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활보 May 05. 2022

엉성하지만 노브라입니다

나의 해방일지 1

굳이 빗대자면 나의 가슴은 잡지 목차 같은 거였다. 필요한 것 같긴 한데 몇 페이지 안 되고 스르륵 넘기면서 재밌는 내용을 찾아보면 되니까 사실 꼭 읽진 않는. 10대 시절 잠깐 어깨가 구부정해지기도 했었는데 남다른 발육 때문이 아니라 부푼 가슴이 어색해서였다. 적당한 성격처럼 가슴도 그랬다.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인 시절도 있었지만 핫한 사연도 엄청한 에피소드도 없다. 가슴을 다루는 방식도 그저 남들만큼이었다. 좀 덜 처진다기에 와이어 있는 브라를 하고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양말보다 브라부터 벗었던.


가슴은 젖가슴이 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조리원의 전문가도 오케타니 마사지를 해주던 선생님도 그 누구도 나의 모유수유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는 2년 동안 모유수유를 해냈다("했다"가 아닌 "해냈다"에 얽힌 이야기는 대하에세이여서 아직까지 못 쓰고 있다). "쭈쭈?" 하면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되는 아이가 나의 젖가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부풀려주었다.     


전성기가 지나면 은퇴가 오기 마련이다. 젖이 차오를 때면 '골저스'한 서양영화 주인공의 가슴 같았고, 아이가 그걸 다 먹고 나면 목욕탕에서 봐왔던 엄마들의 가슴처럼 중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자꾸 아래를 바라보았다. 가슴 조직, 해부학 같은 걸 잘 모르더라도 이건 알 수 있다. 부풀음과 꺼짐이 하루 몇 번씩, 2년 동안 계속 된다는 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뜻한다는 걸.   


젖을 끊자 가슴은 다시 차오르지 못했다. 아이가 뱃속에서 빠져나올 때 텅 비어버리던 느낌처럼 가슴에서도 무언가가 쑥 빠져나왔다. 헐렁, 해졌다. 코로나로 목욕탕도 가지 않고 지내다 8년 만에 다시 수영장을 찾은 이 봄, 수영복을 입으며 살펴본 가슴이 낯설다. 젖 나오는 주머니로만 여기다 쓰임이 다한 가슴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일곱살이 된 아이는 가끔, 너무 아플 때나 밤에 무서워서 잠이 안 올 때면 "엄마, 나 쭈쭈한테 인사해도 돼?" 묻는다. 물러덩하고 시들한 내 가슴에 땀으로 끈적하고 뜨끈해진 작은 손바닥을 올리며 "쭈쭈야 안녕" 인사한다. 아이가 마음 속으로 10여초를 센 뒤에 손을 빼내기까지, 내겐 조금은 성가시고 아이는 안정을 찾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퍽퍽하던 가슴이 차오른다. 아이도 건네는 그 인사를 나는 여태 한 번도 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가슴뿐일까. 몸 구석구석, 마음 이틈 저틈 골고루 무심했다.


해방으로 가는 출구 @ 이집트, 2010



노와이어브라 8년, 회사를 쉬면서 아예 가슴에 1g의 압박도 넣지 않은 지 2년. 노브라지향인인 나의 지금을 돌아보면 퍽이나 스스로를 살피고 돌보는 사람 같지만 사실 나의 가슴 해방은 임신의 결과다. 내 몸이 아니라 아이를 품은 몸이어서 사려깊었다. 어쨌든 그 덕에 가슴과 몸통이 덜 압박되었고 중학교 때부터 있던 오른쪽 겨드랑이 밑의 통증이 사라졌지만 아이에게서 시작된 해방은 어쩐지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만 같다.

 

맨몸에 헐렁하고 보드라운 티셔츠, 그 위에 청남방을 걸치고 자전거를 탄다. 수영가방을 바구니에 넣고 페달을 빠르게 밟는 길, 앞섶으로 봄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와 씨, 겁나 자유롭네." 간질간질한 말을 입밖으로 내뱉어본다. 아직 남들 눈을 신경 쓰는 늦된 해방이지만 이제 해방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남은 것은 진정한 해방뿐. 여전히 스스로를 옥죄는 몸가짐, 마음가짐, 나의 엄마와 세상에서 깃든 규율들 시선들. 엄마 떼고, 여자 떼고, 지금 내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보는 것. 너무나 아름다운 내 아이도 그런 나를 보며 새삼스럽지 않게 자기 몸과 마음을 대하는 것. 해방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아무렴.

이전 15화 트라우마의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