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아빠라는 큰 울타리
15장. 아빠라는 큰 울타리
나는 큰누나와 11살 차이가 나고 작은누나와 9살 차이가 난다. 사랑을 많이 받아온 막내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 누나들의 질투를 받았다. 아빠는 무서웠고 엄격하셨다. 누나들은 통금과 다른 규칙들로 통제받았고 누나들보다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막내와 남자로서 혜택을 받은 나는 내심 기뻐하며 좋아했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을 누나에게 뺏기면 기분이 나빴다.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왔지만 사랑 속에 보호가 있었다. 가족들의 보호가 있었지만 특히 아빠의 통제가 크게 작용했다. 어렸을 때 아빠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알바하지 말고 공부해라. 좋은 대학 가라.
안정적인 공무원 해라. 예술은 돈이 안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알바를 했지만, 아빠는 나를 크게 혼내셨다. 고등학생일 때 용돈을 조금 받아 돈이 부족했다. 성인이 되어 돈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알바를 시작했던 것인데 억울했다. 아빠는 알바하는 걸 못마땅하셨다. 20살이 된 나를 알바할 시간에 공부나 더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빠가 무서웠던 나는 반항을 못하고 알바를 그만뒀다.
고3 졸업하고 알바하다가 삼육대학교에 입학할 생각이었지만 아빠는 재수를 권하셨다. 재수 후에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입학한 나를 아빠는 여전히 좋게 봐주지 못하셨다. 나 역시 신입생 때 대학교에 애착을 갖지 못해 내 모교가 부끄러웠다.
아빠는 건설업 감리회사에서 감리 업무를 하신다. 과거 IMF 시절 직장을 잃어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보내셨다. 감리 업무 특성상 공무원을 만나는 일이 많은데 공무원의 갑질에 상처도 많이 받으셨다. 힘들게 살아오셔서 자식들은 자신과는 다르게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셨다. 안정적인 공무원을 강요에 가까운 권유하셨다.
아빠는 예술은 배고픈 직업이며 돈이 안 된다고 하셨다. 나 또한 예술의 길은 힘들고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예술 분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알바 못한 걸 대신하여 20살이 되어서도 아빠는 매달 용돈을 주셨다. 크지는 않지만 딱 먹고 살 정도였다. 이 돈으로 연애하기에는 모자랐다.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내가 제일 먼저 했던 건 아빠가 하지 말라는 알바와 디자인이다.
<<알바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내 대학교에 만족한다.
공무원은 나와 맞지 않다. 예술은 돈이 될 수 있다.>>
내가 대학 동아리 스쿼시 회장을 맡았을 때 인수인계를 해준 전임 회장은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였다. 그 후배는 알바하면서 대학 생활하는데 성격도 좋고 동아리 회장까지 맡는 책임감 있는 동생이었다. 얼굴에 구김 없이 캠퍼스 커플로 지내고 있는 게 부러웠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지원하는데, 자기소개서에 쓸 알바 경험이 없었고 면접에서도 알바 경험이 없다는 것에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나 스스로를 책임지는 일을 못 해본 건 아쉬운 일이라 느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귀인이었던 누나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나의 성향상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지 않았다. 내 생각과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수 있는 예술인이 되어보고 싶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연희동에서 자취를 시작한 첫 목표는 스스로 돈 벌고 나를 책임지는 것이었다.
아빠가 만든 울타리는 나를 보호했지만, 이제는 성장시키는 데 걸림돌이 됐다.
이제는 그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