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형근 Apr 28. 2024

득음한 명창의 구음을 듣는 아득함

철원 고석정 산수원림

철원 고석정 산수원림 – 득음한 명창의 구음을 듣는 아득함


찬바람에 스치는 온기와 고독     


칼날처럼 매서운 찬바람이 강물을 휘감고 옷깃을 파고든다. 뼈마디가 욱신댄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만이 겨울 한탄강의 고요를 이따금 깨뜨린다. 차가운 골바람이 계류의 흐름을 걷어차면서 연어처럼 거슬러 오른다. 거센 물살을 일으킨다. 강물은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웅크리고, 그 울림은 마치 사연 많은 시댁에 시집온 맏며느리의 한숨처럼 잽싸게 움직인다. 끊이지 않고 치대며 갈구고 좌우 잽을 날린다. 때로는 단타처럼 급격하게, 때로는 장타처럼 여유롭게 강물을 휘두르며 장외를 타진한다. 찬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쓸쓸한 강가 풍경은 겨울의 황량함을 더욱 극명하게 만든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그 흐름 속에는 산수원림의 리듬이 담겨 있다. 단타와 장타, 빠르고 느린 리듬이 교차하며 강물을 이끈다. 삶의 다양한 모습이 겹치며 투영된다.


고석정과 고석바위, 한탄강의 사행하(蛇行河)를 바라본 경관, 시간의 영원함과 삶의 무상함이 차가운 색감과 적막한 분위기로 드러난다. (2024.02.06.)

강 위에 우뚝 솟아오른 외로운 바위, 고석(孤石)은 거친 표면과 드러난 외양으로 강의 깊이를 그대로 드러낸다. 고석바위가 외롭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강폭이 넓어져 조망 범위 안에 들어왔다는 증좌이다. 동시에 그 외로움은 살아가는 엄중함을 드러낸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온 묵묵한 풍경이 이런 것일까? 역경 같은 것을 버티는 강인함이 이곳의 수호신처럼 다가온다. 고석바위에서 시간의 흐름이라는 묵시록, 삶의 덧없음이 스친다. 쓸쓸하면서 고독하다. 변함없이 의연하다. 의연함으로 깊은 감동이다.     


고석바위는 시간의 영원함을 풍경으로 지녔다. 태어나 성장하고, 사랑하고 떠나가는 동안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존재를 확인하는 절대 의지이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계곡바람이라 끄집어낸 손이 차다. 두 손을 마주하여 비빈다. 온기는 늘 한순간이다. 고석정을 내려가는 옛 계단에서 고석바위 크기의 공허를 채운다. 세찬 강바람은 매섭게 얼굴을 후려친다.


아득한 한탄강의 선율에 젖는다     


고석바위를 초점경관으로 삼아 조망한다. 한탄강은 사행하(蛇行河)1)로 굽이쳐 흐른다. 끝없이 이이지는 아득한 저쪽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성적 그리움이 물씬 풍겨온다. 한참 동안 귓가를 간질이며 유혹하는 물소리를 따라 왼쪽으로 조망을 바꾼다. 5성급 스파호텔 아래 여울에서 노래하듯 소리가 들려온다. 파자(巴字)형으로 물줄기를 꺾으면서 공중으로 물보라를 튕기며 솟구친다.      


고석정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여울 방향,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는 물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역동적인 물의 움직임이 청량하다. 마치 명창의 구음처럼 깊고 그윽한 물소리


멀리서 들리는 물소리는 득음(得音)한 명창의 구음처럼 빨려든다.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듯 깊고 그윽하다. 명암과 굴곡이 분명하다. 격정적이고 명랑한 가락이다. 마치 아침 안개를 걷어내는 듯 맑고 청량하다. 세속의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락이다. 운기 조식을 마친 복식 호흡의 힘과 울림이 은근하다. 그의 진성(眞聲)은 낮게 포효하며 배경 음악처럼 고석정을 감싼다. 유장하게 흐르는 한탄강으로 울려 퍼지는 물소리는 천상의 선율이다. 자유롭게 솟아오른다. 높낮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새의 노래처럼 가볍고 섬세하다.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더하고 뺀다. 오직 순결한 아름다움만이 존재한다. 고석정을 감싼 물소리는 고석바위와 한탄강을 하나 되게 한다.   

