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치유되고 싶지 않아
성인이 되고 나서 누군가의 무엇을 부러워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요즘 글 잘쓰는 사람보다도 부러운 사람이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다. 더 가까이는 지난주 초급반에서 킥판을 뗀 3명의 학생들.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나는 "긴장을 해서 힘이 들어가 몸이 휘었다", "발차기를 힘껏 하라" 등의 주문을 받았는데 강사님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란 말을 "왜 이렇게 긴장해요. 긴장 풀어요!"라는 말로 바꾸어 다독였다.
수영에서 오랜만에 발현된 질투, 잘 하고 싶다는 감정을 대하다 과거 언제 누군가를 왜 부러워했는지를 떠올려보니 앞서도 언급한 글 잘쓰는 사람,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 신념이 확고하고 행동을 하되 그 신념이 그를 가두는 족쇄가 아니고 그를 빛나게 하는 경우, 세 가지가 꼽혔다.
글 잘쓰는 사람과 관련해 생각나는 일화는 십 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영리 웹진을 만들던 선배들과 몇몇 젊은이들이 갑사였던가 동학사였던가를 돌아본 뒤 숙소에 빙 둘러앉아 술 몇잔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듯하다. C 선생이 어떤 글을 쓰고 싶으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덥석 "날카로운 글"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선생이 날카로운 글이 뭐냐고 다시 물었을 때 무어무어라고 또 망설임없이(!) 대답했던 것 같은데 세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내 나이 갓 스물셋. 어쨌든 그 대답에 내가 쓰고 싶던 꼴이 있었고, 나는 그런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부러워했고, 그들처럼 되지 못해 속이 쓰렸지만 애가 닳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못 되었는가 싶지만.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 역시 당시 C 선생을 포함한 모임에서 어울리던 이들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나는 그들이 참 좋았으면서도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보다 내 무취향에 좌절하는 일이 더 많아 길게 갈 수도 있었던 그 모임에 몇 번 참석하지 못했다.
신념이 확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전전 직장의 동료들 중 몇몇.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나는 그저 룸펜일 뿐이오" 하며 고개 저을 것이 눈에 선연한데도 그저 생각만 하는 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서 그들은 당비를 내거나 희망버스를 탔다.
그리고 이제 무엇보다 부러운 수영 잘하는 사람은 회사 선배. 그는 서른다섯에 처음 수영을 배워 이제는 모든 영법을 마스터하고 가끔 오리발도 달고 여름마다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 종일 수영을 하거나 물에 둥둥 떠서 책을 읽는다.
수영을 시작한 후로 어떻게 해야 킥판을 뗄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팔을 수도 없이 젓고, 길을 걷다가도 "음파 음파" 소리 내 호흡하던 나는 문득 실로 오랜만에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수영장 딸린 집을 지으리. 돈이 남아 돈다 해도 혼자 그 많은 물을 쓰는 건 아무래도 죄책감이 드니까 집에 수영장 하나 만들어놓고 동네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끔 하면 어떨까, 종래엔 섬을 하나 사고 배도 사서 바다수영을 즐기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 킥판 하나 때문에 허무맹랑한 꿈을 꾸자니 헛웃음이 픽 새어나오고 내일 수영장 문을 열지 않는다니 매일 봐도 그리운 임 얼굴 못 보는 것마냥 마음이 허전하다.
드디어 병에 걸린 것이다. 심드렁쟁이에게 실로 오랜만에 깃든 열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