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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Nov 21. 2017

채근담 차인024, 더러움에서 나오고 어둠에서 생겨나는

굼벵이는 지극히 더럽지만 변해서 매미가 되어 가을바람에 이슬을 마시고

채근담-前集_024. 더러움에서 나오고 어둠에서 생겨나는 깨끗함과 밝음


굼벵이는 지극히 더럽지만 변해서 매미가 되어 

가을바람에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지만 모양이 바뀌어 반딧불이가 되어 

여름 달밤에 빛을 낸다.


진실로 깨끗한 것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은 것은 언제나 어둠에서 생겨남을 알 수 있다.


糞蟲至穢變爲蟬 而飮露於秋風,

분충지예변위선  이음로어추풍,

腐草無光化爲螢 而耀采於夏月.

부초무광화위형 이요채어하월.

固知潔常自汚出

고지결상자오출

明每從晦生也.

명매종회생야.

024.汚出晦生

024.오출회생


 [차인 생각]

살아가는 일이 그렇다. 아무리 초심으로 낮은 겸허함을 지키려 하지만 때로는 주체하지 못하는 사이 저만치 다른 곳에 가 있게 된다. 다시 추슬러 되돌리는 게 순리다. 빠르고 정확하게 제자리를 찾는다. 너무 멀리 나가 있다 보면 되돌릴 곳을 놓친다.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딛고 선 자리를 확인한다. 하나를 지키려 또 새로운 하나를 만들지 않는다. 지금 여기서의 마음에 무게를 둔다. 얻어진 것은 털어내야 한다. 쌓이는 순간 적층의 인위적 기교가 나를 지배하려 든다. 그래서인지 내가 마시는 차는 반발효 차인 한국인의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하는 황차에 머물러 있다. 혹여 이게 나를 주도할지 몰라 다른 차도 겸비하여 즐기지만, 기본에 충실하다. 황차로 시작해서 황차로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마음의 시작을 황차의 시간으로 채우고, 하루의 마감을 황차로 던다. 좋은 차가 넘친다. 중국차와 홍차의 세계도 현란하다. 경계하고 외면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서 있는 자리를 황차로 여기기로 한다. 내가 직접 찻잎을 구입하여 집에서 만든 황차의 세계는 나의 노동이 가미되어 있다. 굼벵이의 더러움에서 가을바람에 이슬을 머금는 깨끗함이 비롯되고, 부패한 풀섶의 어둠에서 여름 달밤의 반딧불이의 밝음이 생겨난다. 노동이 그렇고 차 마시는 행위가 그러하다. 내가 조금 움직여 생각과 몸을 살피는 일이 고맙다. 살다가 이렇게 혼탁한 시절을 만난 적이 있었을까. 분명히 더 큰 깨끗함과 밝음이 예비되어 있을 것이다.


2016년 12월 07일. 온형근(시인, 캘리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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