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보내고 서울로 올라올 채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임영웅 노래가 그렇게 다급하게 들리긴 처음이었다.
“어머 어떡해. 언니야.”
발신자를 본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응 언니! 형부 돌아가셨어? 언제? 좀 전에? 어떡해... 알았어. 내가 다른 언니들한테 전화 돌릴게.”
최근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둘째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떡하지? 거기까지 먼데…’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든 나 자신이 싫었다.
다음날 장례식장에서 부모님과 만나기로 하고, 서울로 가는 차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이모부를 마지막으로 뵌 게 언제였더라?'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외갓집 식구들이 모일 일이 없다 보니 장례식, 결혼식이 아니면 만날 일이 없었다. 둘째 이모부를 마지막으로 뵌 건 아마 우리 둘째 조카 돌잔치 때였던 것 같다. 그러면 10년 전.
하지만 이모부에 대한 가장 선명한 기억은 1992년 여름이다.
커다란 건물 꼭대기 층이 이모부 댁이었다. 건물주였던 이모부 댁은 나무 바닥으로 된 거실에 소파도 있고, 방도 여러 개였다. 안방엔 영롱하게 반짝이는 자개장이 벽 한 면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10살이었던 나는 그 방에 앉아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봤다. 방학이어서 차도 없던 우리 가족은 큰맘 먹고 이모 댁에 놀러 갔던 것 같다. 외가와 친가를 통틀어 이모부는 유일무이한 부자였다.
이모가 집주변 아주 큰 식당에 데리고 가서 둥그런 쇠그릇에 국물이 자작하고 고기와 버섯, 당면이 있는 음식을 사주셨는데 나는 그런 음식을 그때 처음 먹어봤다. 나중에 그게 소불고기라는 것을 알았다. LA 갈비도 이모가 질리도록 구워주셨다. 미도파 백화점에 데려가 엄마에게 좋은 핸드백도 사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이모부가 나를 부르시더니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셨다.
숫기 없던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전거요…”
“자전거? 알았어.”
이모부는 내 말을 듣자마자 지갑에서 10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 아빠에게 건네셨다.
“이걸로 애들 자전거 사줘.”
33년 전, 10만 원은 꽤 큰 돈이었다. 그런 돈을 턱턱 꺼내주시던 화통한 이모부.
이모부 덕에 나는 빨간색 자전거를 얻게 됐다.
처음엔 보조 바퀴를 달았다가 이내 두발로 타게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 자전거를 신나게 탔다. 한번은 도난을 당했는데 다른 동네를 우연히 지나다가 운 좋게 찾기도 했다. 내가 중학생이 된 후엔 동생들이 쭉 타다가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사라진 빨간 자전거.
그로부터 몇 년 후, 이모부의 사업이 잘못되면서 가세가 기울어졌다. 생활 형편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워지셨고 건강 또한 안 좋아지셨다. 당뇨 합병증으로 오랜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버스가 서울에 닿을 때쯤 생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모부께 자전거 감사히 잘 탔다고 인사드리러 가야겠다.’
장례식장까지 지하철로 2시간 반. 차가 없는 나는 지하철 환승을 거듭하며 식장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외가 친척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도 집중을 못 하고 서는 역마다 어디인지 확인했다.
드디어 도착한 장례식장엔 이모들과 큰이모부, 외사촌 언니, 오빠들과 처음 보는 조카들까지 있었다. 영정사진 속 이모부께 절을 하며 마음속으로 말씀드렸다.
‘이모부, 고생하셨어요.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세요.’
설 연휴 막바지에 돌아가셔서 생각지도 못하게 외가 친척들을 명절쯤 만나게 됐다. 오랜만에 마주한 친척들이다 보니 딱히 나눌 말이 없었다. 엄마, 아빠 옆에 앉아 육개장 먹는 데 몰두하며 뻘쭘함을 모면했다.
이제 이모들은 7~80대, 외사촌들은 4~50대.
어릴 때 친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외할머니댁에 가면 7남매인 외갓집이 와글와글했다. 족히 30명은 됐다.
끝도 없이 음식을 내주시던 외할머니. 어른들이 화투 치실 때 옆을 기웃거리다가 받은 개평에 두둑해지는 주머니. 외사촌들과 개울에서 미꾸라지도 잡고, 언덕 너머 학교에 가서 신나게 놀다 온 기억이 생생하다. 그 추억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텐데, 시간은 흐르고 서로는 어색해지고 한 분씩 세상을 떠난다.
식장에서 나오며 인사를 드리면서 한 분 한 분 손을 맞잡았다. 그 따뜻한 손의 감촉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려 애썼다. 혹여 오늘이 누군가와의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며, 자주 보지는 못해도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길…