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나은 나를 위한 기록이 독이 될 수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 한 번쯤 해봤을 듯하다. 오늘도 신기록 경신했네! 오늘도 무게 더 쳤네! 근데 이거.. 다 갱신하면(물론 갱신할 수가 없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도ㅋㅋ..) 그다음엔 뭐가 있는 거지? 스포츠는 결과로 말한다. 승패 여부는 점수에 달려있기 때문에. 그런데 나 혼자 하는 운동인데 어느 순간 왜 기록에 집착하게 되는 걸까?
인정 욕구
기록은 곧 성과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운완(오늘도 운동 완료)을 달성한 나를 보는 재미와 어제보다 나은 기록, 나의 순수한 노력으로 얻어낸 결괏값을 볼 수 있어서다. 내가 1%의 디자이너나 기획자가 아닌 이상 회사에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 내도 아주 큰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최선을 다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최고의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이 없다는 걸, 직장생활 8년쯤 되니 자연스레 학습이 되었다. 특히 나의 욕구는 복잡하다. 5년째 나를 지켜본 대표님조차 나에 대해 어떤 욕구를 가진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이니.. 차라리 돈을 좇으면 연봉을 더 올려주면 될 텐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며.. (일단 연봉부터 올려줘 보세요...)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많은 인생에서 내 노력으로 온전하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무얼까? 생각해봤을 때 그것은 내 몸이었고 운동이었다. 특히나 무릎이 아프게 되어 10분 동안 서 있는 것도 힘들어했던 시절엔 내 몸 하나 마음처럼 되지 않아 더욱 절망적이었고, 절박하게 몸부림을 쳤던 1년 간의 PT 수업은 나를 바로 세워주는 울타리가 되었다. 느리지만 꾸준히 쌓아 올린 성벽처럼 나의 몸도 조금씩 단단해졌고, 그 모습을 같이 지켜봐 주고 응원해준 트레이너님 덕분에 업무 외에 내 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동이 좋은 성취감을 안겨준다는 건 알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록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샌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게 치는 허세까지 부릴 줄 알게 되니 말은 다 했다. 러닝도 마찬가지다. 1m라도 더 뛰면 사실 어제의 나를 제치고 항상 신기록이 된다. 이렇게 오래 뛰어본 적이 없으므로.. 가을까지 10km를 뛰겠다곤 했지만 순식간에 가을이 왔고, 그 와중에 코로나까지 걸려 일주일 동안은 운동도 못 했다. 코로나가 걸리기 바로 전엔 10월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까지 등록했던 터라 연습은 하겠지만, 이것도 숫자를 바라보는 행동인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골인 지점보단 길을 계속 만들어 가자
앞서 말한 성과와 인정 욕구를 채우는 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목표를 미리 정해두지 말자. 그러면 이 행위는 결과만을 위한 것이 되니까.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과정을 즐겨야 한다. 이어령 선생님이 그랬다. 진리를 다 깨우치고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서울이 목표인 사람들은 서울 오면 끝난 거라고. ‘인생은 나그넷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목표는 없지만, 인생의 반환지, 경유지가 있고 모험하고 방황하면서 길 위에서 계속 새 인생이 일어나는 거라고.
10km가 가능한 건지 아직 한 번도 해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그게 길이라면 가보는 거다. 최근 내가 너무 10km에 대한 목표를 걱정하는 것을 본 스승님은 그다음 러닝 코스는 쉬엄쉬엄 뛰어주셨다. 뛰면서 대화가 가능한 것인지 몰랐는데 8분대로 뛰니 가능하더라 ㅎㅎ 대화를 하며 뛰니 숫자만 바라보고 뛰었을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계속 이렇게만 뛰면 안 되냐는 내 어리광에 이런 날도 있어야 다음에 더 힘든 코스도 이겨낼 수 있다면서 다시 또 다른 길을 가리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