  

철원 고석정은 고석바위를 마주하며 기대어 선 누각이다.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정자이다. 신라 진평왕 때부터 고석정을 찾은 기록이 있을 만큼 인문의 흔적이 오래되었다. 역사 속에서 향유의 흔적을 시와 문장으로 살필 수 있다. 철원 고석정에서 옛 문사들이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헤아린다. 웅장함과 정적 속에서 고석정에 오른다. 한탄강의 맑은 물소리, 푸르른 숲과 기암절벽 위로 선명한 하늘이 펼쳐진다. 그 완벽한 풍광의 한가운데로 강물이 흐른다. 살아 꿈틀대는 생명의 원천을 뿜어낸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흐른다. 그 울림이 닫혀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끄집어낸다. 물소리에 집중하며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잠들었던 생각과 감정을 바라본다.  

   

고석정에 이르러 옛사람과 벗하는 '상우(尙友)의 만남'이라는 선정(禪定)에 든다.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고산유고』에서 ‘상우’를 이렇게 말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를 낭송하고 그의 글을 읽으며 그의 행동을 고찰하고 그의 뜻을 관찰하여, 그의 지나간 자취를 본받아서 나의 인덕(仁德)을 보완하는 것이니, 상우(尙友)란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대개 벗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벗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선함을 벗하는 것이요, 그의 마음을 벗하는 것이지 그의 겉모양을 벗하는 것은 아니다.


-윤선도, 「상우부(尙友賦)」, 『고산유고(孤山遺稿)』, 한국고전종합DB.     


상우란 역사를 살았던 위로 올라가서 옛사람과 벗하는 것을 말한다. 벗으로 숭상할 만한 뛰어난 옛사람을 ‘상우’라 한다.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현세에 당세의 정신과 삶을 떠올리고 되살려 논하는 게 상우이다. 철원 고석정을 찾았던 역사 속의 원림 문화를 향유하였던 ‘상우(尙友)의 만남’을 시도한다. 옛사람들이 찾았던 고석정의 감성과 직관은 나와 무엇이 달랐을까.     


분수에 맞는 그릇, 고석정의 당대 비판      


철원 고석정은 옛 태봉국 유적지로, 역사의 자취가 남아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 이곡(李穀, 1298~1351)은 왕실의 방탕한 사냥 행태를 비판하는 시를 남겼다. 신라 진평왕이 고석정을 찾아 비석을 세운 일화를 떠올린다. 과도한 사냥을 즐겨 국가 재정을 낭비한 전례를 ‘복철(覆轍, 엎어진 수레바퀴 자국)’에 비유하며, 후대 왕들이 이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누가 능히 전인의 잘못을 보고 후일을 경계하겠는가? 覆轍誰能後戒前/복철수능후계전

이곳은 태봉의 유적인 옛 산천이라네 泰封遺跡舊山川/태봉유적구산천

임금께 권하여 멀리 거둥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건만 勸王遠狩非良策/권왕원수비양책

다만 간신들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네. 只爲姦臣不畏天/지위간신불외천    

 

-이곡, ‘누정’조, 강원도-「철원도호부」, 『신증동국여지승람』권47. 한국고전종합DB. 

    

이곡은 단호한 질문을 던진다. 임금의 사냥 행위를 ‘권왕원수비양책(王을 권해 멀리 사냥가는 것은 옳지 않다)’이라 직언하고, 이를 부추기는 신하들을 ‘간신(姦臣)’이라 매서운 말로 꼬집는다. 국가의 아버지인 임금마저 사치에 젖어 있고, 그런 임금을 호위하는 신하조차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어찌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사치는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 자기 용량에 맞는 한도, 사람으로서 일정하게 이를 수 있는 한계가 분수이다. 권력자의 무지몽매한 무지막지의 생활 방식과 참모들의 방종과 오만불손은 예나 지금이나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행태이다. 권력과 부의 함량을 견주는 방식은 분수에 맞는 그릇인지를 따져보는 이치와 같다. 


신라 진평왕이 고석정을 찾아 행차하는 모습의 상상도, 이곡은 왕실의 사치와 방탕함을 경계하는 시를 남긴다. (출처 : firefly.adobe.com) 

이곡은 당대 현실에 경종을 울리며, 전고(典故)를 예로 들어 역사의 교훈을 되새긴다. 그는 과거 신라 진평왕 때의 실수를 상기시키며, 당시 지나친 사냥으로 국고를 기울였던 잘못을 지적한다. 고석정이라는 유적지에 와서 그 유래를 살펴봄으로써 동시대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시를 남긴다. 과거를 들춰 당대 권력의 방종과 부패를 신랄하게 꼬집어 현세를 진단한다.      


