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을 따다
감 따러 오라기에 나선 길
안개 걷히며 활력에 뻗친 감빛이 눈부신데
긴 장대 끝 원형의 철사에 매달린 나일론 봉투
툭툭 철사 걸이로 감을 당기면 쏙 빠지며 담긴다.
무른 감꼭지도 담기고 더러 땅으로 곤두박질
꼭지에 매달린 채 가지까지 덤으로 따라오는데,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옮겨갈 때쯤 뒷목 무겁고
촉도 무디어 어디가 철사이고 감꼭지 인지
감도 느려져 감 조차 앙탈 지게 버틴다.
까치 떼에게 남길 감은 나무의 우듬지를 지키고
간섭에 부러지면서 넘어가는 감나무의 가지는
그리하여 그의 천성에 다다르는 게 분명하다.
촉이 아무리 날카로워 꼭지를 자를지언정
늦은 감이 있어 감나무를 있게 하는 것을
지키지 못해 툭툭 털어내는 일 기꺼이 접수하고
그래도 촉보다는 감이 은은하여 산뜻한 것을 알아
감 껍질의 두꺼워짐에서 홍시의 속살이 익는다.
-온형근, '촉과 감', 전문
[시작 노트]
처음 감을 따 보았다. 추운 곳에서 성장한 탓이다. 감 따는 촉이 따로 있더라. 그냥 느낌만으로는 곤란한 지경이다. 촉을 너무 믿을 수 없다. 그냥도 떨어지는 순간을 마주하다 보니, 어쩌면 촉은 그 예리함으로 인해 감에 상처를 입힌다. 촉이 예각이라면 감은 둔각이다. 그것도 둥글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울퉁불퉁 아슬한 둥근 옷을 입었다. 가끔 촉보다는 두리뭉실한 생각에 집히지 않는 감이 세상을 두루 아우룬다. 감나무는 잔가지를 툭툭 쳐내면서 우듬지를 다듬는다. 그래서 감도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아야 한다. 안개낀 날처럼 하나 가득 명료하지 않다. 마치 아름다움에 이르는 오지의 날 것처럼 비정하다. 촉도 감도 실체는 없다. 그러나 촉도 감도 없는 세상은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