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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보 May 04. 2023

한라산을 오르며 알게 된 것들

1.

백록담을 20여 미터 앞두고 귤이가 환호 아닌 비명을 질렀다.


"엄마!!!!! 나 집에 갈래!!!!!!"


산 입구는 봄인데 정상은 한겨울이었다.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한라산 '똥바람'은 오래전 <모래요정 바람돌이>에서나 본 것 같다. 바람 숭숭 드나드는 목티에 후드집업을 입은 귤이는 칼바람을 다 맞으며 휘청이고 있다. 당장 내려가고 싶은 그 마음을 백번 이해하면서도 너무 아까웠다. 100미터도 아니고 코앞이 백록담인데.


"그지 너무 춥지? 엄마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근데 저기 가서 백록담만 딱 보고 가면 어때? 귤이 백록담 보고 싶어 했잖아."


다 필요없다는 귤이를 들쳐 안고 달렸다. 인증샷을 찍고 다시 귤이를 옆구리에 끼고 이번엔 하산길로 내달렸다. 내리막인지 돌계단인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키 큰 귤이를 덜렁덜렁 매달고 뛰어내려가니 올라오던 사람들이 "아이고 대단하시네요~" 했다. 돌풍이 잠잠해져 귤이를 내려놓자마자 이번엔 우박이다. 뭔가 후두둑후두둑 떨어져내려 첨엔 모래바람인 줄 알았건만.

새벽 4시에 일어나 김밥 8줄을 쌌다. 힘들지 않고 설렜다는 게 킬포


변화무쌍한 온갖 산들을 다녀봤으면서 왜 그랬을까. 장갑과 모자, 따뜻한 옷은 최소한이고 기본인데. 사회 시간에 배운 대로 한라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임을 기억해야 했다. 과학시간에 배운 대로 고도가 높을수록 기온은 낮아지고 날씨도 변한다. 그러고 보니 산은 늘 무릎 꿇게 했다. 덤벼들었다 고산병을 얻은 네팔의 히말라야 자락, 우간다의 엘곤산이 떠올랐다. 젊음만 믿고 준비 없이 덤빈 설악산 종주에선 무릎을 잃고 한의원에 오래 다녀야 했다. 이전의 교훈들이 나를 데려다주는 곳은 완벽한 산행과 같은 실수없는 세계가 아니라 늘 새로운 교훈이 준비된 예측 불가의 삶이다.



2.

백록담에서만 빼고, 귤이는 8시간 산행 내내 씩씩했다. 귤이의 원동력은 그녀의 '관종력'이다. 등산하는 어린이가 별로 없다 보니 많은 어른들이 귤이에게 "대단하다 너" "몇살이니?" "정말 멋지다" "잘하고 있어. 힘내!"라는 온갖 응원의 말을 건네주신다. 그 말들은 아의의 거친 호흡에 아픈 다리에 바로 꽂혀 직효약이 되어준다. 간식도 몇 번이나 받았다. 단백질바가 등산 간식의 트렌드라는 것도, '아이셔'가 츄잉캔디로 개별포장 되어 나온다는 것도 귤이 걸 얻어먹으며 알게 되었다.


"엄마, 모르는 사람들이 준 거 받아도 돼?"

"응, 엄마랑 같이 있을 땐 괜찮아. 산에선 힘드니까 나눠 먹고 그러거든."


장담컨대 노키즈로 상처받은 영혼들은 산에서 치유받을 수 있다. 한라산 같은 대한민국 명산들은 '키즈 프렌들리'의 마지막 성지가 될 것이다.


코로나키즈인 데다가 수줍음이 있는 귤이는 '인사성'을 산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엔 "엄마 왜 산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인사를 해?" 하며 의아해했지만(나도 의아하단다), 이젠 먼저 "안녕하세요"를 건넨다. 정작 나는 숨이 너무 차서 인사고 뭐고 입꾹닫일 때가 많은데. 모르는 사람들이 건네는 호의와 배려가 귤이에게 '나는 존중받는 어린이'라는 감각을 키워주는 것 같아 기쁘다. 그런 맥락에서 나 역시 다른 어린이를 만나면 너무 반갑다. 숨가쁜 파김치지만 앞서 가던 어린이가 떨어뜨린 마스크를 주워주었다. "고맙습니다. 참 친절하시네요." 어디서 어린이에게 이런 과찬의 인사를 받겠는가 말이다.


3.

산을 좋아한다. 등산을 잘한다는 것이 산 오르는 걸 걱정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꽤나 그렇다고 그간 자부해왔다. 그런데 출산과 육아로 7년 만에 다시 오른 산에서는 "엄마, 빨리 와~" 소리를 길잡이 삼아 맨 뒤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걷게 되었다. 나이들수록 점점 힘들어지겠지 하며 자조적이었는데 이번 산행에서 자신감 두 포기를 심고 왔다. 내게 산행이 얼마나 힘든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지는 '대피소가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가운가'인데, 이번엔 속밭대피소, 진달래밭대피소가 짠 하고 나타나줄 때마다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 벌써 도착이야?"


등반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또 어떻고. 70세라는 할머니 한 분은 "이제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왔어요" 하셨는데 걸음에 생기가 가득했다. 친구분이라는 68세 할머니는 맨발로 사뿐사뿐 앞장서고 계셨다. 그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으며 꼭 체력이 나이와 반비례하는 것만은 아니겠구나, 제주 생활이 나를 다시 걷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겠구나, 깊은 안도감이 일었다.

아니 사실은 이걸 먹으려고 산에 온다.

목이 꺾여라 올려다 보던 곳을 오르고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길을 다시 걸어 내려오는 일,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닿고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해내는 곳. 요행이 통하지 않고, 길은 끝나기 마련이고, 늘 짐덩어리 같았던 몸뚱어리가 '제법'이라는 수식어를 얻고, 몸은 높아지지만 마음과 콧대는 낮아지고, 이 모든 것들이 기꺼운 곳, 그래서 오늘도 산으로 간다. 오름도 결국 산이니 제주에선 매일이 산이다.


애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삶의 어느 부분과, 일상의 어느 시간과, 인생의 어느 구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산에서는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 끌리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었다. - <아무튼, 산>, 장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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