시인은 아름다운 산수원림의 풍광 속에서 분수에 맞는 삶의 그릇을 고민하였다. 고석정 산수원림의 운치 있는 경관보다 도덕적 성찰을 더 중요시하였다. 이곡의 꼿꼿한 자세가 빛나는 고석정 산수원림은 도덕과 절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성찰의 공간이다. 이곡의 시는 왕실 비판을 넘어 도를 지키는 정치를 권고한다. 철원 고석정 산수원림에서 현실을 바로잡고자 했던 꼿꼿한 기개를 학습한다. 이처럼 원림답사는 ‘상우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동시대 문제를 문화유산 공간에서도 치열하게 성찰할 수 있다. 철원 고석정 산수원림에서 분수에 맞는 그릇, 곧 균형 잡힌 삶의 태도를 되돌아본다.    

       

신선이 사는 별천지로서의 고석정     


한탄강을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고석정 원림은 신선들이 노닐만한 별천지 그 자체이다. 맑은 강물이 굽이쳐 흐르고,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경관은 생기 넘치는 산수원림의 혼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고석바위는 마치 신령스러운 존재가 강 한가운데 거처하는 듯한 풍모를 자아낸다. 바윗돌의 매끈하고 단단한 표면은 오랜 세월의 긴 여정을 굳건히 지켜낸다. 웅장한 자태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풍긴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세월의 더께가 숙성되어 영육이 꿈틀대듯 살아 숨 쉰다.      


고석바위 건너편 산은 임꺽정이 진을 친 곳이라고 알려졌다. 강물 건너편 웅장한 천혜의 경관과 맞닿아 있는 이 산은 임꺽정 일행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강과 숲, 바위가 어우러진 수려한 산수원림은 그들의 활동무대를 더욱 현실이 아닌 환상과 공상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만들었을 것이다. 


신령스러운 고석바위는 한탄강에서 신선의 입구를 표시한다. 바위의 매끄러운 부분과 웅장한 자태가 신선의 풍광을 대변한다. (2024.02.06.)

고석바위는 신선 세계로의 입구처럼 보인다. 고석정 산수원림 주변을 미음완보(微吟緩步)하다 보면 환상의 세계로 이끌린다. 강물에서 맑고 청량한 노래가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울려 퍼진다. 물소리에는 생동력이 통통 튀듯 살아 숨쉰다. 귀 기울이다 어느새 사는 일의 본질에 다가선다. 영혼이 맑아진다.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는 장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특정 장소의 고유한 사운드스케이프 자체가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기도 한다는데, 이곳 고석정의 물소리는 사람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한다.      


유사규(柳思規, 1534~1607)는 고석정이 이미 선계의 세상임을 간파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고석은 천년의 명승지이며 孤石千年勝/고석천년승

맑은 못이 그 일대를 흐른다. 淸潭一帶流/청담일대류

신령한 자취 깊은 굴 속에 있고 靈蹤幽竇裡/영종유두리

기이한 흔적 끊어진 비석 머리에 있다. 奇跡斷碑頭/기적단비두

소나무 늙어 학의 둥지 하기에 마땅하고 松老宜巢鶴/송노의소학

모래 깨끗해 갈매기와 벗하기 좋다. 沙明可狎鷗/사명가압구

표연히 세속의 생각에서 벗어나 飄然醒俗慮/표연성속려

바야흐로 단구가 있음을 믿는다. 方信有丹丘/방신유단구

     

-유사규, 「등고석정」, 『상유집』 상, ‘시’, 한국고전종합DB.  

   

천년의 역사는 진평왕이 다녀간 기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고석정은 뛰어난 경관을 지녔으며 무엇보다도 맑은 물이 못을 이루듯 고즈넉한 풍광을 그렸다. 그러면서 영종(靈蹤, 신령스러운 발자취)과 기적(奇跡, 신의 행위라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곳이 신선의 지경에 이르렀음을 떠올린다. 고석바위 위에는 소나무가 있어 학의 둥지로 적합하고 아래에는 깨끗한 모래사장이 있어 갈매기 머물기 좋다. 내가 살아온 속세의 번잡을 씻는다. 신선이 산다는 ‘단구(丹丘)’가 이곳이다. 나도 이미 선경(仙境)에 들었다. 유사규는 40대에 평양, 정주, 파주, 해주 등에서 지방관으로 근무하였다. 이때 고석정의 승경을 찾은 감회를 시경(詩境)으로 표현하였다.    

