓고 혹은 작업을 쉬며, 카페에 앉아 무언갈 먹으면서도 공허하게 쳐다보았던 그 시선들과 침묵들을 상상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보일 것 같단 희망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