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다잠든 나무 Jul 19. 2024

편견은 당황하게 한다

편견의 의미   

대학원 시절에 그리 큰 체구도 아닌 남자 선생님 한 분은 늘 학교에 올 때 아기 바구니를 들고 온다. 


그 안엔 백일 갓 지난 여자 아기가 있다. 때론 눈을 말똥거리기도 하고 때론 깽깽 울어 강의실을 당황하게도 한다. 아기는 혼자서도 잘 논다. 바구니 넘어  강의실 구석에서 대학원 수업을 잘 듣기도 한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 가서도 한쪽 모퉁이에서 혼자 바쁘게 기어 다니며 잘 놀았다. 때론 술자리 어느 한쪽에도 끼어 있다. 술자리 구석에서 어른들의 음주문화 사이를 오가며 흥분된 돌봄을 누리기도 했다. 


부부가 모두 같은 직장인이었던 아이 부모는 결단해야 했다. 둘 중 어느 한 사람은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이다. 결심했다. 직장에서 일을 더 좋아하고 잘하는 부인이 직장 생활하기로 했다. 그렇게 합의된 아이 육아는 남편 몫이었다. 남편은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하고 싶었던 공부로 석박사 과정을 만끽하며 육아를 담당했다.  신나게 대학원 생활에 젖어 잦은 식사 자리와 가끔 술자리도 맘 편히 참석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독일에서 공부 마치고 따끈따끈한 지식으로 장착한 젊은 교수가 부임했다. 함께 원생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새 신임 교수는 경악했다. 천연덕스럽게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돌려가며 놀고 있는 돌도 되지 않은 아기를 발견한 것이다. 보수적  독일 유학파 교수 눈에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어떻게 아기를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키우고 있단 말인가'  쇼킹 그 자체였다. 그래도 어쩌랴 그렇게 자라야만 하는 운명인 것을.


그 후 그 젊은 교수는 한국을 이끌 차세대 젊은 지식인으로 언론사 인터뷰에 자주 불려 나갔다. 그중 국내 5대 일간 중 하나인 어느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 끝에 "대학원 학생이 아기를 교실에 풀어놓고 강의를 듣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의 아기 육아 환경이 걱정된다"라고 소회 하였다.


그때 인터뷰하던 신문기자가 말했다.

 "그 아이 여자 아이 이던가요?"

"네"

"내가 그 아이 엄마입니다".

"......."

"......."


신문기자인 아이 엄마는 남편의 학교에 부임한 명망 좋은 신임 교수 인터뷰라서 관심 있어 본인이 자처했던 것이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그 젊은 교수는 순간 당황하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오래전 강의실에서, 회식자리에서, 술자리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손에서 해맑게 웃으며, 깽깽 울며 자란 그 아이는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변리사가 되어있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상식 밖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편견을 갖기 쉽다. 정작 그들은 불편함 1도 없고 행복하다. 다만 편견에 싸인 본인만 힘들 뿐이다. 


 "It is never too late to give up our prejudices" 

오늘의 한 줄에 대한 생각이다. 


"It is never too late to give up our prejudices". 

편견을 버리는 데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월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