 

고석정 산수원림은 수시로 모습을 바꿔가며 신령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천상의 경지와 같은 별천지에 있는 착각이 든다. 이런 착각은 고석정 산수원림이 그만큼 원경관에 가까워 순수하고 아름답기에 가능하다. 주위를 둘러싼 수려한 경관은 마치 신선들의 별궁과 다를 바가 없다. 운치 있는 바위와 숲, 강과 함께 화강암과 용암 분출에 따른 현무암이 상존하여 시간이 협곡으로 천천히 흐른다. 일상의 시름을 잊는다. 오로지 선계와 하나 되어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뿐이다. 일상적인 번뇌와 걱정거리를 모두 내려놓고 정화된 기운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득음한 명창의 구음을 듣는 고석정 산수원림     


한탄강 고석정에서 서성대며 시를 하나 읊었다. 시간이 흘러 한탄강 협곡의 주름은 고석바위의 주름으로 앉았다. 모든 세월의 흔적은 고석바위의 가로줄처럼 새겨진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이 있기에 살아가는 일도 깊고 장구하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석바위와 고석정은 서로 마주하여 의지한다. (2024.02.06.)


한탄강 고석정



온형근




   겨울 한탄강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길을
    굳이 옛 계단으로 접어든다.
    안전줄을 끌어 잡아야 할 정도로 단차가 크다.      


   내려가면서 고석바위 꼭대기 소나무와 눈이 마주친다.

   소나무 눈망울에 물기 어리더니 암벽 아래 쪽빛 물결에 일렁인다.

   얼마나 깊을지 고독한 바위를 둘러싼 수면은 깊이를 알 수 없다.  

   

   점점 명랑하고 청아한 소리가 나를 이끌더니

   햇살이 속살거리며 물보라 공중으로 튕겨 오르는

   반짝이며 꺾여 흐르는 여울물 

   맑고 투명한 물결 소리는 명창의 구음처럼 잔향으로 남는다.     


   고석정은 고석(孤石)에 기대어 머문다.

   고석바위에 엉금엉금 기어올랐다는 기이한 풍류는 콘크리트 정자에 올라 눈길만 더듬는다.     

   지금은 올라갈 수 없는 문화재


   기어코 오르고야 말겠다는 각오의 마음도 식고

   협곡의 주름에 고석바위도 가로줄 긋고

   세월은 유장하여 흔적도 없으니

   절애고도일 때 고석바위의 소나무와 고석정의 지붕만 벗하더라     


고석정에 오르면 유장하게 흐르는 한탄강의 쪽빛 물결에 반한다. 가파르고 위험하지만 옛 계단에서 고석바위 꼭대기의 소나무와 대화를 할 수 있다. 소나무와 눈을 맞추니 글썽이는 암벽 아래 물결이 일렁이며 맺힌다. 수면의 깊이는 고독의 깊이처럼 알 수 없다. 그래도 여울에서 튕겨내며 터져 나오는 명랑하고 청아한 여울 물소리에 이끌린다. 득음(得音)한 명창의 구음처럼 여운이 짙다. 맑고 투명한 물결 소리를 품고 고석정에 오른다. 고석바위와 고석정은 서로 의지한다. 옛사람이 오르고 싶어 안달하였던 고석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이제는 오를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온형근, 시인::문화유산조경박사)

키워드 ; 국내여행지추천, 한국정원문화콘텐츠, 전통정원, 시경(詩境), 철원 가볼만한곳, 고석정, 한탄강, 윤선도, 이곡, 진평왕, 유사규, 임꺽정, 산수원림     




1)  蛇行河(Meandering River): 강물이 S자 모양으로 굽이치며 흐르는 형태를 말한다. 사행(蛇行)하는 강물의 각 굽이진 부분을 하곡(河曲, River Bend)이라 한다. 하곡의 내만(內灣, Inner Bend)은 강물이 휘어진 안쪽 부분, 외만(外彎, Outer Bend)은 강물이 휘어진 바깥쪽 부분을 말한다. 내만은 강물의 흐름이 바깥쪽을 향해 휘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안쪽의 굽은 부분이라 유속이 느리고 퇴적물이 쌓이기 쉽다. 외만은 강물의 흐름이 바깥쪽으로 휘어지면서 생기는 바깥쪽의 굽은 부분이라 유속이 빠르고 강바닥 침식이 활발히 일어난다. 따라서 사행(蛇行)하는 강에서 내만은 퇴적이 쌓이는 안쪽 굽은 부분을, 외만은 침식이 활발한 바깥쪽 굽은 부분을 각각 가리킨다.

이전 11화 영평천에 비친 고운 달과 거문고 풍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