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속 개구리

A frog in depression

by 나무섬

하나의 상처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면, 두 개의 극복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하나는 아파본 경험, 다른 하나는 견뎌낸 경험

이용현 [울지 마 당신] 中


끝을 알 수 없는 우울에 빠진 적 있었다. 이 우울이라는 녀석은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오긴 했지만 이번에 찾아온 녀석은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마치 물속에 잠기는 것처럼, 잠기면 잠길수록 희망이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모든 것이 내 의지와는 반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무능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렇게 자기혐오에 빠져 살던 도중 서랍에서 한 종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종이의 정체는 바로 중학교 시절에 받았던 롤링페이퍼였고, 난 그것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행복해. 고등학교 가서도 잘 지내. 지금은 단 한 명도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들의 시시콜콜한 한마디들. 그 중에서도 ‘네가 참 부러웠어’로 끝나는 한 마디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소심한 성격에 나서는 걸 싫어하고, 사람 눈을 마주하고 3초 이상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런 아이였다. 그런 나를 책도 많이 읽어서 아는 것도 많고, 생각이 깊어서 부럽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적혀있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만 했지, 나 스스로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 열등감은 알고 있었을까. 나도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음을.

중학교 시절 친구와 짝지어 멘토-멘티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단순히 아는 것보다 10배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깨우쳤던 시간이었다. 나는 성심성의껏 친구를 가르쳤고, 친구는 처음엔 썩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올라가는 성적에 적당히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덕분에 수업시간이 재미있어졌다는 류의 말들은, 내 보잘것없던 학교생활의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나는 친구의 성적 향상을 도왔고, 친구는 내 자존감 향상을 것을 도왔다. 그때 처음으로 멘토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 같다.

논어에서는 삼인행필유아사언(三人行必有我師焉)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스승임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 있다. 다만 어떤 멘토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만큼의 울림을 줄 것인가. 어떻게 번져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로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없다.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번을 넘어짐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게 쓰러지는 법과 균형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도 현실의 어려움에 걸려 자주 넘어진다. 결국 삶도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여러 번을 굴러 떨어져야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언젠가 나를 멘토 삼아 자전거 타기를 배우게 될 멘티들의 조금 뒤에 서서, 더 잘 넘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

결국 나는 이 우울의 근원이 되는 열등감에서도 무언가를 배운다. 이용하되, 이용당하지 말 것. 열등감을 대하는 최고의 자세다. 내게 열등감을 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가볍게 웃어넘기고 그를 스승으로 삼기로 하자. 어느 부분에서는 또 내가 스승이 될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이처럼 서로가 울림이 되어 멀리 울려 퍼진다. 난 스스로가 커다란 종이 되어, 언젠가 마주칠 세상의 끝까지, 그렇게 청명하게 퍼져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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