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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실남실 Apr 02. 2024

맡겨놓은 감동?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의 단편 <맡겨진 소녀>를 읽다가 3장에서 뭔가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인 것은 맞는데 다시 읽으면서도 결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세부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


그래서 다시 읽기로 했다.

그리고 결론은, 아 그랬었지, 그럴 수 있겠네, 였다


10세 정도 되는 소녀가 만삭인 엄마 곁을 잠시 떠나 친척집에서 잠시 “맡겨진 소녀”가 되고,

이 단편은 소녀가 아빠와 함께 친척네로 갔다가 다시 친척에 의해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끝난다.


작가는 적은 정보만 줄 뿐이다. 아빠 댄이 카드게임으로 자기 농장의 소를 잃어버렸고, 또 친척네에선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녀는 자세히 알지 못하고, 형편이 어려워졌지만 왜 곧 태어날 막내를 제외한 4명 아이중 유독 자신이 맡겨질 아이로 결정된 것인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도 않고, 그냥 설명이 없이 불분명하게 진행된다. 어느날 갑자기 그런 맡겨진 소녀가 된 것.


하지만 그 친척집에서 예상밖의 환대를 받게 되고, 여러 가지 기억에 남을 유대감을 경험한 소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빠의 싸늘한 혹은 생각 없는 발언들에 친척이 꽤나 상처받았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게 마무리된다.


뭔가 원래의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과 교감들이 친척네에선 당연히 발견되고, 그 따뜻함을 그리워하며

이 소녀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내레이션 하는, 회고조의 느낌으로 작가는 소설을 기술하고 있다.


문체는 굉장히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서술되지 않은 것들을 독자로 하여금 다음 문단이나 다음 장에서 은근히 알아내게끔 배치했다.


평범한 시골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가 될 뒷말들을 나이 어린 소녀에게 서슴없이 말하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친척은 그저 침묵하는 편을 택한다.

그리고 그러한 교감들은 작가가 유난히 아름답게 그려낸 해변가 장면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수작임은 틀림없지만

이런 정도 묘사와 여운이 있는 결말들이 그리 새로운 수준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힘든 시절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겪은 짧았지만 행복했던 경험들, 지극히 한국의 7-80년대 소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거친 심성들과 얄궂은 우연들, 비슷비슷한 가족사의 비극들, 표현하는 방법에 익숙지 못한 부모 세대들의 철없는 행동들 뭐 그런 것들의 기시감이 그렇게 유별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 소녀는 세상에 대해 작은 뭔가를 얻게 되고 그것이 발견되는 장소가 집이 아니라는 점이,

‘맡겨진 소녀‘의 가장 크고 유일한 미덕이며 성장 요소라고 생각은 되는데, 그런 소소한 느낌들과 감정들을 잘 포착해 냈을 뿐이다.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


클레어 키건을 읽고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꽤 만족할만한 소설을 쓰는 역시 아일랜드 작가인 윌리엄 트레버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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