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에 역술인이 4급 행정관으로 채용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와 매달 우리나라 5대 명산에서 자신들의 발복을 위해 한날한시에 굿판을 벌이고, 나라의 중요한 공적 자산을 사적으로 마구 이용했다는 어이없는 기사들을 접하며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
오래전, 내가 20대 사회 초년생 시절 작은 편집 디자인 회사에 면접을 보러갔다. 직원이 8명이라 절반이 임원이었던 작은 회사. 면접을 보던 중 대표였던 여자는 갑자기 잠시 자리를 비웠다. 급한 일이 있나 하고 별것 아니게 지나쳤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공백이 길었던 탓에 긴 고민 없이 입사를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대표는 사주팔자를 볼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면접을 보다가 자기 방에 가서 내 만세력을 조회해서 사주팔자를 보고 온 것이었다. (내 사주가 그래도 꽤 괜찮았나 보다)
가끔 한가할 때 직원들의 사주를 봐주곤 했다. 마지막으로 내 사주를 봐주고는 하는 말이
“혹시 O 팀장이랑 둘이 사귀는 거 아니야?”
“네? 왜요?”
“둘 다 지금 연애운이 들어와 있는데 맨날 야근하느라 밖에서는 사람을 못 만나니까 안에서 만나나 하고~”
심장이 덜컹했다. 당시 정말 그 팀장과 몰래 사내 연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웃음으로 스리슬쩍 넘겼다.
그녀는 많은 부분을 무속에 의존하는 것 같았다. 어떤 날엔 출근을 했더니 회사 전체에 쑥 태운 냄새가 진동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그건 영업장에 손님이 없을 때 손님을 오게 하는 비방이라고 한다. 본인이 무속에 의지한다 한들 딱히 직원들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니 상관없었다. 사업을 꾸려가는 것이 힘들고 그만큼 간절한가보다 싶었다. 나를 분개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회사를 운영하며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직원들은 매일 야근을 이어가던 중이었는데, 디자인 팀장에게 자신의 석사 졸업 전시회 작품을 대신 만들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디자인 팀장은 일을 병행하면서 남의 작품을 만드느라 주말에도 출근해 작업을 했고, 심지어 남자 직원들을 전시회장 작품 설치에 동원하기까지 했다.
비록 나에게 닥친 일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어떻게 자기 사적인 일에 저렇게 직원들을 이용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났다. 그렇게 불만은 쌓여갔다.
어느 날, 나와 사귀고 있던 팀장이 대표 방에 불려 갔다 오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퇴근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200만원 준다고 박사논문 써달라던데?”
“뭐라고?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거절했지 뭐.”
거절을 했다지만 매번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본인이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타이틀은 가져야겠다는 욕심. 고용했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사적인 일을 시키고, 돈 주고 의뢰하면 그만인가? 그건 진짜 자기 것이 아니지 않은가! 모든 일이 그런 식으로 통했으니 그 사람도 그렇게 일궈왔던 것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그냥 순진해 빠진 것일까? 십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세상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일 것이다.
"이야~ 너는 돈도 그렇고, 남자도 그렇고 다 가졌다, 야~"
내 사주를 풀어주며 시샘하듯 입을 삐쭉거리며 말하던 그녀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이제 인생 절반 가깝게 산 것 같은데 나는 지금 돈도 그렇고, 남자도 그렇고 아무것도 못 가졌다. 그녀의 말이 맞았으면 좋았을 텐데.
“친구가 나보고 그러는 거 있지? 너는 절대 부자 못되겠다고”
“왜요?”
“때로는 싫은 것도 좋은 척 좀 하고, 아부도 떨고 그래야지 나처럼 그러면 부자 못 된대”
“저도 그런 거 절대 못 해요. 잘 보이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고 그런 거 역겨워서 못 하겠어요.”
“우리 둘은 부자 되긴 글렀다~”
얼마 전 회사 상사와 나눈 대화다. 우스갯소리긴 했지만 씁쓸했다. 어쩌겠는가? 이렇게 생겨먹은걸.
나는 떳떳하게 살고 싶다. 이익을 위해서 양심을 팔고, 아랫사람을 이용하고, 없는 실력을 돈 주고 사고 싶지 않다. 그건 진짜 내가 아니다. 나는 그런 족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