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전화 용건은 두 종류다. 안부차 손녀딸 목소리를 들으려는 것, 그리고 물건 주문. 용건에 따라 목소리 톤도 다르다. 손녀딸과 통화를 원할 때는 살짝 질책하는 목소리로 "너거 요즘 왜 이렇게 전화가 없노. 우리 J는?" 묻는다. 반면 물건을 주문할 때는 살짝 겸연쩍은 목소리로 "야야, 내가 홈쇼핑을 봤는데~" "뭐하노? 밥 먹었나? 두유가 똑 떨어졌데이~" 하는 식이다. 이리 솔직한 여인이라니!
최근 엄마가 색다른 물건의 구매를 부탁했다. "닭이 몇 마리 없어 더 사서 키워야 되겠는데 사다 기르면 꼭 병을 옮기더라. 요즘 알도 잘 안 품고... 부화기 가격 좀 알아봐라." 있는 줄도 몰랐던 가정용 부화기의 세계는 넓었다. 아이가 있는 집은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취미 삼아 집에서 계란, 메추리알 등을 부화시키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엄마는 3란, 5란, 10란짜리 부화기에 콧방귀를 끼었다. 왜 둘이 사는 집에 그렇게 많은 병아리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분부대로 30~40란 부화기를 주문해 드렸다.
한 달쯤 지났을까. 부화기를 샀다는 것조차 잊었을 무렵 병아리 부화 소식이 전해졌다. 영상 속에서 삐약대는 병아리를 보자 아이는 어서 할머니집에 가자고 안달이었다. 다행히 병아리 사진을 받은 그 주말이 어버이날이어서 고향으로 향했다. 아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병아리부터 찾았다. 뒤따라 들어간 어둑한 창고형 하우스 끝에서 빛이 번져나오고 있었다. 빛의 정체는 행여 병아리가 추울까 아빠가 달아둔 열등이었다. 전구에서 스민 따뜻한 온기 아래 무늬가 각기 다른 삐약이들이 목청을 키우고 있었다. 차곡차곡 계란을 모아 29개를 넣었는데 그중 24마리나 깨어났다고 했다. 부화기의 성능에 놀란 것도 잠시 아빠가 만든 병아리 집이 눈에 들어왔다. 배박스에 열등을 달고 온도계도 달아두었다. 종이로 고깔모양을 만들고 그걸 접시 위에 엎어 둘레에 볍씨를 뿌려주었다. 병아리가 좀 더 자라면 바꿔서 넣어줄 더 큰 집도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병아리 넓은 평수로 이사가겠네? 참 이런 거 잘 만든다니까 아빠는.”
“다른 거 필요할 땐 그렇게 나를 부려먹더니 전구 사러는 자기가 시내 두 번이나 갔다왔다 아이가. 딱 맞는 거 구하느라고. 정성이다 병아리한테.”
엄마가 불평하는 척 아빠의 츤데레 면모를 알려준다.
생각해보니 아빠는 늘 무언가를 기르며 살아왔다. 개이거나 물고기일 때도 있었고, 소를 여러 마리 키우기도 했다. 새끼들을 직접 받았고, 말은 거친데 행동이 살가웠다. 추울까 더울까 먹기 좋을까 나쁠까, 배고프지 않을까 잠자리는 어떨까 늘 살피며. 지금은 30년 가까이 벌을 기르고 있다. 집 근처에 생긴 벌집을 없애려다 그 벌집의 벌을 벌통에 넣었고 하나였던 벌통이 200개가 되기도 했다. 나는 '마이너스의 손'인데 아빠는 '프로 돌봄러'다. 물론 그런 아빠와 우리까지 돌본 엄마가 돌봄 끝판왕이지만.
시골에서의 일과는 잠자기 전 집 밖을 살피는 것으로 끝난다. 대문은 잠궜는지, 하우스 문단속은 했는지, 집안으로 들여야 하는 것들이 밖에 있진 않은지 등등. 아빠는 평소대로 이것저것 살피러 밖으로 나갔다. 곧 돌아온 아빠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후레쉬 좀 줘봐라! 고양이가 병아리 다 죽여놨네. 이 놈 새끼.” 몹시 벌개진 얼굴과 화난 목소리였다. 죽은 병아리를 치우고 피를 닦느라 아빠는 한참 만에 들어왔다.
프로 돌봄러가 산다는 소문이 났는지 어미새 한 마리가 하우스 안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깐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어두워지고 어미새가 돌아오면 문단속을 하려다 그만 깜박 잊었는데 그 사이 동네 산고양이가 들어와 닥치는 대로 병아리를 물어죽였던 것. 아빠에게 범죄현장을 들킨 고양이는 후다닥 달아나버렸다. 결국 24마리 중 12마리만 살아남았다. 그제야 부화되지 않았던 5개의 알에 대한 안부도 궁금해졌다.
“저 새 새끼 다 갖다 버려뿌야지! 저놈들 때문에 아이고!”
아빠는 당장 날이 밝으면 새 둥지와 새끼들을 밖으로 빼내버려야겠다고 도저히 화가 나서 못 참겠다고 했다. 가지 말라고 극구 말렸지만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정리된 사건 현장을 돌아보고 와서 말했다.
"나 고양이 싫어! 이제 고양이 놀이 안 할거야!"
고양이 흉내내기를 좋아하며 가끔 물그릇을 바닥에 놓고 고양이처럼 먹기를 즐겼던 아이의, 나름 결단력 있는 선언이었다.
다음날, 어제의 결기는 간데없이 아빠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래도 살아 있는데 어찌 할 수 있나. 어미새가 드나들게 창문 열리나 봐야겠다" 했다. 다행히 하우스 창문은 열리는 구조였고 오며가며 문은 꼭 닫아두기로 했다. 나는, 뭐 그럴 줄 알았다. 아빠는 얼마전 우리에게 분양받은 구피들을 너무 애지중지하며 물을 자주 갈아주다가 절반을 죽이고 말았던 사람이다. 가끔은 저런 정성을 왜 우리한테 안 쏟고 그렇게 술 마시면 화를 냈을까 싶지만. 나의 아이를 보며 하회탈처럼 웃어 보이면 새삼 그 얼굴이 너무 낯설어 쳐다보다가, 아빠도 살아오느라 아빠노릇하느라 힘들었겠구나, 이젠 편해졌구나 싶어 안도하게 된다.
떠나기 전에야 용기를 내 살펴본 남은 병아리들은 아주 풀이 죽어 있었다. 넓은 박스를 두고 한쪽 구석에 모두 모여 아주 작게 삐약댔다. 처음 24마리는 연식 있는 합창단처럼 우렁차게 울었는데 말이다. 뭘 알까 싶었던 저 작은 생명체도 자기들이 운 좋게 살아남았음을 아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얘들아, 너희들은 괜찮을 거야. 우리 아빠가 잘 돌봐줄 거야. 곧 다른 병아리들도 들어올거야. 아빠에게 삶의 또 다른 기쁨이 되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