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형근 Jun 17. 2018

꼬마일 적에 품었던 생각 하나

사무치고 절절했던 기원 하나

초등학교 때 자유교양대회에

나가기 위해 주어진 책을 읽었다. 5학년 쯤이었을테다. 그리스 로마 신화, 삼국유사 등등, 작은 책의 하얀 소프트 커버의 전집류였다. 돌려가며 읽었다. 점검 받고, 또 읽곤 했다. 내 책이 아니라 돌려 읽어야 하는 관성으로 오며 가곤 했다. 책도 내용도 수준도, 일일이 제멋대로여서 내가 맞춰지든지 아니면 흘려버리든지 진력나는 시간들로 군대회, 도대회를 나가고 준비했다.


중학교 입학하니, 재미 있는 게 없었다.

웬 선배라고 찾아오면서 들락대며 거들먹대는지. 나서서 제 소개 하지 않으면 친구 먹을까봐 겁나는지. 대충 알겠는데도 연신 쫓아다니면서 선배라고 주지시키곤 했다. 그래라. 그러러니 인정하면서 내심 같잖게 여긴 게 사실이다. 혼수로 장만한 전집류가 꽂혀진 책꽂이를 찾아다녔다. 이어령 선생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규태의 "한국인의 의식구조" 같은 꽂혀진 인테리어용 전집류를 읽기에 중학교 1학년은 매우 길었다. 참 시간이 더뎠다.


그러면서 모택동을 알고, 니체를 읽으며,

겉껍질만 자꾸 양파처럼 두터워지고, 글짓기 대회에 뽑혀 다니면서,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를 창간호부터 만나게 된다. 거기 필진은 저절로 각인되는 촌놈의 인적 교류가 시작된다. 가장 폭발적으로 사람의 이름이 쏙쏙 자리잡았딘 시절이다. 공병우타자기를 할부로 사서 세벌식 기계화 운동을 두둔하며 회지를 만드는 등 촌스럽고 진부한, 그러나 꽤나 실천적이며 정열적인 발걸음으로 나댔다. 이때, 큰 기원을 하나 세웠다.

큰 성공이란, 보고싶은 책을 마음대로 사서 읽을 수 있고, 내 서재에 갇혀 지내는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족하다. 그 기원을 위해 살자.

라고 내 딴에 장한 기원을 세웠다.


소박하지만 굶주림처럼 책을 읽었다.

문학과 고전으로 시작하여 점점 내 전공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그리더니 조경이라는 전공에서 인문학과 접목을 이루면서 상호 소통이 가능해졌다. 나무 이야기를 시로도 표현하고 산문으로도 집필하더니, 점점 전통 조경과 옛사람들의 옛 마음을 엿보게 된다. 살아가는 일이 옛날과 지금이 다를 바 없는 욕정과 수양의 지나침과 절제의 과정에 놓여 있음이다. 그러니 늘어나는 책은 이사 할 때마다 다이어트 되었다. 그 기준은 내 마음대로였겠으나, 줄지 않고 늘어 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책이 차지하는 거실과 방의 면적과 기능에 대한 끊임 없는 도전을 받는다.


인공지능 앱을 만났는데, Bibly라는 앱은,

책장에 꽂힌 책을 뭉터기로 찍어 나가면, 분석하여 내 책을 등록하여 준다. 이리저리 흩어진 책 중, 한자와 영어로 된 책은 아직 등록되지 않지만 1,600여권 소장되었음을 처음으로 이 Bibly 앱을 통해 알게 된다. 남아 있는 책의 존재가 데이터베이스화 된 것이다. 마음 먹었다고 해낼 수 없는 일을 얼떨결에 작은 집중으로 이룬 것이다. 이게 이번에 속 시원하게 나를 감동시켰다. 서재를 꾸미려는 책장의 규모를 산술 평균치로 계획할 수 있는 객관성을 안겨 준다. 책 1권의 평균 두께를 3센티미터로 하고, 총 장서로 곱해서, 이를 책장의 단수로 나누면 책장의 연장 길이가 나온다. 현재 내 서재의 책장 길이는 5단짜리 10미터로 압축된다.


사실 책을 콜렉션으로 하는 입장이 있긴 하다.

고서를 중심으로 고가의 가격이 형성되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 탐색의 확장이었고, 삶의 여백이면서 동력이었다. 서생 주제를 넘치지 않게 하는 좋은 친구이다. 앞으로도 변함 없이 그러할 것이다. 새로운 서재로 옮기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도 크다. 가까운 사람이 단정적으로 생각 없이 단호하게 책을 줄이라고 한다. 천년의 고독처럼 상처가 깊다. 잘 아물지 않는다. 뭔가를 꾸준히 모으며 진기를 끌어 올려 자신을 투영하는 그만의 잔잔한 수면에 예고 없이 바위를 굴려 넣는 행위이다. 누구나 책이 있어서, 그쯤의 경계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참으로 책이, 골동품 수집가의 골동을 대하는 마음 그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돈이 되지 않지만 내 생의 나날과 함께 할 책이고 서재이다. 그러니 까십으로 다루지 말라.


이번 일을 통해서 오래된 기원이 뚜렷해진다.

그때, 그런 소원을 말할 때도 친구들은 의아해 했다. 나는 막상 해 놓고 보니, 꽤나 근사하다는 자평으로 근거 없이 행복했었다. 뭐 엄청난 직업을 말한 것도 아니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예측도 아니었으니, 예상보다 싱거웠을 것이다. 어느날 급물결을 타고 33년을 직업으로 삼은 전공이 나타났으나, 이제 어린 마음으로 되돌아 간다. 그때 세운 생각을 온전하게 구축하고, 뭐가 되었든 천착하는 영역에 나를 투하한다. 학자가 아닌, 늘 배우는 사람으로 되돌린다. 전문가가 아닌, 그쪽 영역의 폭을 넓히고 깊이있게 다뤄보는 궁리의 세계에 들 참이다. 궁리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던 어머니의 철칙 하나가 내 안의 세포로 자란 것이리라. 그러면서 세월은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표일하다는 말로 살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