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준 Sep 24. 2019

명문대 나온 사람 중
악인이 많은 이유

존엄하게 산다는 것


정보의 시대,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지식이 쏟아지고,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새로이 발견되는 사실들, 우리 삶에 중요한 모든 정보를 이토록 효율적으로 전 세계에 공유하는 정보 시스템이 존재했던 적도 없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도 물론 없었다. 하지만 모든 정보와 뉴스, 새로운 가치관 등은 수신자의 마음을 움직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전 세계로 전파된다고 한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넘치는 정보들 속에 파묻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보가 아니라 한낱 잡담이나 가십에 불과하다.




먹거리는 넘쳐나는데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우리가 수많은 정보를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주식과 부동산과 은행 브로커들이 자신들의 배를 불릴 목적으로 많은 사람을 이용하고 있으며, 대규모 식품업체들이 수익성을 높이는 데에 혈안이 되어 지구 환경과 농·축산업에 가져올 영향 따위는 개의치 않으며, 더 나아가 이런 식으로 생산된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는 것도 말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마음이 움직이기는 참 어렵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들도 수없이 구매했고, 가끔 분노하기는 해도 그뿐, 지금껏 살아온 방식 그대로 살고 있었다. 몇 년 전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에르빈 바겐호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뒤, 나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돈을 법시다>(2008)*와 <먹을거리의 위기>(2005)** 라는 다큐멘터리였다. 사실 이미 알고 있거나, 최소 예상이라도 하고 있던 일들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나는 확신을 얻었다. 금융업계와 전 세계적인 식품 대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돈을 법시다> / <먹을거리의 위기>

*세계 금융시장을 추적하며 자본주의 이면의 탐욕을 그려낸 르포르타주. 인도에서 오스트리아까지, 부르키나파소에서 워싱턴 D.C.까지 돈의 궤적을 쫓으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집약된 자본이 약소국으로 흘러들어가 세금을 피하거나 공공시설을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남기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의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UN의 식량권 특별 서기관 장 지글러와의 인터뷰를 통해 충격적인 세계 기아와 식량 생산의 부조리함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인구의 4분의 1이 기아에 허덕이는 동안, 35만 헥타르의 농지에서 오스트리아의 가축을 먹일 콩이 재배되는 현실을 충격적인 이미지로 제시한다.


엘리트들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적나라한 악행에 경악했기 때문일까? 정말로 내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이토록 사악한 금융 시스템을 고안해내고, 전 세계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식품 대기업을 설립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교양 있는 사람들이다. 최고의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명망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이들. 이들은 곳곳에서 승승장구하기를 거듭해 마침내 책임자의 자리에 앉았고,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만행들을 순순히, 그것도 강한 확신과 엄청난 동기부여를 가지고 추진해나갔다.




이들은 타인을 희생시켜 제 배를 불리고, 수익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 그것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흔들고, 며칠 밤을 지새우게 만든 것은 이들이 바로 우리가 이상적인 교육 환경이라고 표현하는 곳에서 성장한 엘리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교육이 스스로의 존엄함에 대한 인식조차 심어주지 못했음을 이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소위 엘리트 학교, 일류 대학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이들이 경험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아니었다. 이들은 그저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타인을 넘어 다른 모든 생명체를 대상화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영리한 지식과 능력을 습득했을 뿐이다.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오늘날 우리의 교육기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우수한’ 졸업생 들일 것이다. 이 깨달음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이 글은 <존엄하게 산다는 것>에서 발췌했습니다.


도서 보러 가기

http://bit.ly/2lae26R

매거진의 이전글 자식을 죽이는 부모 유형 vs 자식을 살리는 부모 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