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형근 Dec 21. 2017

언 땅에 노천매장

두 자 이상 얼음덩어리를 깨고 묻다

머뭇대다 시기를 놓쳤다.

고상한 생각으로 우아한 작업을 기대하느라 밀린 게 아니다.

차일피일 자그마한 일이 누적되고 있었다.

어쩌면 해야 할 일을 후배에게 전수하고 싶어서였다. 기회를 만들지 못했으니 허당이다. 내 일과 그들의 일을 동시에 배려하고 있던 탓이다.


궁극에 이르러서야 나서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본의 아니게 가장 난관에 봉착한 상태를 즐기고 있었다. 작업환경은 내가 구축하는 것이다. 굴삭기를 사용해야 했다. 후배에게 전화하니 바쁘다고 다른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해서 성립된 작업환겅은 시작부터 오롯한 야전이었다.

독감은 나갔지만 여전히 오랜 시간 야전에 노출되는 동안 으스스 춥다.


미리 준비해 둔 화분 바닥에 배수망을 잘라 깔고 굵은 마사토를 한주먹 두께로 얹었다.

가장 많은 고욤나무 종자부터 작업했다. 이어서 말채나무, 가래나무, 으름나무, 포포나무, 꽃개오동, 돌배나무를 작업했다.


문제는 땅파기이다. 대체 얼음덩어리가 깨지질 않는다. 우직하게 울릉도 호박엿 자르듯 한쪽만 깨지면 자락자락 깨면서 공략하고자 했다. 난공불락이다. 그래도 다른 방식으르 적용하는 것은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기에 처음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우직함으로 일관했다. 긁히면서 밀리면서 두들기다 얼음 밑 맨땅과 만났다. 이제부터 일사천리라 여겼는데 여전히 확장이 어렵다.


시간과 뚝심이 만났으니 다시 독감이 들어올 법 하다. 구덩이 크기에 도달하고, 굴삭기 작업을 정지 한 후에야 삽으로 작업했다. 구덩이 깊이를 정한 후 삽으로 흙을 고르게 채웠다. 그런 연후에야 씨앗이 담긴 화분을 배치하여 놓고 나머지 곱게 깨진 흙을 골라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해의 일을 마감하였다.

해토되어 끄집어 낼 때까지 동토에서 얼었다 녹았다 힘든 변온의 시간으르 견뎌야 한다.


견뎌야 하는 겨울의 시작이다.

내게서 따난 것들이지만 숙성되면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긴 여행처럼 나무 종자의 겨울잠도 어둔 땅속에서 변온의 찌릿찌릿한 전류를 참아내고 다시 만나리라.


그날은 벅차고 분주하여 여기저기 쑤시고 아플테다.

매년 그러했다. 미리 관절이라도 풀어두어야 하는데, 마음만 늘 앞선다.

땅속 깉은 곳에서 어둠을 먹고 살 에듯 추웠다가 봄바람 일렁이듯 포근했다가 오락가락을 일삼는 속내를 애써 감추고 어찌되었든 겨울을 살아낼 게다.

그래서 노천매장의 차고 엄정한 세계를 지켜낸다.

한 해를 마감함이 그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