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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Mar 10. 2019

도시에서의 사랑이 자살행위라도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짙은 블루>

 죽은 사람을 대하는 데 익숙해진 간호사 미카는 어느 날 한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신지와 마주친다. 두 사람이 사는 도쿄엔 주변인들의 죽음과, 지진으로 인해 피부처럼 들러붙은 불안과 초조한 심리가 공기처럼 부유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에 관한 호감을 드러내며 가까워지지만 의도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관계는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두 사람 사이. 그럼에도 미카와 신지는 서로의 결핍과 불안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멜로 영화의 탈을 쓰고 있지만,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짙은 블루>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도쿄라는 도시라 말할 수밖에 없다. 신지와 미카가 펼치는 연애담은 도쿄란 공간을 원으로 삼고, 끊임없이 서로를 쫓고 밀어내면서 결국 겹쳐질 수 없는 운명으로 향하는 일종의 술래잡기다.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 장소에 사랑을 기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필 왜 도쿄인가. 그건 이곳이 죽음으로부터의 불안과 노동에서 온 피로가 일상이 돼버린 지 오래이며, 일과 향락 사이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자포자기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짙은 블루>는 어쩌면 멜로 영화라기 보단 대지진 이후 사람들 마음에 자리 잡은 심적인 불안과, 늦춰진 마음의 속도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도쿄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살기 위해선 떠나야 하지만, 서로를 괴롭히고 다시 보듬는 행위에 취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이 어쩌면 도쿄 일지 모른다.

 이 영화는 사랑의 완성을 목표로 삼은 게 아니라 반대로 사랑이란 감정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영화다. 인물들 간의 문자나 말들로 사랑을 선언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영화는 사랑이 말로 내뱉어지는 순간 그 사랑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확고한 태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사랑을 부정하더라도 연애가 일상을 파고들어 서로를 괴롭히고 최면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감정의 잉여라는 사실만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도쿄의 밤은 항상 짙은 블루>가 택한 사랑에 관한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우리에게 예정돼있는 이별이라면, 차라리 사랑이란 선언 자체를 미루고 이별에 도착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 치며 서로의 주변을 배회하는 점 역시 사랑의 실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시이 유야가 도쿄에서의 사랑을 말하는 방식이다. 반쪽 눈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법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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