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을 좋아한다. 왜 바람이 불어오는 서늘한 계절들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아직 내 안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줘서라고 답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따뜻한 사람이고 싶지, 뜨거운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물론 누구에게나 따뜻한 사람일 수는 없겠지만.
답답한 기분이 들 때면 집 앞 공원에 나가 정처 없이 한두 시간을 떠돌기도 한다. 바람을 거스르며 나아가는 그 기분이 너무나도 좋다. 내게 주어진 운명에 역행하는 느낌이랄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추위는 어느새 시원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걷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고 곧 그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은 기분으로 걸으러 왔을까. 그들의 어깨와 발걸음에는 어느 정도의 무게가 실려있을까.
삶을 잘 버티기 위해서는, 두가지 정도의 사람이 필요하다. 밀어주는 사람과 믿어주는 사람. 밀어주는 사람은 내 곁에서 자주 발견되는 사람이다. 이들은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서 나를 돕는다. 믿어주는 사람은 지금 당장은 내 곁에 존재하지 않지만, 이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정신적 버팀목이 되는 사람들이다.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을 모두 가졌다면, 당신은 선택의 기로 앞이나 넘어짐에 대해서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각자에게 있어 그 두 사람을 확신하기 전에 대부분 어른이 되고 만다. 여기서 어른은, 단순히 연령에 근거한 법적 성인을 의미한다. 진정한 의미의 어른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누가 구구절절 풀이해줄 수 있는 개념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해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답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예전에는 어른이 불연속적 개념인 줄 알았다. 그냥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어른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났는데도, 난 스스로가 아직 어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어른은 한 단계씩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연속적인 개념이었나 보다.
확신은 없지만, 어른들이 느끼고 보는 세상에 대한 실마리는 어느 정도 잡아나가는 것 같다. 어른들은 수많은 책임을 지고 산다. 성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얻지만, 우리에게 허락되는 자유의 크기는 내가 책임질 수 있을 정도까지다. 이 크기를 어림잡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내 그릇의 크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담아내는 것보다는 모자란 그릇의 크기를 키우기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삶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결국은 이유를 찾아야 한다. 내가 어른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열심히 살아서 어른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이유들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그래서 어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