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고 자란 경주는 알고 보면 바다를 낀 도시다. 다만 시내에서 바다까지 가는 길이 멀어 여름 한가운데나 되어야 '해수욕'(이 말도 이젠 얼마나 올드한지)하러 바다로 가곤 했다. 경주를 떠나 서울에서 지내면서는 바다엘 간 게 양손에 꼽히는 것 같다. 별로 아쉽지도, 그립지도 않았는데 제주에 와서 깨달았다. 나 바다 좋아하는구나.
개복치 씨와 매일 산책을 한다. 집을 나서며 서우봉이 얼마나 선명히 보이는지 확인한 뒤 봉우리가 화장 잘 된 얼굴처럼 또렷한 날이면 함덕으로 향한다. 서우봉에 오르며 유채꽃의 봉오리와 날아드는 벌의 움직임을, 물때에 따라 달라지는 함덕해수욕장의 백사장 라인을, 그 뒤의 한라산을, 수평선을 가운데 두고 채도를 달리하는 물빛과 하늘빛을 감상한다.
서우봉 꼭대기에선 함덕 반대편으로 북촌이 내려다 보인다. 4.3 때 군인들이 주둔한 함덕해수욕장 너머 북촌리 어귀에서 병사 두 명이 죽은 채 발견되자 군인들이 민가 300여채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했다는, 바로 그 마을이다(손민호, [제주, 오름, 기행]). 지금 눈앞의 바닷가로 시체들이 자주 떠올랐다고 한다.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5백 위도 넘는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현기영, 순이삼촌)
그래서일까. 오름에 지천으로 깔린 무덤들이 심상히 보이지 않는다. 4.3과 상관없이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먹고살 걸 구하고 가축을 풀어 기르고 죽어서 묻혔지만.
오름에 걸쳐진 삶과 죽음을 지나 해변가를 오래 걷는다. 그리고 카페에 깃들어 티비보듯 창 너머 바다를 또, 조금은 멍하니, 본다. 딱히 감상이랄 것 없이 무심히. 날씨에 따라 바람에 따라 달라 보이는 물빛, 파도의 높이와 물결의 모양 따위를 응시하다 보면 간질간질, 몸에 힘이 조금씩 풀린다.
그러려고 바다엘 온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굳어진 껍질 안으로 조금씩 맑고 부드러운 걸 불어넣어 주려고. 긴장한 신경과 정신에도 같은 말을 해준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너무 괴로워하거나 눈치 보거나 마음 쓰지 말라고. 다 괜찮다고.
그러려고 동네 바다 함덕으로 온다. ‘동네 바다’라니. 겁나 힙해.
그러려고 제주엘 왔지. 잘했어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