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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형근 Jan 13. 2018

녹차의 기다림

구증구포의. 내공

구증구포 녹차는 내공으로 둘둘 쌓여 말려있다. 녹차는 거친 향으로 가득 들어찬 입안을 드려내는 일이다. 삼 년된 구증구포 녹차를 만난다. 개운함을 찾는 게 호사스러움이다. 녹차와 눈 내리는 겨울 아침처럼 어울리는 정경은 없다.  서로 이끌리듯 밀고 열고 닿는다.

식후 연초가 멀리 떠났다. 추운 자작나무의 근황이 궁금하다고 했다. 굳이 말릴 이유 또한 명분으로 부족하다. 기꺼이 떠나보낸다. 아마 러시아의 산림으로 흘러갔을 게다. 다시는 해후할 일이 없겠다.

그와의 결별 이후, 변화는 없다. 시간이라는 게 호흡처럼 들락대는데 굳이 떠올려 추모할 일은 아니었다. 깊게 숨 쉬면서 존재를 무화시켰다. 마치 애초에 만난 적 없었던 것으로 치환한다. 그 사이 궁금한 입안의 풍경을 고뿔차와 홍차, 녹차, 보이생차, 보이숙차, 우롱차 등으로 달랬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수더분하게...

초칠일인 첫재가 지나 이칠일인 이재에 왔다. 흡연의 관습이 오고감 없이 여기까지 이르렀기에 다가감 없이 그리로 돌아갔다고 여긴다. 해서 묵은 차를 끄집어 우려내는 그윽한 행위에 손뼉을 쳐서 쾌재를 부른다. 대신 내 안에 자작나무 숲을 만든다. 작은 묘목을 심어 가꾸면서 기어코 숲이 되게끔 , 나무에서 숲으로의 환생을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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